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부모가 양육하는 조손가족의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슬기로운 생활 시험에 55점을 받았다. 영리한 아이인지라 초등학교에 들어가 처음 본 시험에 그런 점수를 받더니 매우 심한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너무도 기가 죽었기에 시험문제를 살펴 보니 그 아이의 상황으로는 도무지 풀 수 없는 문제들이다. 태어날 때부터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는 아이에게 보편적인 가족 구성과 어머니와 같이 할 수 있는 일, 아버지와 같이 할 수 있는 일, 또 엄마와 아빠와 겪은 일을 물으니 부모 없는 아이가 어떻게 대답을 하겠는가?
 
아마도 교사는 출제의 순간에도 그런 가족 배경을 가진 아동을 고려하지 못했으며 시험을 보는 시간에도 어떻게 대치해 보라는 설명이나 배려조차 없었던 모양이다.
 
한때 교사들의 양성 평등 감수성이 문제가 된 적도 있지만 나는 아직도 이 정도로 학생에 대한 이해와 소수자에 대한 감수성(sensitivity)이 부족한 교사나 학교에 대해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아이는 점수가 낮아 부끄러운 데다 다른 아동들로부터 그것도 모르냐고 무시를 당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자존감이 상처받고 학업에 대한 자신감을 잃으면 학교가 싫어질 것이다. 시험 결과가 나온 후에라도 교사가 점수의 문제점을 분석하여 적절한 코멘트로 이 학생들을 격려했다면 아동의 상처는 어느 정도 치유가 될 수 있었을 것이지만 그 교사는 그러지 못한 것 같다.
 
또 '조손가족'인 5학년 남자아이는 가족의 종류를 배우는 수업시간에 다른 친구로부터 조손가족이란 지적과 놀림을 받고 몹시 서러워 하며 학교에 가기 싫다고 했다. 담임선생은 교과서에 나와 있는 가족의 종류, 즉 핵가족·대가족·다문화가족·조손가족·모자가정·부자가정 등에 대해 분류 방법을 가르치면서 이미 우리사회에 차별과 편견이 내재되어 통용되는 소수자 가족 이해를 위한 부가적 설명을 못한 것 같다.
 
만약 교사들에게 소수자 가족에 대한 깊은 이해와 감수성이 있었다면, 그런 수업시간에 보통의 아동이 가졌을 만한 편견을 제거하고 그런 대상아동을 섬세하게 배려하고 지지하는 기술을 사용했을 것이다. 그래서 수업시간에 누군가는 상처받고 누군가는 상대적 우월감을 느끼는 차별적 시간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위해 필요한 지식을 잘못 전수하여 차별과 편견의 토대로 활용하게 하는 교육은 교육자의 이해 부족이나 감수성 부족에 맞닿아 있다. 문제는 그것조차 느끼지 못하는 교사나 학교의 불감증이며 타인에 대한 무관심이다.
 
조손가족을 조손가족이라 하고 모·부자 가정을 그렇게 부르는데 무슨 문제가 있냐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분류는 사회복지 정책과 사업을 위한 분류일 뿐 일상생활에서 아이들이 불러야 할 필요가 거의 없는 지식이다.
 
교사라는 교육전문가가 그런 점에 소홀하다는 것은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애기다. 이참에 각 학교에서 다문화가족, 조손가족, 모·부자가족, 시설가족의 아동을 대하는 교사의 스케일과 학교 관리자의 책무 체크 리스트라도 만드는 것이 어떨까?
 
아동의 상황에 맞는 적절한 이해와 도움은 크게 교사의 조손가족이나 다문화가족 감수성까지 거론하지 않아도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소양이자 책무이다.
 
감수성이란 일찍이 네가 대접받기를 원하거든 남을 그렇게 대접하라는 기독교의 사랑, 불교에서는 모든 것을 불쌍히 여기라는 자비심으로 실천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식이 감성보다 소중하게 치부되는 사회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말 한마디 시선 하나로 부지불식간에 약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일이 얼마나 흔하며 얼마나 무서운 폭력인가를 우리 모두는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