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박람회>
앤소니 드 멜로
분도출판사
264쪽

악마가 친구와 산책을 하러 갔다. 앞서 걸어가던 사람이 허리를 굽혀 길에서 무언가를 줍고 있었다. "뭘 발견한 걸까?" 친구가 물었다. "진리의 한 조각이로군." 악마가 말했다. "자넨 속상하지도 않나?" "속상할 것 없지. 난 저 사람이 그걸 종교적 신조로 삼도록 내버려 둘 생각일세."-종교적 신조를 고집스레 붙들고 늘어지는 사람은 마치 이미 진리를 소유한 양 착각하고 있어 진리를 향해 나아가지 못한다.(<종교 박람회> 중에서)
 
틀에 박힌 형식들을 부자연스러워하는 성격이어서 제멋대로인 구석도 꽤 많은 편이다. 한참 혈기왕성하고 예민했던 20대를 거치면서 일상뿐 아니라 신앙생활에서조차 '본질적인 것' 외의 것이라 생각되면 우습게 치부했다.나 자신이 신앙인이었음에도 '구원은 내 종교 안에만 있다'는 편협함에는 코웃음으로 냉소했다.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이런 생각들이 <종교박람회>의 우화들을 만나면서 변화를 일으켰다. '생각'은 그대로였지만 그 생각을 품고 있는 '태도'가 달라진 것이다. 뭔지 모를 날선 긴장감이 풀어지면서 더 편해지고 더 너그러워졌다고나 할까. 확신이나 신앙을 잃더라도 스스로에게 솔직한 자신을 사랑하면서 '너답게 살라'는 격려가 나를 더 자유롭게 만들었다. 
 
<종교박람회>에서 모두의 주인공 하느님은 인간들에 의해 편벽하고 광신적이며 잔인하고 옹졸하게 왜곡된다. 진리에 열려 있어야 할 신앙이 신념화해 폐쇄적이고 완고해질 때, 히틀러 같은 괴물이 언제든지 튀어나올 수 있다. 여기서 진리에 열려있다는 것은 내 믿음만을 고집하지 않고 항상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이 책의 본래 제목은 <새들의 노래>다. 모든 종교에 공통적인 '신비주의'를 수많은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예수회 신부였던 저자는 '있는 그대로'를 진정으로 느낄 수 있도록 오롯이 현재에 머물 줄 아는 '깨어있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는 불교에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고 고백하는 경지와 다르지 않다. 깨달음 뒤에도 현실은 그대로지만,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함으로써 마음은 경이로 가득 찰 수 있다는 것이다.
 
"새 한 마리의 노래 소리를 진정 들었다면, 나무 한 그루를 과연 보았다면…." <깨어나십시오!>를 비롯한 저자의 또 다른 저서들과 함께 <종교 박람회>의 일독을 권해 본다. 김해뉴스




강미경/우리동네사람들 시민정책위원회 팀장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 석사 수료. 방송통신대학교 교육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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