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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도시생활 탓에 몸에 밴 ‘각박함’ 이젠 훌훌 털어버리자(10) 이젠 짖지 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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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재 2015.11.25 08:57
  • 호수 249
  • 12면
  • 주정이판화가(report@gimhaenews.co.kr)

   
▲ 주정이 선생이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촐랑이를 어루만지고 있다.

소용없는 일로 시간 허비한다는 생각에
마을 사람들 집에 오가는 것 싫어해
촐랑이도 주인 맘 아는지 연신 “컹컹”

야멸차게 “오지마라” 말해보았지만 허사
집 문앞엔 여전히 ‘푸성귀와 情’이 가득
이웃 모르는 ‘모난 마음’ 되돌아 봐

우리 집 강아지 촐랑이가 애타는 표정으로 쳐다봅니다. 녀석의 꼴을 보니 뭘 원하는지 짐작이 갑니다. "고개를 약간 젖히고 표정연기를 하고 있으면 안 됐다는 마음이 들어 뭐라도 좀 주겠지"라는 속셈입니다. 턱도 없습니다. 사료를 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그런데도 돌아서면 금방 이럽니다. 염치없는 녀석, 시도 때도 없습니다. 암만 그래봤자 안 넘어갑니다. 이럴 때 자칫 넘어가면 사람이 입맛만 다셔도 난리를 피우는 고약한 버릇을 갖게 됩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못된 버릇이 들면 그 다음부터는 감당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산골에 살다 보면 종종 삼겹살을 구워 소주 한 잔 하려는 술꾼들이 들이닥칩니다. 그럴 때면 고기 굽는 냄새에 이 집 저 집 강아지들이 한꺼번에 시끄럽게 짖어대 동네가 떠나갈듯 시끄럽습니다. 고기 한 점 던져 줄 때까진 멈추질 않습니다. 손님 보기가 민망하기도 합니다. 우리 집 촐랑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요샌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고기 굽는 냄새를 풍겨도 조용히 있습니다. 아무리 졸라대도 사람이 먹고 나면 주지 그전에는 절대 안 준다는 것을 알도록 길들여 놓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강아지가 고기 굽는 냄새를 참는다는 것이 얼마나 고역이겠습니까. 어떤 때는 참다 못해 아예 고개를 돌리고 앉아 있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짖지 않고 참습니다. 그런 촐랑이가 잠시 짖었습니다. 샛바람이 지나갔나 봅니다. 개는 바스락 소리만 나면 짖는 습성이 있습니다. 촐랑이도 고기를 구울 때 말고는 시도 때도 없이 짖어대기는 마찬가집니다.
 

   
▲ 손님을 맞으러 집 입구 돌계단을 내려가는 주정이 선생.

도시에서 오래 살다 보면 세속의 인연이 얼기설기 엮이어 잡다한 것들에 허비하는 시간이 많습니다. 그런 무용한 시간을 줄이고 작업하는 시간을 벌자며 산골로 들어온 것입니다. 산골에 살면 어지간해서는 사람을 안 만나고 어지간한 일에는 끼이지 않습니다. 전람회 뒤풀이 같은 술자리에서 먼저 일어나도 "먼데 사니까"라며 이해를 해 줍니다. 게다가 들어온 곳이 아무런 연고가 없는 곳이라면 더 많은 시간을 벌 수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라도 집에 들락거리는 걸 달가와하지 않습니다. 마을사람이 집에 오는 것을 반갑게 맞이하는 게 도리겠지만 그러지 못하는 것입니다.
 
처음 마을에 와서 집을 지을 때였습니다. 무슨 구경이라도 난 것처럼 이 사람 저 사람 오가는 사람마다 입을 댔습니다. 길가에 집 짓는 것 같아 신경이 쓰이다 못해 짜증이 났습니다. 어떤 사람은 일꾼들 참 먹을 시간에 왔습니다. 권하는 술이나 한잔 하고 가면 좋은데 참 시간이 끝나고 일꾼들이 일하려고 일어서도 혼자서 남은 술 다 마시고도 눌러앉아 일꾼들 일머리를 가르치는 양 이런저런 군소리로 사람을 성가시게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면 일하는 사람들은 괜한 신경이 쓰여 얼굴을 찡그립니다. 일도 더뎌집니다. 에이! 그런 저런 것도 다 좋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 그만한 일이 대수겠습니까. 문제는 집을 다 짓고 이사를 하고 난 뒤로도 문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농사꾼들은 농한기에는 별 할 일이 없다 보니 괜스레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이 집 저 집을 기웃거립니다. 특히 저녁을 먹고 난 후에는 소화를 시킨다며 꼭 그럽니다. 우리 집이라고 그냥 둘 리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집 상황을 모르는 마을 사람들은 말동무가 없어서 심심할 거라는 생각에 일부러 놀러오기도 하거나, 다른 집에 갔다가 돌아가는 길에 들여다 보기도 합니다. 그런 마을 사람들의 발길은 마을에 새로 들어온 집에 대한 일종의 호의의 징표인 셈입니다. 마을 사람들의 그런 마음을 왜 모르겠습니까.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집에 걸음하면 일단은 반갑게 맞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도 한편에서는 별 소용없는 일로 시간을 허비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웃을 모르는 각박한 도시생활을 오래한 탓이지 싶습니다.
 
