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곁요리’ 옛 사람들 지혜 잘 응용
정식코스 알맞은 상차림도 마음에 쏙

조미료 대신 발효 효소로… 건강 밥상 실감
신선한 재료 사용 ‘밑반찬’ 그때 그때 달라
된장찌개·고등어조림의 시원한 맛 눈길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한 끼니의 점심 메뉴를 고르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오죽했으면 '아무거나'라는 메뉴가 생겼을까.
 
친구가 오래 전부터 밥 한 끼를 하자고 했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뤘다. 맛 기행을 다니는 친구를 소개시켜 준다는 말에 전화를 걸었다.
 
기자가 생각하는 맛집은 기본적으로 '시장할 때 한 끼를 먹는 곳'이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이 괜히 생겨났을까. '밥도둑'이라는 말도 시장이 기본이 돼야 쓸 수 있는 단어다.
 
동상동 롯데캐슬아파트 옆에 있는 '자연음식 자목련'이라는 식당이 약속장소였다. '자연음식'이라는 말에 입맛이 당겼다. 음식점을 못 찾을까 봐 정원의 정자에서 임영주 법무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기자의 친구다. 임 법무사는 법원 사무처에서 18년간 근무하다 사직했다. 지난해에 법무사 사무실을 차렸다. 그는 "11월까지 1만 5천 원짜리 밥상이다. 12월부터는 2만원으로 인상된다. 기대해도 좋다"고 강조했다. "맛집은 추천한 사람의 입맛 기준"이라고 대답하며 음식점 안으로 들어갔다.
 

▲ 박외준(왼쪽) 세무사와 임영주 법무사가 곁요리로 나온 탕수와 경단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것저것 음식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한창 바쁜 영업시간을 피해 오후 1시에 약속을 잡았다. 그런데도 10개의 식탁 가운데 4개에 손님들이 앉아 있었다. 예약된 방에 들어갔다. 먼저 와 앉아 있던 박외준 세무사가 인사를 건넸다.
 
박 세무사의 고향은 경남 거제다. 31세 때 세무사 시험에 합격해 자격증을 땄다고 한다. 그리고는 다시 9급 세무공무원 시험에도 합격했다. 세무공무원으로 일하다 세무사 사무실을 뒤늦게 열었다. 그의 취미는 맛 기행이다. 인터넷 블로그에 소개된 전국의 맛집을 다 찾아다닌다고 한다. 지난주에는 강원도, 한 달 전에는 제주도에 다녀왔다. 블로그 글만 믿고 갔다가 실망을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라고 했다. 진짜 맛집은 현지인들이 소개해 주는 곳이라고 자신만의 경험을 전했다.
 
몇 마디를 나누는 사이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옛사람들의 지혜를 잘 응용한 소박한 곁요리(에피타이저)였다. 모든 음식은 차림이 좋아야 한다. 차림이 좋으면 기분 좋은 첫인상을 확보할 수 있다. 자목련의 정식코스는 차림이 좋았다. 곁요리의 가짓수도 적당했고 과하지 않았다. 딱 세 사람이 나눠먹기 좋은 양이었다.
 
▲ 자연식당 자목련의 정식 한 상 차림.
들깨흑임자죽, 감자김치만두, 두부표고잡채, 복분자를 숙성한 토마토 샐러드가 맛깔스러웠다. "경상도 사람들에게는 좀 싱거울 것"이라는 박 세무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두부표고잡채를 먹어 봤다. 조금 싱거운 듯했지만 심심하지는 않았다. 들깨흑임자죽도 마찬가지였다. 재료 본연의 맛이 잘 드러난다는 느낌이 들었다. 몇 가지의 곁요리가 추가로 나왔다. 모든 음식이 몸에 좋고 건강한 자연음식들이라는 설명도 함께 밥상 위에 올려졌다. 다들 조금 늦은 점심 탓에 배가 고팠던지 곁요리로 나온 몇 가지 음식을 금세 비워 버렸다. 주인은 빈 접시를 치우면서 연잎밥과 곤드레나물밥 중 어느 것을 고를지를 물었다. 둘 다를 맛보고 싶어서 골고루 시켰다.
 
