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 구내식당이 다 그러려니 하다가 깜짝 놀란 인제대 학생식당 '다인'. 가격, 메뉴, 인테리어 할 것 없이 이용자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한다. 이 모든 게 직영체제 이후 가능해졌다.
한나라당에서 등록금 부담 완화 정책 발표 후 정치권의 논란이 가열되고, "조건 없는 반값 등록금 보장하라"는 대학생들의 시위가 확산되던 즈음, 이런 흐름과 결을 달리하는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외부 급식업체에 맡겼던 학생식당을 직영체제로 전환한 인제대학교(인제대) 학생식당이 학생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단순한 홍보성 기사일 것이라는 전제 하에 그 진위 여부를 확인하던 과정에서 뜻밖의 사실을 접했다.

350석 규모 식당 내부 넓고 쾌적
배식판 대신 개별식기 사용도 눈에 띄어
학생 의견 수렴 매주 사업단에서 수용
엄선된 재료와 메뉴에 '엄마 정성 밥맛'
시설·가격·서비스·위생 모두 합격점
이 모든 게 직영체제 전환의 결실
 
인제대 학생복지위원회가 재학생 1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학생식당에 대한 만족도 조사가 그것이다. 음식·서비스·위생 등 3개 분야 14개 항목에 대한 조사 결과는 신뢰도를 의심할 정도로 일방적이었다. '가격대비 음식의 양과 질'에 질문에는 만족한다는 의견이 78%인데 반해 만족하지 않는다는 의견은 4.8%에 불과했다. '식당 직원의 친절도'에 대한 질문 역시 만족한다는 의견이 89%인데 반해 만족하지 않는다는 의견은 1.5%에 불과했다. 나머지 항목들 역시 만족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개성이 강하고 기호가 다양한 대학생들로부터 이처럼 일방적인 지지를 받는 학생식당이 궁금했다. 대체 어떤 공간에서 어떤 음식이 제공되고 있는지 기자의 눈과 입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 인제대 학생식당을 찾았다.
 
350석 규모의 학생식당 내부는 넓고 쾌적했다. 습기를 머금은 초여름 날씨가 무색할 정도로 실내 온도 또한 적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오픈된 조리공간은 식당보다 더 밝은 조도를 유지하며 위생상태 역시 청결했다. 시설 면에서 볼 때, 유럽이나 일본 등 선진국의 학생식당에 결코 뒤지지 않는 수준이다.
 
취재 당일 점심메뉴는 뚝배기김치우동정식, 열무비빔밥, 물냉면 등 세 가지. 선택의 폭이 그다지 높다고 할 수는 없지만 계절을 고려한 메뉴 구성이 우선 인상적이다. 식권자동발매기에서 직접 식권을 구매해 세 가지 메뉴 전부를 시식했다. 단체급식에서 흔히 사용하는 배식판을 사용하지 않고 개별 식기를 사용한 점 또한 눈에 띈다.
 
뚝배기김치우동정식의 경우 주문을 받음과 동시에 콩나물·김치·어묵 등이 들어간 국물에 우동면을 말아 끓여 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데 공기밥과 세 가지 반찬이 함께 제공되니 양이 만만찮다. 북어를 넉넉히 넣고 우려낸 기본육수가 시원하고, 즉석에서 조리한 탓에 우동면의 탄력 또한 살아 있다. 햄버그스테이크, 계란찜, 깍두기 등의 반찬은 물론이고 특히 쌀밥은 단체급식에서는 보기드물 정도로 잘 지어졌다. 2천500원을 내고 먹기에는 미안할 정도로 맛과 양을 두루 갖추었다. 열무비빔밥의 경우 맵쌀과 보리쌀을 섞어 밥을 따로 지은 정성이 돋보이고, 물냉면 또한 면의 삶은 정도와 육수 맛이 제법이다. 가격은 절반 수준인데 반해 그 맛은 어지간한 전문점 못지 않다.
 
시설·가격·서비스·위생상태·음식 등 어느 것 하나 흠잡을 데 없다. 이쯤 되니 언론의 보도가 단순한 홍보성 기사가 아니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가 객관적이라는 사실이 입증된 셈이다. 그럼 과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인제대학교 식당직영사업단(사업단)' 관계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 내막을 살펴 봤다.
 
학생식당의 직영체재 전환은 2010년 9월로 거슬러 올라 간다. 시작은 "공부에 전념해야 할 학생들에게 먹는 것에 대한 고민을 덜어주자"는 백낙환 이사장의 의지에서부터 비롯됐다. 이후 학생식당 직영을 위한 테스크포스팀(TF팀)이 꾸려졌다. TF팀은 단순한 환경 개선이나 시스템 전환 등 하드웨어적인 측면의 논의에 그치지 않았다. 사업단의 정현철 총괄매니저에 따르면 "어떤 음식을 어떻게 제공할 것이냐"는 소트프웨어적인 측면에까지 세세한 논의를 거쳤다고 한다.
 
구체적인 사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TF팀은 한국인의 밥상의 기본은 뭐니뭐니해도 쌀과 김치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쌀과 김치의 품질이 곧 음식의 완성도·만족도와 직결된다고 판단하고 이 선택에 심혈을 기울였다. 후보에 오른 모든 김치와 쌀을 두고 팀원들이 블라인드 테스트를 실시해 가장 평가가 높은 것을 선택했다. 그 결과 현재 인제대 학생식당에서는 '창녕 우포늪쌀'을 사용하고 있으며, 김치의 경우는 단체급식 업계에서 맛은 뛰어나지만 납품단가가 높기로 소문난 김해의 C업체로부터 공급 받고 있다.
 
