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날이거나, 아니면 나무 그늘이 그리운 여름 한 낮이거나, 또는 볕 좋은 가을날이거나…. 내동 연지공원으로 나들이를  해 본 사람이라면, 어디선가 들려오는 신명 나는 사물놀이 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들썩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소리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박시영 대표가 이끄는 우리소리예술단이다. 우리소리예술단은 스스로의 흥에 이끌려 장소를 불문하고 달려가 '우리의 소리'를 들려준다. 늦가을 어느 날, 그들을 찾아가 보았다.

▲ 각종 경연 대회에서 단원들이 수상한 상장들.
연습벌레 아이들 상장 사방 벽에 빼곡
2003년 창단… 국악신동까지 배출
부·경 유일  전통예술문화 청소년단체

군부대·소외계층에 정기적으로 봉사활동
휴일엔 연지공원 등서 게릴라 식 공연도


우리소리예술단은 봄 매화길로 유명한 구산동 김해건설공업고등학교 본관 건물 1층 맨 왼쪽의 한 교실에서 연습을 하고 있다. 낮에는 사물놀이 소리가 학교 수업에 방해를 주기 때문에 연습실은 저녁이 되어서야 문을 연다. 그것도 학교 기숙사와 인접해 있기 때문에 오후 10시까지만 연습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약속 시간도 오후 7시로 정했다.

무턱대고 학교를 찾아간 기자는 잠시 낭패감에 젖어야 했다. 정문이 아니라 학교 기숙사가 있는 후문을 이용해야 연습 공간에 닿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도착해서 연습실 문을 세 번이나 두드렸지만 돌아오는 것은  사물놀이 장단뿐이었다. 방해가 될까 봐 한참을 밖에서 기다렸지만, 쉽게 연습이 끝날 것 같지 않아 문을 덜컥 열었다. '훅~'하고 텁텁한 땀 냄새가 달려들었다. 11월 중순의 저녁 기온이 맞나 싶을 정도로 땀 냄새의 농도가 한 여름처럼 진했다.

"힘을 내. 미쳐야 미친다!"

다음 달에 있을 정기공연을 위한 연습 때문인지 박시영 대표의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묻어 있었다. 연습 중인 10명의 단원들은 낯선 사람의 방문에도 아랑곳 않고 '휘휘' 소리를 내며 상모돌리기에 열중했다. 어쩔 줄 모른 채 우두커니 서 있는 기자를 발견한 박 대표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언제 왔어요? 연습하느라 몰랐네. 자! 자! 자! 우리 잠시만 쉬었다 해요!"

▲ 우리소리예술단 청소년 단원들이 김해건설고 내 연습장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연습에 열중하고 있다.

상기된 박 대표의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하지만 쉬었다 하자는 박 대표의 말에도 상모 꼬리는 멈출 줄 모르고 돌아갔다. 상모 소리 때문에 대화가 힘들다는 한 차례의 제지가 있고 난 후에야 아이들은 상모 꼬리를 내렸다. 연습이 중단된 게 아쉬웠던지 단원들은 우르르 구석으로 몰려가 앉은 뒤에도 서로의 눈짓을 읽으며 가상의 상모돌리기 고개 짓을 계속했다.

"저 아이들이 저래요. 연습을 시작하면 쉬지를 않아요. 쉬고 싶다는 말도 않고요. 덕분에 나만 죽어납니다."

우리소리예술단의 처음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 대표가 재능기부의 일환으로 어려운 환경에 처한 곳을 찾아가 우리 소리를 가르치면서 시작됐다.

"재능기부를 하면서 아이들을 만났는데, 아이들이 무언가를 자신도 배울 수 있다는 것 자체를 기뻐했어요. 가르치던 아이들 중에 소질이 있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하지만 다들 형편이 어려워서 따로 배울 기회는 없었고, 그래서 이왕 배운 재주를 이 아이들에게 풀어보자 하고 시작했어요."

이야기를 나누던 중 마주 앉은 박 대표의 등 뒤에 걸려 있는 수많은 액자에 시선이 자꾸 갔다. 그걸  눈치 챈 박 대표가 한 마디를 건넸다.

"처음엔 상장을 받아 오면 아이들이 신통해서 기쁜 마음에 하나, 둘 벽에 걸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상장을 걸어 둘 곳이 없습니다.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상을 못 받는 게 더 이상하겠죠?"

