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해시 삼방동의 오니기리전문점 '오니나루' 대표 이수언 씨가 밥의 무게를 150g에 맞추기 위해 매번 저울을 사용한다.
일본 영화 <카모메식당>에는 인상적인 장면이 등장한다. 핀란드 헬싱키에 있는 작은 일본식당의 주방 테이블에 세 여인이 모여 주먹밥을 만들고 있다. 맨손으로 주먹밥을 만들며 수다를 떠는 그녀들의 표정은 매우 행복하고 편안해 보인다. 이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일본인들에게 있어 주먹밥이라는 음식이 어떤 의미인지 헤아려 볼 수 있다.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 세 여인이 이 먼 곳에 이르게 된 사연은 제 각각이지만, 주먹밥을 만드는 그 순간 만큼은 어쩔 수 없는 일본인이다.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주먹밥을 만들 줄 안다. 이를 더 이쁘고 먹음직스럽게 만드는 여인은 살림 솜씨가 야무지다는 평가를 받는다. 비록 제 나라를 떠난 처지지만 손이 기억하고 있는 감각은 무뎌질 턱이 없다. 주먹밥은 손으로 쥐어 마음을 전하는 음식이다. 그래서 주먹밥을 만드는 이들의 표정은 언제나 평온하고 때로는 숭고하기까지 하다. 그 마음이 먹는 이에게도 전달되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더불어 주먹밥은 함께 만들고 나누는 음식이다. 이 과정을 통해 가족과 동료라는 공동체를 확인한다.
 
일본어로 주먹밥은 '오니기리'라고 한다. '쥐다'라는 뜻의 '니기루'라는 동사가 명사화돼 '니기리'가 되었고 여기에 '오(お)'라는 접두어가 붙어 '오니기리'가 되었다. 이와 비슷한 말로 '오무스비'가 있다. 오니기리와 오무스비의 유래와 차이에 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같은 음식이다. 다만 도쿄를 중심으로 한 관동지방에서는 오니기리가, 오사카를 중심으로한 관서지방에서는 오무스비가 주로 사용되었다. 에도시대 이후 도쿄가 일본의 수도이다 보니 오니기리가 일반화되었다고 한다.
 
▲ 밥과 속재료의 양이 넉넉하고 맛이 조화로운 오니나루의 주먹밥.
다문화 사회인 하와이에는 '스팸무스비'라는 전통음식이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고향인 하와이에서 휴가를 보낼 때 즐겨 먹었다 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하와이의 길거리나 편의점 등 어느 곳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스팸무스비는 주먹밥에 스팸을 올려 김으로 감싼 것이다. 하와이 이주민 중 단일 국가로는 필리핀 출신이 가장 많고 그 다음이 일본이다. 필리핀인이 좋아한 스팸과 일본인이 좋아한 주먹밥이 만나 만들어진 음식이 바로 스팸무스비다. 그런데 왜 스팸니기리가 아니고 스팸무스비일까? 하와이에 이주한 일본인 가운데 관동지방 보다는 관서지방 출신이 더 많아서 그렇다고 한다. 이처럼 하나의 음식과 그 명칭의 유래에는 지역적 특성뿐만 아니라 권력 관계까지 내포하고 있다.
 
