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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고 촌스럽지만… 켜켜이 쌓인 책들 사이로 ‘정겨움’ 물씬(7) 보수동 책방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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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재 2015.12.16 10:34
  • 호수 252
  • 8면
  • 김예린 기자(beaurin@gimhaenews.co.kr)

   
▲ 보수동 책방골목 입구와 표지판.
골목 안 풍경은 시간이 멈춘 듯
손때 묻은 표지 보며 상상의 나래도

한국전쟁 때 피란민들 생계 위해
온갖 물건 팔기 시작한 것이 시초

90년대 후 책방 하나 둘 역사 속으로
빈자리 카페·갤러리 등이 채워


부산 중구에 가면 시간이 거꾸로 달리는 곳이 있다. 스마트폰만 찾던 손은 누렇게 색이 바랜 책을 들춰 보느라 바쁘다. 까치발을 하고 고개를 젖혀 높이 쌓인 책들의 제목을 줄줄 읽어 내려가는 것만으로도 절로 웃음이 난다. 책을 읽다 덮어 두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이다. 예전에는 쳐다보지도 않았던 낡고 촌스러운 게 반갑고 정겹게 느껴지는 곳, 바로 보수동 책방골목이다.

동장군이 밀어닥치기 시작하자 오후 4시만 되도 해는 서쪽에 가까워진다. '부산의 명소 보수동 책방골목'을 알리는 간판이 뉘엿뉘엿 지는 햇살을 받아 반짝 빛난다. 경적을 울리며 재촉하는 자동차,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보수서점' 사이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촤르르' 하고 돌아가는 영사기의 필름이 되감기듯 골목 안의 풍경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골목길은 커다란 책 사이를 걷는 것 같다. 노천명의 시집 <사슴>과 <대중가요대백과>, <논어> 등의 책이 보인다. 그 중 하나를 들어 까맣게 손때가 묻은 책 표지를 본다. 까만 땟자국에 상상의 나래가 펼쳐진다. 빳빳하고 깨끗했던 책은 책장에서 자신을 선택해 줄 누군가를 기다리다 마침내 책장을 벗어나는 자유를 맛봤을 것이다. 책은, 이야기를 함께 공유하고 싶은 마음을 가진 주인이 친구에게, 그 친구는 또 다른 친구에게 전달하면서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이제는 긴 여행을 마감하고 종착지이자 시작점인 보수동 책방골목에 눌러 앉아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보수동 책방골목은 전쟁에서 비롯했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피란민들은 생계를 위해 온갖 물건을 팔기 시작했다. 구덕산과 보수산, 부민동과 동대신동에 전시 학교들이 생겨났다. 이 골목으로 학생들이 오갔고 평범했던 골목길은 책방골목으로 변신했다.

   
▲ 보수동 책방골목을 찾은 시민들이 헌책방 앞에 진열된 책을 둘러보고 있다.

책방골목 1세대인 학우서림 김여만(81) 대표는 1950년대 책방골목의 기억을 선명히 갖고 있다. 그는 1953년 상자 몇 개를 가져다 놓고 노점을 시작했다. 그렇게 대청사거리 쪽 책방골목 입구에서 학우서점을 운영한 지 올해로 62년째다. 김 씨는 맨 처음 책방골목에서 책을 팔기 시작했던 고 손정린 씨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이곳에서 가장 먼저 책장사를 한 사람은 이북에서 온 피난민 손정린 씨였다. 그가 가지고 왔던 옷과 책 등을 생계를 위해 팔았다. 책이 잘 팔렸다더라. 그가 책장사를 시작하면서 터를 잡은 게 보수동 책방골목의 시초"라고 말했다.

책방골목이 전국에 알려진 건 광일초등학교 자리에 있던 육군병원 덕분이었다. 전쟁에서 다친 부상자들은 육군병원으로 후송됐다. 전국 각지에서 부모형제들이 육군병원으로 몰려왔다. 김 씨는 "면회를 온 부상자 가족들이 시간이 나면 이곳저곳을 구경하다 보수동 골목길에 진열된 책을 보러 왔다. 입소문이 나면서 '보수동에 가면 책방골목이 있다'라는 이야기가 전국으로 퍼졌다"고 말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 등 연합군이 수시로 세관 쪽 부두로 입항했다. 당시 연합군은 전선 투입에 앞서 배에서 읽던 책을 버렸다. 이를 전문적으로 모으는 수집상이 생겨났다. 보수동 책방골목에는 영어 잡지, 외국 서적 등이 넘쳐났다. 부산으로 피란 온 지식인 사이에서 외국 서적은 단연 인기였다고 한다.

전국적인 명물로 자리 잡은 보수동 책방골목은 1980년대 책방이 80여 곳이 넘을 정도로 골목은 활기를 띄었다. 1980년대 말과 1990년대는 어머니 손을 잡고 참고서를 사러 온 학생들이 밀려다닐 정도로 골목은 북적였다. 30년 간 서점을 운영해온 대영서점 허양군(57) 대표는 "1990년대는 신학기에 책을 판 것으로 1년을 먹고 살았다. 3~4월에는 1년 간 모았던 책들이 불티나게 팔렸다. <완전정복>, <전과>, <성문영문법>, <수학의 정석> 같은 책들은 없어서 못 팔았다"고 회상했다.

   
▲ 책방에 진열된 다양한 종류의 책들.

책방골목이 한 살씩 나이를 먹으면서 책도 시간의 파도를 탔다. 허 대표는 "1980~90년대에는 참고서·학습서·아동전집, 2000년대에는 공무원시험 관련 서적과 대학 교재 등이 잘 팔렸다.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단행본, 일반교양서적을 많이 찾는다. 책의 유행에 따라 책방에 채워지는 책도 다르다. 하지만 요즘은 책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다"고 아쉬워했다.  

1990년대 이후 헌책방은 하나 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80여 곳이었던 헌책방은 이제 50여 곳만 남아 골목을 지키고 있다. 헌책방이 사라진 자리는 공정여행기업, 어린이도서관, 카페, 갤러리 등으로 채워졌다.

허 대표의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다시 골목을 어슬렁거렸다. 골목 양 옆에 서 있는 책방을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백발의 어르신부터 모자로 멋을 낸 청년까지, 그들의 눈은 온통 빛바랜 책을 좇았다. "<태백산맥> 있습니까?" 중년 남자의 질문에 서점 주인은 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서점 주인은 뒤돌아서서 수천 권의 책 사이에서 <태백산맥>을 꺼내 건넨다. 명탐점 셜록 홈즈가 찾아온다 해도 서점 주인을 따라가진 못할 것 같았다.

서울에서 부산의 대학에 진학했다는 김채희(28·여·서울 동대문구) 씨는 보수동 책방골목을 '집'이라고 표현했다. 지금 다시 서울로 돌아간 그는 "부산 어디에 가도 집 같이 편안한 느낌은 없었다. 보수동 책방골목에 높게 쌓인 책에 둘러싸여 있으면서 위안을 얻었다. 주말마다 골목길을 걸어 다녔던 시간이 그립다"며 미소 지었다. 

보수동 책방골목의 처음부터 마지막 구간까지는 잰걸음으로 20분밖에 되지 않는다. 낡은 서랍 속에서 나온 책들의 공간은 연인들 사진의 배경이 됐다. 때로는 사랑방, 도서관이 됐다. 그리고 사람들은 천천히 오래도록 책 속에 머물다 떠났다. 

김해뉴스 /김예린 기자 beaurin@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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