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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책(Book) 내 삶을 바꾼 이 한 권-시즌Ⅱ
‘빚’ 오로지 개인만의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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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재 2016.03.30 09:21
  • 호수 266
  • 13면
  • 박태남 인문공간 생의 한가운데 대표(report@gimhaenews.co.kr)

   
 
<빚 권하는 사회, 빚 못갚을 권리>
제윤경
책담·328쪽

‘빚은 계약관계에 의해 이뤄진 것’
“빌려준 자 책임도 물어라” 항변

'빚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데 의문을 제기한다면 주변 사람들이 나를 피할지도 모른다. 혹시 돈을 빌려달라면 어쩌나 염려되어 만나길 꺼린지도 모른다. 그들은 '도덕'의 잣대로 나를 재단할 것이며 내가 하는 모든 행위들을 의심스런 눈으로 보게 될 것이다. 실은 얼마 전까지 빚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이랬음을 고백한다.
 
서민으로서 한 생을 살아가는 한, 툭툭 불거지는 경제적 문제 앞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중산층의 삶도 한순간이다. 우리 사회의 경제 시스템 아래 금융리스크를 체감하지 않을 계층은 소위 상위 1% 정도 될까. 금융 시스템의 궁극적 목적은 예측 불가능성을 전제로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구제하는 데 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과도하게 화폐화된 금융'은 그 본연의 의무를 망각한 듯 '소시오 패스'화 되어 사람을 잡아먹는 데 이르렀다. 빚 갚을 수 있는 여건을 오히려 망가뜨리며 사회에서 고립시켜 결국은 죽음의 문턱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이 세상에 목숨과 바꿀 수 있는 빚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신자유주의의 최전선에서 금융이 보여준 도덕적 해이를 세상이 다 안다. 미국의 주택담보대출 파생 상품의 부실로 전 세계 경제가 받은 타격은 깊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난의 주범인 기업과 금융기관은 구제받았고 임직원들은 수백만 달러의 보너스를 받았다.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금융권이 저지른 부패와 경영실패에 대한 책임은 개인과 국민이 고스란히 떠안았다.
 
국민 10명 중 6~7명이 빚진 나라. 이 정도면 빚으로 지탱되는 사회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왜 빚지게 되었는가? 악성 채무의 구체적 내용은 대부분 주택과 의료와 교육이었다. 
 
이 책의 미덕은 빚이 오로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강력하게 항변하는 데 있다. 빚은 계약관계다. 그러므로 빌린 자의 갚을 의무에 준하는 빌려준 자의 책임을 묻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지극히 상식적인 질문을 던지며 빚진 자 편에 오롯이 서서 당신만의 책임이 아니라고 말해준 이는 없었다.
 
저자는 은행과 대부업체와 금융위원회로 대표되는 국가가 개인의 빚을 두고 벌이는 뒷거래를 고발하며 오히려 채무자가 과도한 책임감에서 벗어날 것을 권한다. '자기가 결정하고 결과도 자신이 책임지라는 말은 리스크 사회가 약자에게 강요하는 삶의 방식 또는 죽음의 방식'이라는 입장을 견지한다. 빚진 당신보다 빚 권한 이들의 속성을 '약탈적 금융'이라 규정하면서 '불쌍한' 채무자에게 필요한 것은 또 다른 빚이 아니라 사회적 불행을 막을 수 있는 복지라고 말한다.
 
혹 편파성을 의심하는 사람도 있을 법 하다. 하지만 염려하지 않아도 좋겠다. 사람의 목숨이 돈보다 우선한다는 진리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중심이 되어 운영하는 빚 탕감 프로젝트, 주빌리 은행에서 구제한 것이 빚이 아니라 삶임을 간파할 수 있다면 오독의 가능성은 줄어들 것이다. 때로 지독한 불균형은 지독한 편파성을 필요로 한다. 그런 점에서 빚 때문에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선 이들에게는 한 권의 복음서가 될 수도 있겠다.
 
후반부에 실린 증언은 제도를 왜곡하고 비껴가면서 이루어지는 비인간적인 채권추심이 빚을 갚지 못하게 만드는 역설적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빚을 볼모로 극도로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은 결국 가난한 사람을 제거하는 프로그램으로 작동할 것이다. 사회적 기능을 멈춘 사람이 많아지는 것은 자본을 위해서도 유익하지 않다. 지금의 금융은 가난한 사람들을 아감벤이 말한 '호모 사케르' 즉, 쓰레기 인간으로 만드는데 일조한다는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의 부가 온전히 우리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게 아님을 인정하자.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집값이 올랐고 다행스럽게 아직까지는 내가 휘청거릴 만한 요인이 발생하지 않았을 뿐이다. 오늘 나의 부가 노력에 비례한 것이 아니라면 빚진 자 역시 그만의 책임이 아닌 것이다. 몽테뉴의 '나는 우연이 능력보다 앞서서, 한참 앞서서 자주 행진하는 것을 보았다'는 말은 깊이 새길만 하다. 우리의 의지보다 우연이 삶을 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빚에 있어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김해뉴스

   
 


박태남
인문공간 생의 한가운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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