주먹밥은 쌀밥을 주식으로 하는 한국과 일본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독특한 음식이다. 쌀은 크게 인디카(indica)와 자포니카(japonica)로 나뉜다. 한국과 일본에서 먹는 쌀은 모양이 둥글고 길이가 짧은 자포니카다. 이에 반해 인디카는 모양이 가늘고 길이가 긴 쌀로 흔히 '안남미'라 부른다. 두 품종은 모양뿐만 아니라 찰기에서도 차이가 난다. 쌀의 전분에는 '아미로스'라는 성분이 있는데 이 비율이 낮을수록 더 찰지다. 자포니카는 아미로스가 17~20%인데 반해 인디카는 25%나 된다. 자포니카는 찰기가 많아 잘 뭉쳐지는 반면 인디카는 푸석거리고 잘 뭉쳐지지 않는다. 따라서 한국과 일본의 주먹밥문화는 자포니카라는 동일한 품종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주먹밥은 요리라기보다는 쌀을 섭취하는 하나의 형태이기 때문에 어느 나라가 원조냐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다만 두 나라의 주먹밥의 역사를 살펴보면 기능적인 공통점이 발견된다. 전쟁시에는 전투식량으로 재난시에는 구호식량으로 주로 사용되었다. 일본의 경우 전국시대 무사들의 비상식량에서 출발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보편화되었다. 한국은 임진왜란 등의 전란과 한국전쟁 당시 전투식량으로 널리 보급 되었다. 5·18광주민주화운동 때 계엄군에 맞선 시민군은 부녀자들이 만든 주먹밥을 먹으며 싸웠다. 일본 동북부에서 발생한 대지진 이후에는 자원봉사자들이 피난민들에게 주먹밥을 제공하며 구호활동을 벌였다. 이처럼 주먹밥은 '밥'이라는 가장 근원적인 음식을 나눔으로써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공동체 의식을 확인하는 수단인 경우가 많았다.
 
주먹밥이 대중화되고 일상화된 계기가 편의점 때문이라는 것 또한 공통점이다. 일본의 경우 1980년대 초반부터 '오니기리'란 이름 그대로 편의점에 등장했다. 한동안 관심을 끌지 못했던 오니기리는 지금처럼 밥과 김을 분리하는 포장방식이 개발되면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한국의 편의점에 주먹밥이 등장한 것은 1991년이다. 제품의 모양을 본뜬 '삼각김밥'이란 명칭 역시 이때부터 사용되었다. 초기에는 인지도가 낮고 가격 또한 만만치 않아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2001년 TV광고를 시작하면서 부터 판매량이 급속히 증가했다. 해마다 10%이상 꾸준히 매출이 증가하고 있는 삼각김밥은 편의점 '베스트10' 상품에 매년 선정될 정도로 효자상품으로 자리잡았다.
 
최근에는 외식 아이템으로 주먹밥전문점이 주목 받고 있다. 공간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고 회전율이 빨라 소자본 창업자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 빨리 만들어지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점은 햄버거로 대표되는 패스트푸드와 같지만, 밥이라는 경쟁력 때문에 건강을 생각하는 현대인들의 라이프 스타일에도 안성맞춤이다. 이런 트렌드에 맞춰 김해에도 괜찮은 주먹밥전문점이 있지 않을까 고민하던 중에 매우 흥미로운 곳을 발견했다.
 
인제대 맞은편 '오래뜰먹자골목' 초입에 있는 '오니나루'. 다섯 평 남짓한 작은 가게에는 카운터 테이블과 여섯 개의 의자가 전부다. 오니기리전문점을 표방하고 그림과 소품 등으로 일본식 분위기를 연출했기에 사장님이 '일본물' 좀 잡쉈구나 싶었다. 하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몇년 전에 친구랑 다녀 온 짧은 오사카 여행이 유일한 경험이라고 한다. 그럼 한국의 오니기리전문점에서 다년 간의 경험을 쌓았겠거니 했는데, 이 또한 기대와 달랐다.
 
그럼 대체 뭘 믿고, 무슨 배짱으로 가게를 시작했는지 이수언(30) 대표에게 물었다. "영화 '카모메식당'을 보고 오니기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입맛이 없어 밥 먹기가 힘들 때, 오니기리만한 게 없더라구요." 음식이란 게 좋아한다고 해서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서울 홍대 앞이나 가로수길 등에 있는 오니기리전문점을 수도 없이 다니면서 맛을 익혔어요." 노력은 가상하지만 역시 부족하다. "유명한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했는데 나이가 많다며 써주질 않더라구요. 그래서 독학으로 터득했죠." 이런 그녀를 두고 세상물정을 모른다 해야 할지, 용기가 가상하다 해야 할지 한동안 혼란스러웠다.
 
