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펴낸 책 '문재인의 운명'이 출간 하루 만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재판 인쇄한다. 초판 1만5천 부가 동이 나서 서점마다 책을 확보하느라 애를 먹고 있다. 세간의 관심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여러 언론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을 조사한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을 다룬 대목을 중심으로 기사를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렇게 화젯거리 중심으로만 읽기에는 담고 있는 이야기가 너무도 많다. '치욕의 날'이라는 소제목의 4페이지 정도에 걸친 글 속에서도 이인규 전 중수부장에 대한 대목은 단 석 줄이다. 그 대목을 가지고 그렇게 많은 기사가 쏟아지는 걸 보니, 그 날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책을 펴낸 가교출판사는 "원고가 완성되고 난 후에도 문재인 이사장이 한 동안 원고를 계속 살펴보느라 예정보다 책이 늦게 나왔다"고 전한다. 노무현 대통령 추모 2주기에 헌정하려고 했던 애초의 계획이 미뤄질 만큼 많이 고심했음을 알 수 있는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과의 첫 만남부터 함께 변호사 사무실을 꾸려가던 시절을 담은 '만남', 자신의 삶을 기록한 '인생', 참여정부 시절의 이야기를 돌아보는 '동행',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을 떠나보내는 엄청난 일을 겪은 심정을 털어놓은 '운명'. 책은 이렇게 4부로 짜여졌다.
 
기자는 문재인 이사장이 노무현 대통령을 처음 만났을 때의 장면이 제일 궁금했다. 일부러 그 대목을 찾지 않아도 몇 페이지 넘기지 않아 두 사람의 첫 대면을 회고하는 장면이 나왔다. "노 변호사 사무실은, 법원 검찰청이 예전에 있었던 부민동이었다. 수수하다 못해 조금 허름한 건물이었다. 법원의 정문 쪽이 아니고 후문 쪽이었지만 사무실 내부 공간은 꽤 넓었다. 그곳에서 그 분을 처음 만났다. 그 만남이 내 평생의 운명으로 이어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 처음 본 노 변호사는 젊었다. 1978년 개업을 했는데, 내가 개업하기 전까지 부산에서 제일 젊고, 고시 기수가 낮은 변호사였다.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느낌이 달랐다. (중략) 노 변호사는 판사생활을 짧게 해서 그런지 아니면 원래 기질이 그런지 모르겠지만, 풍기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아주 소탈했고 솔직했고 친근했다. 그런 면에서 금방 동질감 같은 게 느껴졌다."
 
문재인 이사장에 대해 궁금했던 독자라면 2부 '인생'이 인상 깊을 것이다. 부산 영도에서 살았던 가난한 시절, 지금의 모습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문제아' 시절의 학생 문재인, 그리고 시국사건으로 힘들게 보낸 대학시절, 군대 이야기 등은 긴장으로 페이지를 넘기던 마음을 조금 다독여 준다. 참여정부 시절과,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로 이어지는 '동행'과 '운명'은 가장 가까이에서 서로를 신뢰했던 두 사람의 행보를 볼 수 있다.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한 소설가 성석제는 독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글을 잘 쓰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상대를 설득하는 논리를 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문재인의 운명'을 읽는 내내 걸리는 대목 없이 책장이 술술 넘어갔다. 바로 얼마 전에 일어난 역사의 한 페이지라는 주제라서 책에 몰입한 것도 있겠지만, 담담하게 참 잘 쓴 글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높지 않은 목소리로 한 대목 한 대목 이야기를 펼쳐간다. 그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다. "그를 만나지 않았으면 적당히 안락하게, 그리고 적당히 도우면서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의 치열함이 나를 늘 각성시켰다. 그의 서거초자 그러했다. 나를 다시 그의 길로 끌어냈다.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라고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야 말로 운명이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 책의 마지막 대목이다.
 
많은 사림들이 문재인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호기심 말고, 그를 시대의 한 가운데에 내세운 그의 운명을 생각하면서 천천히 읽어야 할 것 같다.
▶문재인 지음/가교/468p/1만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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