우스갯 소리로 인생은 길어야 영어 알파벳 B에서부터 D까지라고 한다. 'Birth(출생)'에서 'Death(죽음)' 사이에 매순간 'Choice(선택)'만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대해 얼마나 많은 후회를 하는가.

경제학에서도 선택은 자주 거론되는 용어다. 경제활동에서 어떤 특정 선택을 할 때마다 다른 기회를 포기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기회비용'이라는 것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또 경제 주체 간에 정보의 불균형으로 인해 불리한 의사결정을 하게 돼 역선택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정보를 많이 가진 자는 그렇지 못한 자에 비해 왜곡이나 오류를 통해 더 많은 이익을 취하게 된다. 중고자동차 시장에서 자동차를 팔려고 하는 차 주인은 사려고 하는 구매자에 비해 자기 자동차의 장단점에 대해 훨씬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차 주인들은 자신에게 불리한 정보를 내놓지는 않는다. 겉은 번지르하고 속 고장이 잦은 차(레몬차) 주인은 중고차시장 평균 판매가격에 만족하는 반면 겉상태는 그다지 좋지 않아도 속고장이 별로 없는 차(복숭아차) 주인은 불만이다.

따라서 중고자동차 시장에서 복숭아차는 점차 자취를 감추고 레몬차들만으로 넘쳐나게 된다. 구매자들은 품질이 좋은 차보다는 품질이 떨어지는 차들을 선택하게 되는 이른바 '역선택의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최근 정치권에서 논란이 많은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에서도 역선택이 문제가 되고 있다. 선거인단은 여론조사에서 자신의 지지정당을 속이고 상대방 정당의 후보 중에서 상대적으로 당선 가능성이 낮은 후보를 지지하기 때문에 결코 안심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경제학에서는 선택의 폭이 클수록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가정했지만,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고 한다. 심리학자 배리 슈와츠는 <선택의 역설>이라는 저서에서 선택의 여지가 있을 경우 선택의 자유가 없는 상황에 비해서는 분명히 만족도가 크다고 했다. 그러나 너무 다양한 선택이 존재하면 포기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후회가 크게 늘어 차라리 선택을 포기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고급 잼 시식회 실험에서 A가게는 6종류, B가게는 24종류를 진열했다. A가게 판매율은 30%였지만 B가게 판매율은 3%에 불과했다. 최근 커피점의 수많은 메뉴 중에서 바리스타가 추천하는 '아무거나' 메뉴가 인기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아무튼 역선택도 선택의 일종이고, 선택의 역설에서도 선택의 고민이 사치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작금의 우리 '실신청년(失信靑年·실업자인데다 신용불량자인 청년)'들에게는 꿈꿀 미래마저 선택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데 가슴이 미어진다. 6년 전 이탈리아의 최고 명문인 로마 루이스대학의 첼리 총장은 한 일간지에 '아들아 조국을 떠나거라' 라는 기고문을 실어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그는 "일이 잘못되더라도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능력보다 연줄이 앞서는 나라. 법치주의가 통하지 않는 나라. 청년들에게는 일자리가 없고, 있다고 해도 저임금 임시직밖에 없으며, 더 이상 자부심을 가질 만하지 않은 나라"라며 희망을 잃은 이탈리아의 현실을 고발했다.

한국에서도 최근 청년들이 만들어 낸 신조어 '노오력'과 '헬(hell)조선'은 기성 세대들에게 보내는 냉소와 비아냥을 넘어 섬뜩하게까지 들린다. 노력을 두 배, 세 배하는 '노오력'을 해서 흙수저를 면하고, 지옥같은 '헬조선'에서라도 살아 남자는 자조 섞인 젊은이들의 아우성에 언제까지 기성 세대들은 강건너 불구경만 할 것인가.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고 모든 길은 로마로 통했다는 찬란한 관광자원을 가진 이탈리아는 재정위기와 함께 마이너스 성장에 빠져 있다. 뛰어난 품질 경쟁력과 디자인을 앞세운 세계 최고 수준의 명품 섬유·안경 산업, 유럽에서 세 번째로 강한 화학산업, 프랑스와 쌍벽을 이루는 요리와 식품의 강국, 세계 6위의 제약산업, 농산물 수출 세계 5위의 선진강국 이탈리아가 왜 비틀거리고 있을까. 한국도 이탈리아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젊은이들이 소박한 꿈과 희망이나마 선택할 수 있는 나라가 되어야 할 것이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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