그렇게 창단한 우리소리예술단은 부산 경남의 유일한 전통예술문화 청소년단체로 자리 잡았다. '국악신동(박현영)'을 배출하고 문화부장관상과 교육부장관상, 여성가족부 장관상을 받는 등 단숨에 전국 규모의 경연대회를 휩쓸었다. 요즘에는 공연, 교육, 축제 및 문화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국내는 물론 미주, 아시아, 유럽 등지에 우리 음악을 널리 알리는 전령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렇다고 우쭐대며 큰 공연만 쫓아다니는 단체는 아니다. 군부대나 소외계층(교도소, 양로원, 치매병원, 정신병원, 장애인시설, 육아원 등)을 대상으로 정기적인 봉사활동도 펼치고 있다. 휴일을 맞아 여가를 즐기러 야외로 나오는 시민들이 많아지는 계절에는  연지공원, 수릉원 등지에서 게릴라 식 공연도 서슴지 않고 진행한다.      "방송을 탄 뒤로는 더 자주 봉사공연을 합니다. 좀 유명해지니까 달라졌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부담스러워요. 우리소리예술단의 청소년들은 처음부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제 흥에 겨워서 소리를 시작했거든요. 그래서 우리 소리가 필요한 곳이라면 언제든지 흥겹게 달려가고 있습니다."    

우리소리예술단이 배출한 국악신동 박현영 군은 박 대표의 아들이다. 박 군은 국악 프로그램인 KBS K-SORI악동에 출연해 '국악신동'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국악을 가르치고 싶긴 했지만 처음부터 현영이가 국악을 잘한 건 아닙니다. 연습벌레인 저 아이들이 놀아주지 않으니까 함께 놀 수 있는 방법은 국악밖에 없었죠. 그러던 중 어느새 현영이한테는 국악이 자신의 즐거운 놀이로 자리 잡게 된 거죠."

실력을 인정받은 현영 군은 2013년 8월에 세계 3대 축제인 영국 에든버러 축제에 한국 대표로 참가했고, 2014년에는 'tvN국악스캔들 꾼', 'SBS 세상에 이런 일이', 'KBS 아침마당' 등 여러 방송에도 출연해 호평을 받았다.     

"오늘의 우리소리예술단은 땀으로 범벅이 된 숱한 여름, 언 손을 녹이며 장구, 꽹과리를 두드리던 숱한 겨울을 묵묵히 이겨낸 노력의 결과물입니다. '남들처럼'이 아닌, '남들 보다' 더 노력한 결과입니다."

▲ 단원들에게 설명을 해주는 박시영 대표.
박 대표는 상장보다 인성을 더 중요시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박 대표의 철학 때문에 아이들은 나이를 불문하고 서로에게 존댓말을 쓴다. 하기야 인성이 갖춰지지 않았다면 청소년이라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한 여름의 무더위와 찢어지는 언 손의 고통을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이 곳은 학교시설물이라 취사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한창 자랄 나이에 아이들이 굶는 게 마음이 쓰이죠.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집에서 음식을 해서 가져 오는 것입니다. 신랑은 국을 끓이고, 남동생은 반찬을 나르고, 저는 밥을 짓습니다."

우리소리예술단은 처음에는 초등학교의 빈 교실을 한 칸 얻어 연습을 했다. 그런데 학교장이 바뀌면서 다른 용도로 교실을 쓴다고 해서 이사를 해야 했다. 막막해진 박 대표가 지금의 김해건설공고에 둥지를 틀게 된 건 김해건설공고 박영석(1회) 동창회장의 노력 덕분이었다. 박 회장이 시청으로 교육청으로 뛰어다니며 학교 사용 요청을 한 끝에 지금의 자리를 확보했다고 한다. 그리고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우리 아이들은 환경이 그리 좋은 편이 못 됩니다. 이 아이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마음 놓고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 준 김해건설공고와 박영석 회장님께 늘 고마움을 느낍니다. 이 공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소리예술단은 없었을 지도 몰라요. 더불어 세상이 따뜻하게 품으면 아이들도 바르게 자란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습니다."

취재가 끝나자 아이들이 다시 일어섰다. 그렇게 늦은 11월의 밤에 소리가 춤추었고, 아이들의 삶도 춤추었다. 

≫ 박시영 대표/부산예술대 한국음악학과를 졸업했다. 우리소리예술단 대표, 김해시 자율방범연합회 여성방범대장, 바르게살기 김해시협의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2005년 민족문화예술 타악부문 대상, 2013년 부산청소년예술제, 전국국악경연대회 지도자상 등을 받았다. 부산 브니엘예술고에 강의를 나가는 한편, 김해 도림원 등에서 난타 수업을 진행하면서 장애인·청소년 들과 함께하고 있다.

김해뉴스 /조증윤 기자 zopd@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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