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뉴스> 창간호가 나오고 나서 과분한 격려를 많이 받았습니다. 1면에서부터 마지막 면까지 샅샅이 다 훑어봤다는 분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고언을 보내 주신 분들도 계셨습니다. 모두 <김해뉴스>가 우리 사회의 의미 있는 밀알이 되는 데 도움이 되는 말씀들이었습니다.

창간호에 실린 열 다섯 분의 축하인사 말씀들도 그러했습니다. '비전과 대안 제시' '커뮤니케이션 통로' '소통과 사랑의 전령사' '품격 있는 지역문화 창달' '외진 것들에 대한 따뜻한 관심' ….

저는 그중에서도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란 대목에 특히 눈길이 갔습니다. 그리하여, 새삼스럽게 언론의 자세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언론을 흔히 동물에 비유합니다. 그 동물은 토끼와 개를 말합니다.

먼저, 토끼를 살펴보겠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해군 잠수함 유보트는 연합군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이 유보트가 토끼를 태우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공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잠수함 내에서 자체적으로 공기를 생산하는 시설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공기가 희박해지면 수면으로 떠올라 공기를 주입한 다음 다시 잠수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공기가 희박하다는 사실을 그들은 어떻게 알았을까요? 이때 토끼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공기가 희박해지면 토끼는 까무라쳐 버리는데, 이걸 보고 공기의 양을 측정했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언론은 그 사회의 공기 희박도 혹은 오염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민감하게 파악해 내서 사태가 악화되는 걸 막는 구실을 한다는 얘기입니다.

언론을 달리 개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이 개는 4가지 종류입니다. 권력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랩독(애완견), 완전히 유착돼 있는 건 아니지만 권력을 위해 봉사하는 가드독, 권력을 감시하는 워치독(감시견, 파수견), 권력을 좌지우지 하는 어택독이 그것입니다.

이중에서 언론이 지향하는 개는 '워치독'입니다. 언론이 비판성 기사를 많이 쓰는 이유는, 이 언론 본연의 자세 혹은 지향성 때문입니다.

<김해뉴스> 창간기념식때 축사를 하신 분들은 모두 네 분입니다. 김맹곤 김해시장님, 김정권 한나라당 국회의원님, 최철국 민주당 국회의원님 그리고 배정환 김해시의회 의장님입니다. 몇 분은 축사의 와중에 저와의 개인적인 친분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축사를 하신 분들은 모두 다 <김해뉴스>가 감시하고 비판해야 할 분들이기도 한데, 아닌게 아니라 이렇게 되면 기자도 사람인지라 마음이 약해지곤 합니다. 나아가 김해에는 아는 분들이 숱하게 많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일이 생길 수도 있을 터라서, 미리부터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이 대목에서 일화를 하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래 전 프랑스에 조르주 바타이유란 사회학자겸 소설가가 있었습니다. '새디즘(가학성 음란증)'의 근원이 소설 '소돔 120일'을 쓴 사드 후작인데, 바타이유는 '사드의 적자'라는 말을 듣습니다. 바타이유도 성애의 극한을 보여주는 소설을 발표했습니다. 하루는 남미의 한 국민작가가 파리에서 바타이유와 말을 나누고 나서 이렇게 물었답니다. "아니, 선생님같은 신사 분이 어떻게 그런 소설을 썼습니까?" 그러자 바타이유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저야 물론 신사지요. 나쁘다면 문학이 나쁘겠지요."

<김해뉴스> 임직원 모두의 마음가짐이 무릇 이와 같습니다. 혹 비판을 받는 분들께서는 이런 정황을 부디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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