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유화상 영정.(성조암 소장_왼쪽) 장유화상 사리탑.(장유암 소장_오른쪽)

김해를 비롯한 경남 일대의 오래된 사찰들 중 명확한 창건 기록이나 자료가 없는 절들은 수로왕이나 장유화상 관련 창건 설화를 간직한 곳이 많다. 지리산 칠불암과 밀양의 만어사, 부은암 등이 그것인데, 특히 김해의 오래된 절들은 대부분 장유화상과 관련이 깊다고 한다. 은하사, 장유암, 모은암, 해은사, 흥부암 등은 수로왕과 장유화상이 창건하였고 지금은 폐사되었지만 왕후사, 자은암도 가야시대 때 사찰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불교 전래의 역사를 보면 고구려의 경우 중국의 전진으로부터 소수림왕 때인 372년경 불교가 전래되었다고 하며, 신라는 고구려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여 법흥왕 14년(527) 때에 이르러서야 공인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가야는 우리나라 최초로 불교가 전파되고 절이 지어졌다는 셈인데 사실일까? 가야에 불교를 전파하고 수많은 사찰을 지었다는 장유화상은 과연 어떤 인물인가?
 
장유화상의 본명은 허보옥(許寶玉)으로 수로왕후 허황옥의 오빠 또는 남동생이라고 한다. 아유타국의 왕자로 허왕후가 배를 타고 건너올 때 같이 수행하여 왔다고 하며 지금의 장유면 불모산에서 오랫동안 수행(장유, 長遊)하였다고 한다.(은하사 취운루 중수기(銀河寺翠雲樓重修記)). 그리고 이후 수로왕의 아들 중 7왕자를 출가시켜 모두 부처가 되게 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칠불암 설화)
 
그러나 일연스님에 의해 편집된 '삼국유사' '가락국기'에도 장유화상 관련 내용은 전혀 나오지 않는 데다 장유화상이 창건했다는 사찰 중 가장 유명한 절인 신어산 은하사의 대웅전(경남도 유형문화재 제238호) 중건 상량문(가경 6년(1801))을 보면 수로왕의 창사 설화가 나오지만 여기에도 장유화상 관련 기록은 없다. 장유화상의 사리탑(舍利塔·스님의 진신유골을 모셔두는 탑 형태의 무덤·문화재자료 제31호 )도 조각수법 등을 보면 가야시대가 아닌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남방불교의 특징은 대중의 포교와 구제를 목표로 하는 북방의 대승불교와 달리 개인의 수행에만 정진하고 절이나 탑 등을 남기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남방불교의 장유화상이 그렇게 많은 절들을 건립하고 남겼다는 것도 모순이다.
 
그런데 장유화상은 결국 허왕후와 직접 관련될 수밖에 없다. 허왕후는 아유타국 공주로 부왕의 명을 받아 수로왕과 혼인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왔다고 하였다. 물론 설화겠지만 수 천 리 바닷길을 일면식도 없는 배필을 찾아 건너왔다는 것이어서 당위성이 떨어진다. 그렇다면 장유화상과 그 정체의 근거가 되는 허왕후 관련 설화 전체가 거짓일까?
 
이와 관련하여 인도 아소카왕 설화와 관련지을 필요가 있다. 아소카왕은 기원전 3세기 인도 최초로 통일왕국을 건립하고 불교를 포교했다는 인물이다. 인도 현지에 전하는 전설 중에는 아소카왕이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네팔 지역에 공주를 시집보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를 보면 허황옥이 왜 뜬금없이 머나먼 바다를 건너 가야의 땅에 시집오게 되었는지 설명이 가능하다. 즉 불교의 전파를 위해서 망망대해를 건너온 것이라고 보면 무리일까? 요즘의 선교사와도 같은 종교적 신념으로, 불교를 전파하려는 아소카왕의 명령으로 가야 지역에 오게 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당연히 '장유화상'이라는 존재도 허왕후를 수행하여 오지 않았을까?
 
불교 관념과 상반되는 순장제도의 존재 등을 들어 가야의 이른 시기에 불교가 전래되었다는 학설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학자들도 가락국기의 왕후사 건립 기록 등을 근거로 가야 후기에는 불교가 충분히 전파될 수 있었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 결국 가야시대에 불교가 전해졌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으나, 시기가 문제인 것이다.
 
일찍 멸망하여 관련 문헌기록이 없고 왕궁지를 비롯한 지배계층의 주거 영역이 아직 발굴되지 않아 가야 불교의 확실한 증거를 찾기란 아직 어렵다. 그러나 경남의 많은 사찰과 후손들, 지역민들이 가야 불교와 장유화상의 존재를 믿고 있는 한 언젠가는 그 실체가 분명히 밝혀질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확실한 가야 불교 유적인 왕후사에 대한 조사와 왕궁지 등에 대한 학술 발굴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허왕후가 건너온 인도의 남부 지방에는 예수님의 12제자 중 한명인 도마 성자의 무덤이 있다고 한다. 그보다 더 오래된 인도의 고인돌은 우리나라의 것과 축조 시기와 방법, 크기와 규모 등이 거의 동일하다. 어쩌면 3천 년 전의 세계는 우리의 생각보다 더 좁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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