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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부재'에 목마른 현대인의 사람 맛 느끼는 '말'에 대한 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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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재 2015.11.11 08:52
  • 호수 247
  • 11면
  • 이은주 시인 <신생> 편집장(report@gimhaenews.co.kr)

   
 
<끌>
이병순 지음
산지니
238쪽·1만 3천 원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작가 창작집
'창' '닭발' 등 단편 8개 묶어 출간
'끌과 나무'처럼 끌어안는 세상 기대

201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에서 당선해 등단한 이병순 소설가가 첫 창작집 <끌>을 세상에 내놓았다. 등단작품 '끌' 외에 '인질', '놋그릇', '부벽완월', '슬리퍼', '창', '닭발', '비문' 총 8편의 단편을 묶었다.
 
생애 첫 작품집을 묶는 소회가 어떠할지, 어떤 이야기들로 독자들에게 말을 걸어올지 궁금해 하며 소설 속 인물들을 만나러 문을 열고 들어간다.
 
소설은 일상 속에서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그러나 늘 달라붙어 있는 관계에 대한 문제들로 가득 차 있다. 그 문제의 중심에 '소통의 부재'가 똬리를 틀고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지만 정작 서로의 삶 속에 깊이 있게 관여하지는 못한 채 곁을 떠돌 뿐이다. 다들 저 혼자서 생활의 올가미에 발목 잡혀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간절히 소통을 갈구하는 말들을 떠올리지만 그 말들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채 허공에 부유한다.
 
'창(窓)'은 창호를 만드는 대기업의 하청업체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복학 준비생의 이야기다.
 
주인공 '나'는 창이 없는 단칸방에서 철물점을 하는 부모와 고등학교 때까지 방 가운데에 커튼을 치고 한방에서 살았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독서실에서 지내는 날이 더 많았고, 제대를 하고는 앞이 막힌 쪽창이 전부인 고시원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
 
과장을 따라 다니며 보조 일을 하던 '나'는 전망 좋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창을 수리하러 다니면서 환한 창을 갖고 살면서도 창 속에 갇혀 사는 사람들을 만난다. 창은 소통을 의미하지만 '마음의 창'을 닫고 사는 사람들에겐 벽과 다름없으며 깨뜨리고 싶거나 뛰어내리고 싶은 욕망을 부추길 뿐이다.
 
"넌 우리의 빛이다." 제대를 하던 날 아버지가 한 말이지만 '나'에게 그 말은 "우린 너의 빚이다"라는 말로 울려 퍼진다. 전망 없는 현실에 놓여 있는 '나'가 어떤 방법으로 세상에 창을 내야 할지, 또 삶의 버거움을 어떻게 견뎌나가야 할 지, 작가는 우리에게 담담하게 그리고 조용히 질문을 던진다.
 
'닭발'은 엄마가 교통사고로 죽자 갑자기 말더듬이가 된 수학교사 언도의 이야기다.
 
엄마는 도계장 도계라인에서 잘려 나온 닭발을 소쿠리에 담는 일을 하면서 사생아로 낳은 언도를 키웠다. 어릴 적 언도는 사생아라는 사실과 말더듬이 엄마가 부끄러워서 친구들에게 늘 가족에 대해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갑작스러운 엄마의 죽음으로 말더듬이가 된 언도는 '말더듬이 교정' 학원에서 상담사 '공'을 만난다. 상담을 받으며 어릴 적 상처를 치유한 언도는 말더듬이도 고치고 공과 가까운 사이가 된다. 어느 날 양다리를 걸치고 있던 공이 전화 한 통으로 여느 때보다 더 깍듯한 존댓말로 이별을 통보한다. 이날 언도는 거짓말을 할 때마다 비린내 나는 닭발을 입에 물려 주던 엄마를 떠올리며 포장마차에서 혼자 닭발을 씹는다.
 
엄마는 "정으로 돌을 쪼개듯 말을 힘들게 빚어내"는 심한 말더듬이였지만 "거짓말은 말할 것도 없고 웬만해선 헛말을 하지 않"고 "상대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었다." 이런 엄마와 언도가 소통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우리는 말을 술술 잘하지만 해야 할 말을 숨기기도 하고, 헛말이나 거짓말로 자신을 위장하기도 하며, 심지어 사람들의 가슴에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소통을 위해 말을 배웠지만 정작 우리는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고 사는지 깊이 있게 생각해볼 일이다. 
 
작가는 "나무는 끌 맛을 안다"고 말한다. 끌만 나무의 맛을 보는 게 아니라 나무도 끌 맛을 본다는 것이다.
 
이렇게 끌과 나무처럼 우리도 서로를 심심(深深)하게 들여다보고 끌어안을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끌이 결을 살린 매끈하고 탄탄한 가구를 만들 수 있듯이 우리 삶도 각각의 무늬를 가진 사람들이 어울려 따뜻한 소통의 무늬를 그려낼 수 있을 것이다. 힘겨운 세상살이지만 그래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은 바로 사람 맛을 느낄 수 있는 말을 주고받으며 사는 일이다. 

   
 
김해뉴스

이은주 시인
<신생>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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