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해 원숭이띠 최고령 금곡리 ‘노경출 할머니’

올해 96세… 장수 할머니로 유명
언니·오빠 일찍 돌아간 후 태어나
본의 아니게 무남독녀로 자라
일제 강점기·한국전쟁 등 다 겪어
17세 때 결혼 아들 넷 키워내


원숭이의 해가 밝았다. 올해는 특히 붉은 원숭이의 해라고 한다. 원숭이는 지혜·재주·화합을 상징하고, 붉은색은 건강·부귀영화를 뜻한다고 한다.

김해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원숭이 띠' 시민은 올해 96세인 노경출(한림면 금곡리) 할머니다. 그는 마을에서도 '장수 할머니'로 유명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을회관에 자주 놀러 다녔지만 최근에는 몸이 불편해 주로 집에만 머문다고 한다.

▲ 김해시민 중에서 최고령 원숭이 띠인 노경출 할머니가 따뜻한 이불 속에서 새해를 맞이하고 있다.

인터뷰를 위해 할머니의 집에 들어갔더니 이부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는 "내가 인터뷰 할 게 뭐가 있겠나? 옛날 일은 기억도 안 나는데"라며 말을 흐린다. 이불 위에 올린 할머니의 손에는 깊은 주름이 보인다.

노 할머니는 1920년 9월 18일 김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와 둘이서 살았다. 의료 환경이 좋지 않았던 옛날이라 안타까운 일들이 많았다고 한다. "위로 언니가 하나 있었다고 하네. 다섯 살에 혼자 보리도 끓여 먹고 야무졌다고 했어. 오빠 둘도 있었다고 하더라고. 다 몸이 아파서 일찍 세상을 떴어. 그 뒤에 내가 태어났는가, 그렇다." 그렇게 할머니의 기억에는 무남독녀인 자신밖에 없었다.

금곡리는 지금은 한림면이지만 옛날에는 생림면이었다고 한다. 행정업무를 보려면 생림으로 가기 위해 산을 넘어 빙 둘러가야 했다. 교통편이 발달하지 않았던 만큼 면사무소까지 가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한다. "하루는 어머니가 외가에 갔어. 지금의 진영공단 쪽으로 넘어가는 곳이었어. 하루 종일 기다려도 안 오고, 이틀이 지나도 안 돌아오는 거야. 외숙모가 장난처럼 '느이 엄마가 버리고 갔나 보다'라고 놀리더라고. 울면서 어머니를 찾으러 갔지. 옛날에는 진영공단 쪽에 나환자촌이 있어서 무서워서 빙 돌아갔더니 하루 종일 걸리더라."

노 할머니는 일제 강점기, 6·25한국전쟁 등 역동의 시대를 다 거쳤다. 당시의 기억에 대해서는 "이틀 밤을 새워 이야기해도 모자랄 거야.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의 시대였다"고 표현했다. 일본인들의 약탈과 강제징용이 심할 때에는 자신이 거둔 농사 수확물도 마음대로 챙기지 못했다. 일본인들은 쌀을 가져가야 한다면서 술이나 떡을 마음대로 만들어 먹지 못하게 했다. 일본인들이 뺏어갈까 봐 놋그릇도 내놓지 못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불과 40년 전만 해도 산의 소나무들에는 일본인들이 비행기 기름을 만들기 위해 송진을 채취한 흔적이 흉물스럽게 남아 있었다고 한다.

긴 억압 끝에 찾아온 해방은 마을 전체를 뒤흔들었다. 노 할머니는 "갑자기 마을 사람들이 집 밖에 뛰어다니며 '해방이다'라고 외치며 다니더라고. 그때 해방된 걸 알았지. 그 고함소리가 얼마나 반갑던지…. 기쁘고 감격스러워 모두가 눈물을 흘리며 환호했다"며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해방의 기쁨을 만끽하기도 잠시, 6·25한국전쟁이 터졌다. 노심초사하며 지낸 하루하루였지만, 그나마 다행히 김해에는 전쟁의 여파가 크게 미치지 않았다고 한다. "피란민들이 많았지. 우리가 밥도 주고 재워도 주고 그랬다. 가끔 전투기에서 추락해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조종사가 있어 끌어내려 주기도 했어."

추락의 흔적은 진례면 고모리에 더 많았다고 한다. 조종사들이 남기고 간 낙하산 줄은 마을 사람들에게 요긴하게 쓰였다. "낙하산 줄이 짚으로 만든 새끼줄보다 튼튼하고 썩지도 않았어. 사람들이 그걸로 짐도 묶고 보관도 하고 그랬지. 비행기가 추락했던 곳의 흙을 잘 뒤져 보면 비행기 파편이 있었어. 아이들은 그걸로 엿을 바꿔먹고 그랬어."

노 할머니는 17세에 시집을 가 네 아들을 낳은 '아들 부자'였다. 이후 할머니의 인생은 고스란히 네 아들을 키우는 데 다 쓰였다. "고생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다 키웠어. 손자도 보고 다 잘 살고 있지. 김해에 셋째 아들이 있어. 시간이 날 때마다 어머니를 보러 오는 게 효자가 따로 없다."

노 할머니의 새해 소망은 '건강'이다. 아들과 손주, 증손주들을 더 오래 보려면 건강한 몸을 유지해야 한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몸이 아프고 다치는 건 어쩔 수 없어. 그래도 새해에는 더 건강한 몸이 됐으면 좋겠어.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건강하면 더 바랄 게 없지."  

김해뉴스 /어태희 기자 tto@gimhaenews.co.kr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