임 법무사는 공직생활을 하던 중 제법 대접을 받을(?) 만한 시기에 퇴직을 했다. 많이 망설였다고 한다. 공무원일 때는 가만히 앉아서 찾아오는 민원을 해결하면 된다. 개인 사무실을 열면 일일이 발품을 팔아 일을 챙겨야 하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도 자신만의 일을 한 번 만들어 보자는 생각에 결심을 했다고 한다. 개인사업을 하면서 그동안 꿈꿨던 법무대학원에 입학한 게 가장 기쁘다고 했다.
 
박 세무사는 세무사 시험에 합격한 뒤 세무 실무를 익히기 위해 9급 세무공무원 시험을 봤다고 한다. "공무원이 철밥통이라고들 하지만 세무공무원은 다릅니다. 4년 정도 근무했습니다. 업무량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너무 편하다고 한다.
 
연잎밥, 곤드레나물밥에 된장찌개, 고등어조림, 산채나물, 장아찌와 함께 몇 가지 찬이 더 차려졌다. 된장찌개와 고등어조림은 다른 식당에서 느낄 수 있는 얼큰매콤한 맛이 아니었다. 시원한 맛이 특징이었다. 곤드레나물밥의 양념간장은 그냥 떠먹어도 그렇게 짜거나 자극적이지 않은 수준이었다. 연잎밥은 찹쌀에 은행, 대추, 연근을 넣어 지었다. 연잎의 향이 찹쌀밥에 찰지게 달라붙어 있었다.
 
▲ 입맛을 돋우는 자목련의 곁요리.
주방장을 겸하고 있는 자목련의 김경숙 사장은 "인공조미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원재료를 그대로 이용하고, 소금과 집간장만을 사용해 발효 효소를 만들어 음식을 요리한다."고 설명했다. 효소는 구지뽕, 레몬, 무화과 등을 사용해 만든다고 한다. 김 사장은 사찰요리로 잘 알려진 홍승스님 밑에서 10년 동안 조교생활을 하며 사찰음식을 배웠다. 늦둥이를 낳느라 요리를 그만 두었다가 지난 5월 자목련을 개업하면서 다시 요리를 시작했다. 김 사장의 경력은 식당 벽면에 걸려 있는 요리경진대회 상장들이 말을 해주고 있었다.
 
'음식은 곧 자연이다.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고 자연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홍승스님의 말을 가슴에 새기면서 음식을 마련한다는 게 김 사장의 설명이었다. 그는 "냉동식품을 사용하지 않는다. 계절에 따라 신선한 재료를 구입해 음식을 만든다. 손이 많이 가고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 자연식당 자목련의 전경.
김 사장은 매일 오후 3시 점심 손님이 없는 사이 재래시장에 직접 재료를 사러 간다. 그래서 자목련의 밑반찬은 그날그날 재료 상태에 따라 2~3일마다 바뀐다. 그걸 알고 2~3일 주기로 찾아오는 단골도 생겼다고 한다. 그는 "손님들이 초심을 잊지 말고 늘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 달라는 당부를 전할 때 가장 힘이 난다"고 했다. 그는 물 좋은 생선이 들어왔다는 연락을 받고 간다며 시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음식의 맛은 그 사람의 입맛에 따라 다 다르다. 하지만 첫 맛은 밥상에 마주 앉은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오랜 친구와 오랜만에 마주한 밥상, 거기다 새로 얻은 친구까지…. 이런데도 맛없는 음식이 있을 수 있을까. 자연음식 자목련에서 만난 밥상은 그래서 더 맛이 좋았을 것이다.   

▶자연음식 자목련/경남 김해시 가야로 405번길 12. 055-323-3637. 동상동 롯데캐슬아파트 서쪽 편에 위치하고 있다. 정해진 메뉴는 없으며 2~3일 주기로 음식종류가 바뀌는 한정식이 20,000원. 

김해뉴스 /조증윤 기자 zopd@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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