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라니 텃밭>
글·그림 김병하·사계절출판사·40쪽·1만 1천 원

산속에 이사 간 아저씨의 귀농기
인간·자연의 공존에 대한 고민

책을 소개하기 전에 이야기를 하나 할게요. 김해 분산 산길을 걷다가 생긴 일이에요. 분산에는 야생동물이 많아요. 제가 보기에는 다른 산들보다 새가 더 많은 것 같아요. 조용한 시간 산에 가면 딱따구리의 나무 쪼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요. 그리고 제가 어렸을 때 문만 열면 볼 수 있었던 참새가 요즘은 환경오염 탓에 잘 보이지 않는데 분산 덤불 안에는 참새가 정말 많아요.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후드득 후드득 날아다니며 뒹굴고 숨고 잡으러 다니며 참새들이 끝도 없이 조잘조잘 노래하는데 듣고 있으면 저절로 웃음이 나요.
 
분산에 가을, 겨울이 오면 산짐승들이 움직일 때 나는 발자국 소리, 낙엽 밟는 소리가 들려요. 그 때는 발걸음을 멈추게 돼요. 이 발자국 소리의 주인은 누굴까 숨죽여 둘레를 살펴보지요. 그 날은 제가 가야대 쪽으로 산길을 내려오고 있었어요. 오후 4시 정도 되었는데 바로 앞 소나무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났어요. 그리고 어른 고라니 한 마리와 새끼 고라니 두 마리가 불쑥 산길 가운데로 걸어 나왔어요.
 
저는 고라니 울음소리가 그렇게 큰지 몰랐어요. 고라니 우는 소리는 빗대어 보면 소가 우는 소리만큼 커요. 분산 전체가 울리도록, 조용한 산 전체가 진동하도록 왝왝 울었어요. 순간 몸이 얼어버렸어요. 저는 죽은 것처럼 숨도 안 쉬고 꼼짝 않고 서 있었어요.
 
그런데 제일 끝에 서 있는 새끼 고라니 한 마리가 한 발 한 발 걸어서 내게 오지 뭐예요. 고라니는 귀가 엄청 커요. 새끼 고라니의 귀가 위로 뾰족 섰다가 옆으로 샥 돌아갔다가 고개를 오른쪽, 왼쪽 살살 돌리며 '저는 당신에게 조금도 관심이 없어요' 하며 딴청을 부리면서 결국은 저에게 오는 거예요. 한 발 한 발 계속 걸어오는데 저는 놀랍기도 하고 어찌해야 될지 몰라 꼼짝 않고 눈만 꿈벅이고 있었어요. 새끼 고라니는 바짝 가까이 와서 고개를 이리 저리 돌리며 냄새를 맡았어요.
 
아, 가까이에서 본 새끼 고라니는 정말 예뻤어요. 까맣고 크고 땡그란 눈, 솜털이 가득한 커다란 귀, 암갈색 둥그런 등. 말도 못하게 예뻤어요. 고라니는 가까이 와서 살며시 냄새 맡고 다시 돌아서 갔어요. 지금도 그 때 기억이 생생해요. 
 
오늘 제가 소개하는 책은 김병하님의 <고라니 텃밭>이에요. 저는 이 책을 읽고 나서 저자 김병하님을 만나고 싶었어요. 같이 고라니 이야기를 하고 싶었거든요.  
 
맨 먼저 책을 펼치면 화가 김 씨 아저씨가 트럭에 이삿짐을 싣고 산 속 오두막으로 이사를 와요. 그리고 오두막 앞에 텃밭을 가꾸지요. 텃밭 둘레에 돌담을 쌓고 곡괭이로 땅을 일구고 퇴비도 줍니다. 아내와 딸이 좋아하는 옥수수, 감자, 쑥갓, 상추, 케일 갖가지 채소를 심고 물도 주고 잡초도 뽑으며 정성껏 돌봐요. 텃밭 옆에 공책과 펜, 카메라가 있는 걸 보면 아저씨는 채소 사진도 찍고 육아일기 마냥 공책에 기록도 하나 봐요.
 
채소가 한창 자랐을 무렵 누군가 나타나서 쑥갓과 상추를 먹어 치워요. 그 다음날에는 아욱과 치커리를 먹어치워요. 발자국을 보아하니 고라니입니다. 화가 난 아저씨는 텃밭을 지키기 위해 허수아비도 세우고 밤에 막대기를 들고 밭을 지키기도 하고 새총도 준비하고 텃밭 둘레에 울타리도 칩니다.
 
어스름한 밤, 손에 새총을 들고 꾸벅 꾸벅 졸던 아저씨는 부스럭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어요. 아저씨는 본능적으로 소리 나는 쪽으로 냅다 새총을 겨눠요. 그 순간 저도 같이 긴장해서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어요. 그리고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조심 조심 책장을 넘겼어요. 왼쪽은 깜짝 놀란 김 씨 아저씨, 오른쪽은 어른 고라니와 새끼 고라니 두 마리가 크고 동그란 눈으로 정면을 딱 보고 있어요. 새끼 두 마리를 데리고 와서 배를 채우고 있는 고라니 가족을 만나고 김 씨 아저씨는 고개를 푹 떨궈요. 그리고 그날 밤 생각하고 생각하느라 한숨도 못자요. 김 씨 아저씨는 고민 끝에 드디어 아주 좋은 생각이 떠올라요.
 
김 씨 아저씨는 텃밭을 망친 고라니와 어떻게 화해할까요. 지금 제가 말해버리면 안되겠죠. 그러면 김이 새어버릴 것 같아요. 김해도서관이나 화정글샘도서관 혹은 가까운 서점에 가서 그림책을 한 번 펼쳐보세요. 아마 여러분 눈은 반달눈이 되고 얼굴은 흐뭇한 보름달이 되어 빙그레 웃지 않을까 싶어요.
 
아, 그리고 매우 중요한 한 가지를 덧붙일게요. 책의 마지막, 서쪽 하늘에 어스름한 그믐달이 떠있고 고라니가 새끼 두 마리를 이끌고 아주 당당하고 경쾌하게 텃밭으로 마실가는 모습이 있어요. 여러분이 만약 눈을 아주 크게 뜨고 매우 자세히 본다면 고라니 가족의 맨 끝, 고개를 이쪽으로 착 돌리고 정면을 보는 새끼 고라니와 눈과 마주칠 거예요. 그래요. 맞아요. 단언컨대 이 고라니는 제가 분산에서 만났던 호기심 많은 그 새끼 고라니입니다.
 
이 책은 어린이들이 혼자 읽을 수 있지만 어른들과 함께 읽으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인간과 고라니, 인간과 동물을 포함한 자연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같이 궁리해보고 지혜를 키워가길 기대합니다.





공정현
김해신명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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