▲ (위에서부터)삽겹살구이 메뉴. 단체급식에선 찾아보기 힘든 차림이다/ 즉석에서 끓여낸 '뚝배기김치우동정식'. 밥맛이 뛰어나다/ 열무비빔밥
또 하나, TF팀은 직영식당의 모토를 '엄마의 정성과 손맛으로 만든 음식'으로 정했다. 그리고 이를 단순한 구호에 그치지 않고 구체화한 것이 앞서 소개한 '뚝배기김치우동'과 같은 즉석 메뉴다. 이미 만들어 놓은 음식을 배식하는 것이 아니라, 주문을 받는 즉시 조리함으로써 보다 따뜻한 음식을 제공하겠다는 취지다. 대구탕, 뚝배기불고기, 감자탕, 날치알밥 등의 즉석 음식은 대기 시간이 길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매우 인기가 높다고 한다.
 
이러한 세부적인 논의와 6억원의 예산을 투입, 전면 보수작업을 거친 인제대 늘빛관 학생식당은 지난 3월 7일부터 운영을 시작했다. 운영 이후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외부업체에서 운영했을 때 하루 800명 가량이던 이용자 수는 한달 만에 1천800명 수준으로 증가했고, 현재는 평균 1천500명 선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교직원들의 이용률이다. 학생(2천500원) 보다 높은 가격(3천300원)을 지불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용자가 급속히 증가해 현재는 매일 300명 가량의 교직원이 학생식당을 이용하고 있다. 정현철 총괄매니저에 따르면 "이원로 총장님조차 감자탕 맛에 반해 학생식당을 자주 찾는다"고 한다.
 
최근에는 물가 인상으로 인한 식재료 구입 비용의 증가로 직영급식의 경우는 식단이 나빠지거나 가격을 인상하고, 위탁급식의 경우는 운영을 중단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인제대 학생식당 역시 이러한 현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지만 대처 방식이 조금 다르다. 운영 초기 설정한 식재료 비용 70% 선이 넘을 때도 있지만 음식의 질은 동일하게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 학교급식 현장에서만 13년을 근무해 온 신라영 영양사는 직영 전환 후 좋은 점이 무었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돈 걱정 안하고 식재료를 구입할 수 있어서 참 좋다!"라고 답할 정도다. 재단과 대학본부의 적극적인 의지와 재정적 지원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더불어 사업단은 매주 운영위원회를 개최해 운영 상황을 점검하고 개선책을 모색하고 있다. 총괄매니저와 영양사는 항상 현장에서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해 위원회에 전달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학생들의 요구 사항은 단계적으로 개선되어 가고 있었다.
 
또한 급식 인원이 상대적으로 적은 금요일 저녁은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는 기회로 활용하고 있었다. 때마침 취재를 갔던 날 저녁 메뉴가 그런 경우였다. '삼겹살구이'라니! 이게 정말 단체급식에서 가능한 메뉴일까 궁금해 취재 시간을 연장하면서까지 맛을 봤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가격이 치솟는 국내산 삼겹살을 즉석에서 구웠고, 상추·깻잎·쌈무·파절이·풋고추·김치에 밥과 된장국까지 곁들여진 푸짐한 밥상이었다. 식재료 하나하나를 깐깐하게 선택한 탓에 맛까지 뛰어나 학생들의 인기가 대단했다. 여름방학 기간에는 새로운 메뉴 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하니 인제대 학생들, 2학기가 되면 더욱 다양한 밥상을 받게 될 것 같다.
 
▲ 식권자동발매기에서 2500원을 투입하고 식권을 발매하고 있는 학생들. 이정도 가격이면 '먹는 장학금'이라 할만하다.
가정과 일반식당 음식의 경우 개인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선택의 폭이 넓고 편차가 크다. 하지만 단체급식은 보다 저렴한 가격에 평균적인 음식을 제공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단체급식의 수준은 곧 특정 국가나 조직의 가장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복지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된다. 인제대 학생이 학생식당에서 2천500원에 식사를 하면 학교측에서 평균 1천원 정도를 지원하는 구조라고 한다. 이를 두고 인제대 측은 '먹는 장학금'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반값 등록금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먹는 장학금'에 대한 이견은 있을 수 있다. 더군다나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복지정책의 경우 그 효과가 더디게 나타날 뿐만 아니라, 가시적인 효과를 측정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하지만 학생들의 만족도가 80%에 이르는 설문조사 결과와 이용률 증가로 볼 때, 일단은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시작 단계에서의 이러한 평가를 앞으로 어떻게 유지하느냐가 관건이다. 이에 대해서는 김해 시민들 또한 한번쯤 관심을 가져 보실 것을 권한다.
 
유럽이나 일본의 대학 학생식당은 지역주민들의 이용률이 꽤 높은 편이다. 심지어 독일 하이델베르그대학처럼 학생식당 자체가 그 지역의 관광명소인 경우도 있다. 인제대 학생식당 역시 굳이 학생이 아니더라도 이용이 가능하다. 시중 음식점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가격에 아주 괜찮은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 때마침 도서관 갤러리에서 '멕시코 예술가 3인 3색 전'이 열리고 있어 외식과 문화생활을 한번에 해결할 수도 있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것은 학생식당과 갤러리 모두 공휴일은 휴관이라는 점이다.
▶위치: 김해시 어방동 인제대학교 늘빛관 1층





박상현 객원기자
사진촬영 = 박정훈 객원사진기자 pungly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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