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냉이>
권정생 시·김환영 그림
사계절출판·36쪽
1만 1천원

어린시절 작가의 눈에 비친 전쟁
시로 엮어 평화의 소중함 일깨워

평화란 무엇인가? 흔히 전쟁과 대조되는 말로서, 사전에서는 '전쟁, 분쟁 또는 일체의 갈등 없이 평온한 상태'로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좀 막연하다. 어린이들이 좀 더 쉽게 평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할 수는 없을까?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크고 작은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그 전쟁은 끊임없이 우리의 평화를 위협하고 삶에 영향을 주고 있다.
 
오늘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책은 한국전쟁을 주제로 쓴 <강냉이>이다. 열세 살 어린 나이에 한국전쟁을 겪은 권정생이 그 당시에 쓴 시에 김환영이 유화 그림을 그려 만든 책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권정생은 <강아지똥>과 <몽실언니>의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전쟁의 비참함을 겪었고 늘 북녘 아이들과 평화통일을 그리며 살아왔다. 그가 전쟁 중에 쓴 시를 통해 평화의 의미를 되짚어 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강냉이는 내가 대학을 다닐 때 다이어트를 위한 가장 흔한 음식이었다. 그러나 어린 권정생이 살던 시절엔 가장 귀한 주전부리가 아니었을까 싶다.
 
사투리와 입말을 그대로 살려 쓴 시라 한번 읽고 이해하기는 어렵다. 큰 소리로 여러 번 따라 읽어야 자연스럽게 그 속뜻을 알게 되고 사투리가 주는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또 글의 느낌을 보다 더 섬세하게 살린 그림이 책장을 넘기는 손길을 오래 머물게 한다.
 
첫 장에는 마을을 지켜주는 커다란 당산 나무 아래 조그만 초가집이 있다. 초가집 옆 토담 길 위에 형아랑, 엄마랑 강냉이를 꾹꾹 심는다. 무럭무럭 자라라고 오줌도 주고 거름도 준다. 며칠이 지나자 자기 키 만큼 큰 강냉이를 보게 된다. "요건 내 강냉이"라 점찍어 놓고 강냉이가 여물길 기다린다.
 

열하고 한 밤 자고 나서 마주하게 되는 현실은 전쟁이다. 주인공은 불길에 휩싸일 마을과 정성껏 심은 강냉이를 뒤로 한 채 피난길에 나선다. 눈물을 훔치는 13세 소년의 마음은 전쟁과 무관해 보인다. 오직 두고 온 강냉이 걱정뿐이다. 그림에서는 피난을 가는 마을 사람들 표정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더 슬퍼 보이고 참담해 보이고 희망이 없어 보인다.
 
엄마랑 아빠는 고향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어린 권정생은 마을 모퉁이에 두고 온 강냉이를 생각한다. 옆으로 쪼그려 누워 지금쯤 알이 꽉 찼을 강냉이를 상상한다. 그 모습은 참으로 슬프다. 다음 장면에서 피처럼 보이는 시뻘건 자국은 괴기스럽다. 아이들이 무섭다며 위축되는 장면이다. 위엄을 자랑하던 마을의 당산나무도 가지만 앙상하게 남아 있다. 전쟁이 남긴 상처 때문에 아프다. 마지막 장이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남자아이는 알이 꽉 찬 강냉이를 머리 위에 인 채 아무런 표정 없이 서있다.
 
이 책은 어린이들이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서로 돕고 사랑하며 살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한·중·일 세 나라의 작가들과 출판사들이 함께 만든 그림책 시리즈 중 한 권이다.
 
전쟁은 어린 권정생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강냉이를 빼앗아 갔다. 평온하기만 했던 마을도 재처럼 변해 버렸다. 이 아픔을 강냉이로 표현했지만 전쟁이라는 이름이 남긴 상처는 무엇보다 크다. 하지만 책의 겉표지와 속표지는 별이 쏟아지는 듯 평화롭기만 하다. 이건 전쟁의 역사를 책 속에 가두어 놓고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평화롭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는 게 아닐까? 한편으로는 지금은 고인이 되어 너무나 아련히 그립기만 한 권정생을 다시 만나보게 되어 기쁘다.  김해뉴스






오세연 김해봉황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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