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이기훈
비룡소
48쪽

글자 없는 그림책의 판타지 감동
책장 넘길 때마다 상상 세계 활짝

이기훈 작가의 글자 없는 그림책 <알>. 이 책에서는 상상 그 이상의 세상과 철저한 현실, 두 세계가 공존하고 있다. 글자 없는 책으로 유명한  <눈사람아저씨>를 읽고 눈물을 훔쳐본 독자라면 이기훈 작가의 글자 없는 그림책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상상의 세상은 독자로 하여금 한편의 탄탄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게 한다.
 
흔해빠진 달걀판에 한 개의 알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다음 장을 넘기면 수많은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과연 누구의 눈동자일까?'
 
병아리를 파는 곳. 아이는 병아리를 사달라고 하고 엄마는 안 사 줄려고 한다. 이 실랑이,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하다.
 
마침내 병아리를 포기하고 엄마의 손에 질질 끌려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의 현실. 왠지 뜨끔하다.
 
그러나 아이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집안 일로 분주한 엄마의 눈을 피해 냉장고의 달걀을 치마 가득 담아 자신의 방에 가지고 온다. 담요를 뒤집어씌우면서 그 달걀로 병아리를 만들어 낼 생각에 마냥 행복해 한다. 반면 아이의 어질러진 방을 못 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엄마. 현실 속 어른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아이는 상상한다. 알이 조금씩 쪼개지면서 수많은 병아리가 탄생하는 장면을.
 

하지만, 알에서 나온 건 얼룩말, 코끼리, 사자 같은 다른 동물들이다.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드는 작가의 상상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아이의 책장을 보니 동물책이 많던데.
 
아이는 엄마의 눈을 피해 음식을 가져다주면서 동물들을 키운다. 방은 점점 지저분해지고 엄마는 못마땅해 야단을 친다. 그래서 아이는 동물들을 데리고 탈출을 한다. 근처 호수에서 오리 배를 타고 어딘가를 향해 간다. 하지만 비가 오더니 파도에 휩쓸려 폭포 아래로 떨어지게 되고 바다로 흘러가게 된다. 큰 고래가 집어 삼켜 뱃속에 들어가게 되지만 고래가 물을 뿜을 때 빠져나오게 된다.
 
엄마는 뒤늦게 아이가 없어진 사실을 알게 된다. 아이가 사라진 방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아무리 말썽만 일으키던 아이라도 없어지면 걱정이 되고 궁금한 법, 창가에서 아이의 사진을 조용히 들여다보고 있는 엄마의 표정은 그전과는 사뭇 다르다.
 
아이와 동물들이 타고 있던 오리 배가 점점 작아지더니 기러기처럼 변한다. 오리 같기도 한 그 새는 어느새 아이가 사라진 빈 방 창가로 날아와 아이 엄마 앞에서 창가에 알을 낳고는 어디론가 가버린다. 이 알은 과연 무엇일까? 아이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흔해빠진 달걀판에 깨져있는 빈껍데기 한 개만 남아있다. 작가는 그렇게 어떤 결론도 짓지 않고 이야기를 마무리 한다.
 
지금까지 보았듯 아이들의 상상의 세계는 어른들보다 다채롭다. 그런데도 어른들은 그런 아이들의 상상의 세계를 가두려고 한다. 호기심 많은 아이들은 말썽쟁이로 낙인찍어 버린다.
 
이 책 속 아이에 대한 엄마의 태도는 교사로서 부모로서 살고 있는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어린 시절에 펼치는 상상력의 중요성을 깊이 공감하고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 행동들에 대해 관대하지 못했음을 깊이 반성하게 된다.
 
결말을 철저히 독자의 몫으로 남겨놓은 작가를 보면서 아이들의 상상의 세계에 대한 작가의 탄탄한 믿음과 희망을 보게 된다. 이 책은 아이든 어른이든 누구든 같이 읽고 이야기를 나누기에 참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글자가 만들어 놓은 틀을 깨고 그림만으로 만나는 상상의 세계. 꼭 한번 접해보길 바란다. 김해뉴스




백기열
김해 봉황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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