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던 유가가 지금은 30달러대로 급락했다. 그동안 고유가가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 경제의 발목을 잡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어서 우리는 저유가를 항상 축복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저유가가 세계 경제를 괴롭히고 있는 실정이다.

1970년대 두 차례의 오일쇼크는 산유국들의 원유 생산량 감소로 인해 유가 폭등 현상이 발생함으로써 일어났다. 지금은 산유국들이 원유 생산량을 지나치게 늘려 공급 과잉이 생기는 바람에 유가가 떨어지는 '역 오일 쇼크'이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기울어지지 않으며, 지나침도 미치지 못함도 없다는 중용의 사상이 세계 경제에도 얼마나 필요한가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최근 저유가의 원인은 공급 과잉과 정치 공학적 요인이 가장 크다. 글로벌 공급 과잉의 시발지는 미국이다. 미국은 바다 밑 진흙이 퇴적된 암석층에 매장돼 있는 셰일오일 가스를 낮은 비용으로 채굴할 수 있는 혁명적인 시추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그 결과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2014년에 세계 제1의 산유국이 됐다.

게다가 사우디를 주축으로 한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미국 사이에 살벌한 '치킨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자동차 두 대가 서로를 향해 돌진한다. 충돌 직전 핸들을 먼저 꺾는 쪽이 겁쟁이가 된다.

사우디는 미국의 셰일오일 가스 생산을 저지하기 위해 생산량을 줄일 게 아니라 늘려서 유가를 더 떨어뜨려야 한다는 강경책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은 저유가를 무기로 삼아 베네수엘라 중심의 중남미 좌파성향 정권을 붕괴시키고, 국제테러조직인 IS의 원유 뒷거래를 방지하며, 세계 최대 천연가스 생산국인 러시아의 위협을 막겠다는 다목적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다.       

경남도의 저유가 피해는 심각해 보인다. BNK 금융경영연구소의 올해 우리나라 추정치 경제성장률은 전국 2.0%, 부·울·경 동남권 1.5%, 경남은 0%다.

2013년 기준으로 경남의 지역내총생산(GRDP)의 약 43%가 제조업이다. 경남지역 수출이 GR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4년 기준으로 약 61%다. 2014년 선박과 해양구조물을 합친 경남의 조선업 수출액은 경남지역 전체 수출에서 약 45%를 차지한다. 경남지역 조선업 수출의 60~70%는 바다에서 원유와 천연가스를 시추·생산·저장하는 시설인 해양플랜트가 차지하고 있다.

세계적 저유가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채산성이 없는 해양플랜트 수주 중단 및 취소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경남의 조선업은 저유가의 직격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뿐만 아니라 세계적 유효수요 부족으로 기계·장비의 수출 부진 현상이 극심하고, 산유국의 건설 수요가 줄어 경남지역 경제는 위기를 맞고 있다.

도내 기업에서 희망없는 희망퇴직이 이어지고 있다.

아프리카의 부시맨 마을에 경비행기 조종사가 비행 중 마시고 버린 콜라병 하나가 떨어졌다. 부시맨 마을에는 콜라병 사용을 둘러싼 다툼이 일어나 평화롭던 공동체가 붕괴된다. 지혜로운 한 부시맨이 콜라병을 들고 지구 끝까지 걸어가 그것을 버리면서 갈등은 마무리 된다

하지만 글로벌 시대의 부시맨 마을에는 콜라병이 아니라도 총기, 마약 등이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다. 트로이의 목마와도 같은 콜라병을 안고 살아가야 할 운명 또한 부시맨의 몫이다.

배럴당 20달러대까지도 버틸 수 있다는 미국의 셰일오일 가스 개발 혁명은 부시맨 마을의 콜라병처럼 지구 끝 어디에 버려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미국과 OPEC 국가 사이의 치킨게임도 특정국가의 중재로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석기시대가 돌이 부족해서 끝난 게 아니듯 지금의 저유가시대도 원유 부족으로 종말을 고할 것은 아닌 것 같다.

저유가 덕분에 올 겨울은 따뜻하게 보낼 수 있을 거라는 소박한 서민의 꿈은 여지없이 깨어지고 있다. 경제전문 매체인 '블룸버그 비즈니스'는 오는 2016년에 출현할 수 있는 검은 백조(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은 낮지만 엄청난 사건) 후보 10마리 중 하나로 '이슬람 극단주의 IS의 이라크 송유관 파괴~배럴당 100달러 이상의 유가 상승'을 꼽는다. '저유가의 저주'가 부메랑이 돼 돌아오지 않을지 불안할 뿐이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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