대책 없기는 <카모메식당>의 여사장 사치에도 마찬가지다. 식당 운영 경험은 커녕 조리기구조차 제대로 다룰 줄 모르면서 핀란드 헬싱키에 일본음식점을 차리고 오니기리를 주메뉴로 정했다. 오니기리야말로 일본인의 소울푸드고, 오니기리 만큼은 자기가 만든 것보다 다른 사람이 만들어준 것이 훨씬 더 맛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은 외모 또한 닮은 구석이 많다.
 
▲ 오니나루의 외부(위 사진)과 내부 모습.
혼자서 터득했다는 오니기리 맛이 궁금했다. 전기밥통에서 밥을 퍼내더니 단무지, 참깨, 참기름 등으로 밑간을 하고 밥을 식힌다. 밥을 몇 번 뭉치는가 싶더니 분홍색 저울 위에 밥을 올린다. 왜 그러느냐 물었더니 "150g을 맞추려구요. 다른 곳에선 속재료를 포함해서 150g인데 저는 밥만 150g이에요"라고 한다. 인심 하나는 후한 편이다. 참고로 편의점 삼각김밥의 정량은 110g이다. 밥에 속재료를 넣고는 조물조물 모양을 잡기 시작한다. 위생장갑을 끼고 있다. '오니기리는 맨손으로 쥐어야 제맛인데…' 싶었지만 참았다. 요즘같은 세상에 맨손으로 쥐는 장면이 지면으로 공개되면 곤란하다.
 
오니기리 두 개가 탁자 위에 놓였다. 특별히 제작된 투명한 비닐봉지에 담았다. 손에 음식이 닿지 않도록 한 배려다. 나름 여기저기서 보고 배운 티가 난다. 내용물을 어찌나 풍족하게 담았는지 오니기리 옆구리가 터질 지경이다. 맛을 본다. '어라? 이건…' 뜻밖의 반전이다. 속재료와 밥이 모두 촉촉하면서 간도 적당해 괜찮은 조화를 이룬다. 무엇보다 밥이 훌륭하다. 퍼석퍼석하거나 딱딱하지 않고, 적당히 부드러우면서 찰기가 있다.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포근한, 그야말로 주먹밥스러운 맛이다.
 
▲ 오니나루의 주먹밥은 투명한 비닐봉투에 포장되어 제공된다.
그러고보면 주먹밥은 특별한 기교가 필요없는 음식이다. 그러니 그녀의 이력 따위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오로지 재료와 정성이 맛을 좌우한다. 그중에서도 쌀의 질이 맛의 8할을 결정한다. 그래서 일본의 오니기리전문점 중에는 쌀을 직접 도정하거나 품종을 고객이 선택할 수 있는 곳까지 있다. 그녀에게 밥의 비결을 물었다. "업소용 전기밥솥에 밥을 지었더니 맛이 없어 이효리가 광고하는 밥솥으로 바꿨더니 확실이 달라요." 거침 없는 솔직함에 다시 한번 할 말을 잃었다.
 
시작한 지 7개월 남짓한 작은 가게에는 한산하지 않을 정도의 고객이 드나든다. 인제대 학생들이 주고객이고 아이를 데려 온 엄마들도 더러 있다. 학생들에겐 속깊은 과 선배 같고, 아이들에겐 정 많은 이모 같다. 가슴으로 양 팔을 당겨 주먹밥을 쥐는 표정이 제법 야무지고 행복해 보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손으로 쥐어 마음을 전하는 음식인 주먹밥과 썩 잘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메뉴:20여가지의 오니기리(1,000~2,000원) 일본식라멘(5,400원) 우동(2,000~3,500원)등의 메뉴가 있으며 포장도 가능하다.
▶주소:김해시 삼방동 160-8번지
▶연락처:070-8908-5220





박상현 객원기자
사진촬영 = 박정훈 객원사진기자 pungly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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