   
▲ 손님에게 대접한 따뜻한 믹스커피.
도시에서 40여 년이나 살았습니다. 도시에 살다 시골로 들어온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저는 집에 마을 사람들이 오는 것이 정말로 불편합니다. 유독 유별나게 구는 것이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성격이 그렇고 사정이 그러니 어쩔 수 없습니다. 어느 날 마을 어귀에 마을 사람들 여럿이 모여 있는 기회가 있어서 말을 했습니다. 누구든 우리 집에 무시로 드나들지 말아주십시오, 딱히 용무가 없는데도 드나들면 일에 지장이 있습니다, 라고. 그렇게 딱 부러지게 말해야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라는 생각을 갖고 정나미가 떨어져 발길을 끓을 거란 계산으로 심하게 말한 것입니다. 그날 이후론 우리 집 촐랑이도 마음을 아는지 마을 사람 가운데 누가 집에 오거나 주위에 얼씬거리면 어김없이 짖어댔습니다. 그럴 땐 녀석이 밥값을 한다 싶어 촐랑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까지 합니다.
 
그만큼 야멸치게 말해서 뜻이 먹혀들 줄 알았는데 소용이 없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 집 대문을 드나들었습니다. 그나마 요새는 윗마당까지는 올라오지 않습니다. 푸성귀라도 좀 가져다주고 싶으면 아랫마당 계단 입구에 두고 갑니다. 아까도 돌계단 입구에 무 더미가 놓여 있었습니다. 촐랑이가 짖지 않아 누가 왔다 갔는지도 몰랐습니다. 촐랑이 녀석이 영악합니다. 집에 덕 되는 일에는 짖지 않고 되레 촐랑촐랑 꼬리까지 흔들어 댑니다. 마을에 산 지도 10여 년 되다 보니 누구네 밭에 뭐가 있는지 대충은 압니다. 계단의 무는 동촌 댁이 가져온 것이지 싶습니다. 촐랑이한테 밥을 주면서 속으로 '내가 졌다. 이제 누가 오든지 말든지 짖지 말거라'라고 일렀습니다.
 
또 한 가지, 부산에 살 때에는 이래저래 만나서 술잔을 기울이던 술친구가 좀 있었지만 산골로 들어오고부터는 얼굴이나 한번 보고 대포나 한잔 하자는 전화가 오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그런 전화는 대략 세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첫 번째, 요샌 부산 안 나오는가요. 나오거든 연락 한번 하소. 대포나 한잔하게요.
 
두 번째, 얼굴 잊어버리겠소. 언제 날 잡아 한번 나오소. 미리 전화하고요.
 
세 번째, 어디요. 집이요. 지금 시낸데(남포동, 광복동, 중앙동) 택시 불러 나오소. 밤 늦고 길 멀다 해도 요새 통금 없고요, 멀어 봤자 대한민국 아닌가요. 전화 끓고 빨리 택시 부르소. 기다릴게요.
 
첫 번째, 두 번째는 실행해 본 기억이 없습니다. 세 번째 경우에는 바로 택시를 부릅니다. 대포 한잔 하는데 미리 전화하고 그런 게 뭐 필요한가. 생각나면 그냥 기별해서 한잔 하는 거지. 세 번째의 경우 거절하면 십중팔구 온 동네 개 다 짖게 한밤중에 쳐들어옵니다. 나가는 것이 낫습니다.
 
어제 저녁에 세 번째 경우의 전화가 있었습니다. 빨리 오소, 라는 전화를 받고 잠시 머뭇거리니까 "도착할 때 쯤 택시비 가지고 밖에서 기다릴게요" 라면서 전화를 끓어버렸습니다. 안 나가면 쳐들어 올 기세다 싶어 부랴부랴 나갔습니다. 늦은 시간에 나갔으니 귀가시간은 당연히 새벽이었습니다. 막힘없는 새벽 도로를 총알같이 달리던 콜택시 기사가 그 와중에 "한 가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라기에 그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손님처럼 연세 드신 분들은 대개 밤 9시면 발 씻고 주무시는데 손님께선 항상 이 시간까지 약주 드시고 건강이 대단하십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답했습니다. "그런 말씀 마시오. 나도 이러고 나면 오늘 낮에는 죽을 쑨다오"라고 응답해 주었습니다. 택시가 마을 입구에 다다르자 귀 밝은 촐랑이가 짖었습니다. 마당으로 올라와 짖기를 멈추고 꼬리를 흔들고 있는 촐랑이에게 다가가 한마디 부탁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오밤중에 술꾼들이 쳐들어 와도 짖지 말거라 그게 낫겠다, 라고….

   
 



김해뉴스
주정이 판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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