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 김해도서관 강연
‘서양음식 문화사’ 주제 두 차례
먹방·비빔밥 등 각종 소재 다뤄


'우리나라에서 국수는 언제부터 만들어 먹었을까. 서양 사람들은 왜 스프를 먹을까.'

김해도서관(관장 이헌락)은 지난달 18, 25일 3층 시청각실에서 요리연구가이자 칼럼니스트인 박찬일 셰프를 초청해 '셰프가 들려 주는 서양음식의 문화사'라는 주제로 강연회를 개최했다. 박 셰프는 서울에서 '로칸다 몽로'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 <백년식당>, <뜨거운 한입>,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등의 음식 관련 책을 출간했다.

박 셰프는 18일에는 '이탈리아와 한국의 음식은 닮았을까'라는 주제로 강의를 했다. 그는 먼저 이탈리아의 파스타가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국수로 전해진 과정을 설명했다. 우리나라 기후는 밀 재배에 적합하지 않다. 밀은 매우 귀하고 비싼 재료여서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었다. '결혼식에 국수를 먹는다'는 말도 이때 생겼다. 그래서 과거에는 쌀과 메밀을 이용해 면을 만들었다. 메밀은 끈기가 없기 때문에 압면(반죽하여 틀에 눌러서 면을 뽑는 방식)하거나, 쌀을 반죽해 수제비처럼 손으로 뜯거나, 칼국수처럼 칼로 잘라 만드는 게 대부분이었다.

▲ 박찬일 셰프가 김해도서관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박 셰프의 설명에 따르면, 밀을 반죽해 말리는 지금의 국수 제조법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서 들어왔다고 한다.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통한 근대화 과정에서 유럽화 정책을 시도했다. 유럽을 배우기 위해 각국에 다녀 온 사절단은 이탈리아에서 밀가루 반죽을 손으로 길게 늘여 말리는 스파게티를 보고 국수 제조법을 배웠다. 일본은 이탈리아에서 배운 방법을 조선에 보급했다. 이렇게 해서 지금의 소면이 등장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박 셰프는 "국수는 고개를 숙여서 먹어야 하는 음식이다. 이탈리아의 파스타와 달리 겸손한 음식이다. 효모로 부풀리는 서양음식과 달리 국수는 발효과정이 없는 평면의 음식"이라고 말했다.

박 셰프는 이어 최근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 이른바 '쿡(COOK)방', '먹방'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자금력이 떨어지는 방송사들이 방송시간을 때우기 위해 저렴하게 만들 수 있는 먹방과 쿡방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먹방, 쿡방이 사람들의 생각을 왜곡시켜 현실 세계가 방송 세계와 비슷한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어 요식업에 뛰어들게 한다는 것이다. 그는 "방송의 인기에 힘입어 많은 사람들이 무턱대고 요리사라는 직업을 선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셰프는 먹방, 쿡방의 인기는 급기야 '백종원의 집밥'이라는 유행을 만들었다고 개탄했다. 그는 "백종원은 가족 붕괴, 1인가구 증가, 가처분소득의 저하로 집밥을 갈망하던 사람들에게 환상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혼자서 집밥을 해결할 수 있다는 백종원의 만능간장은 모든 음식 맛을 다 똑같게 만드는 맛의 획일화를 가져왔다"고 비판했다.

박 셰프는 비빔밥 이야기도 했다. 그는 "비빔밥은 조선시대 여성인권의 현실을 보여 준다. 여성들은 집안의 어른들과 남자들이 먹다 남긴 음식을 먹어야 했다. 남겨진 음식을 한꺼번에 섞어 먹으면서 비빔밥이 탄생했다"면서 "우리나라 음식은 융합음식이다. 통합적 미각은 잘 느껴지지만 개별 음식에 대한 미각은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박 셰프는 25일 강연에서는 '서양 부엌의 변화, 음식의 문화사'라는 주제로 조리기구가 끼친 음식문화의 변화를 이야기했다. 그는 먼저 우리나라의 가마솥탕 음식과 서양의 스프를 비교했다. 우리나라의 탕 문화는 넉넉하지 않은 형편 때문에 고기를 여럿이 나눠 먹기 위해 큰 솥에 오랫동안 끓인 데서 탄생했다고 한다. 서양음식인 스프가 탄생한 이유도 있다. 서양 사람들은 연료 부족 때문에 마을 단위로 날짜를 잡아 한꺼번에 빵을 많이 구워 오랫동안 보관하면서 먹었다. 이때 딱딱해진 빵을 부드럽게 먹기 위해 스프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박 셰프는 이어 신라 지증왕 때부터 이어진 석빙고 이야기를 하며 냉장고가 음식 문화에 끼친 영향을 이야기했다. 그는 "냉장고의 보급으로 음식을 장기 보관할 수 있게 돼 가족의 유대를 강화시켰다"고 주장했다. 각종 음식과 아이스크림이 냉장고에 보관되면서 '단 음식=행복=냉장고'라는 등식이 성립돼 가족의 행복과 직결되기도 했다는 이야기였다.

박 셰프는 질의 응답시간에 "가야시대의 요리로 어떤 것들이 있나"라는 질문이 나오자 "가야의 요리에 대한 문헌 기록이 부족하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음식 요리법 작성을 소홀히 했다. 가야요리는 상상력을 결합해 창의적 요리법을 가미하는 방식으로 다시 꽃피워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는 "부엌은 미래세대인 아이들의 영양을 책임지는 중요한 곳이다. 서양음식에 대한 사대주의를 버리고 우리 음식에 대한 자긍심을 갖길 바란다"고 참가자들에게 당부했다.

김해뉴스 /조증윤 기자 zopd@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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