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철-범철 형제가 한재미나리에 고기를 넣고 있다.

돼지 관자놀이 부분 선홍색 고기
연하고 쫄깃한 식감 소고기 육회 먹는 듯
독특한 멸치 육젓소스와 환상적 조화

묵은지·갓김치·한재 미나리 등
고깃집 불구 10여 가지 밑반찬에 “와!”
흔들어 비벼먹는 옛날 도시락 추억은 덤

형제 2년 터울로 같은 한의대 졸업
박 사장 “손님 대접하는 맘으로 장사”

 
어방동에 '김 한의원'이 있다. 김정철·범철 형제가 원장이다. 두 형제와 함께 점심을 하기로 했다. '밥심'으로 산다는 우리네 정서를 생각하면 한의사들의 추천 맛집은 조금 다를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터다.
 
그런데 두 형제는 점심인데도 삼계동 수리공원 옆에 있는 고깃집 '참숯뒷통'에서 만나자고 했다.
 
김해에서는 유달리 '뒷'자가 들어가는 고기가 유명하다. 약 30년 전부터 시작된 '김해 뒷고기'는 이제 전국적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뒷고기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뒤로 빼돌린 고기라는 말이 있는가 하면, 소·돼지를 도축했을 때 상품성이 없는 고기를 지칭하는 것이란 주장도 있다. 거꾸로 도축 전문가들이 정말 맛있는 부분을 뒷고기로 분류해 빼돌린 뒤 사장 몰래 챙겨 먹었던 고기라는 소문도 있다. 이름의 유래야 어찌됐든 뒷고기는 맛과 착한 가격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음식이 되었다.
 

▲ 벌겋게 달아오른 참숯불. 석쇠에 올린 뒷통고기. 기본 상차림(사진 위로부터).
참숯뒷통에 도착하니 허영만 화백의 만화 <식객Ⅱ>에 소개된 맛집이라는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형제를 본 박덕배 사장이 반색을 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형제가 한의원을 같이 운영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두 사람은 연년생인데, 2년 터울로 같은 한의대를 졸업했다. 형인 김정철 원장이 한의대에 먼저 입학했다. 다음해에 동생 범철 씨는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가 그만두고 형이 다니던 한의대에 다시 입학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기에 형제는 서로에게 많이 의지한다고 했다. 지금의 '김 한의원' 자리는 어릴 적 자신들이 살던 집이라고도 했다. 옛 마을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한의원을 하면 더욱 정성을 다해 진료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야기가 무르익을 즈음 기본 찬이 차려졌다. 묵은지, 갓김치, 콩나물 무침, 옛날 소시지, 깻잎 장아찌, 오이 무침, 잡채, 감자 크로켓, 한재 미나리 등 고기집인데도 불구하고 기본 밑반찬이 10가지가 넘었다. 기자는 "이걸 다 맛보면 고기 채울 배가 없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박 사장이 대답했다. "밑반찬은 모두 장모님이 직접 준비합니다. 장모님의 고향이 전남 강진이라 손맛이 좋습니다."
 
주방장의 고향이 호남이라는 말에 제일 먼저 갓김치 맛을 보았다. 잘 익은 갓김치 특유의 알싸한 풍미가 그대로 전해져왔다. 갓김치는 언제 먹어도 봄맛이다. 젓가락은 다시 생기발랄하게 보이는 콩나물 무침으로 갔다. 콩나물은 아삭거리는 소리로 먹는 음식이다. 그래서 데침의 정도가 중요하다. 그 식당의 수준은 가장 싼 재료로 맛을 낸 찬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콩나물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자 아삭아삭 소리와 양념 맛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추억을 돋게 하는 밑반찬도 있었다. 계란을 묻혀 두툼 큼지막하게 구워낸 옛날 소시지는 보는 것만으로도 정감이 갔다. 한입 베어 물자 추억을 동반한 미각이 입 안에 가득 찼다.
 
▲ 고기를 손질하는 박덕배 사장
한껏 봄을 머금은 미나리도 식탁의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돌돌 말아 입 안에 넣어 보았다. 봄 향기가 입안에 가득 찼다. 박 사장이 말했다. "청도 한재 미나리입니다. 일 년에 딱 두 달 동안만 맛볼 수 있죠. 다음 주면 한재 미나리도 끝물입니다."
 
한재 미나리는 비싸지 않느냐고 물었다. "제철 재료만큼 맛나는 음식은 없습니다. 저희 집을 찾는 대부분의 손님이 단골입니다. 더한 것도 찾아서 대접해야지요."
 
박 사장은 김해에 정착한지 14년째다. 김 한의원의 두 형제를 알고 지내온 시간이 벌써 13년이 되었다. 박 사장은 아들의 심한 편식 때문에 체질을 바꾸고 싶어서 김 한의원을 찾았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김해에 온지 1년밖에 안 됐을 때는 당연히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했는데, 김 한의원 형제가 유달리 친근하게 맞아 주었다고 했다. 두 형제 덕택에 아들의 편식도 사라졌다고 했다.
 
"처음엔 한의원을 찾아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할 겸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맛 난 음식은 열 한의사 안 부럽습니다. 박 사장님이 내어 놓는 음식은 저희 한의사보다 낫습니다." 형인 김정철 한의사가 이 집 음식 맛을 치켜세웠다. "한 번 두 번 발걸음을 하다 보니 형도, 저도 이곳이 참새 방앗간이 되었습니다. 이러다 한의원 문 닫는 거나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동생 김범철 한의사가 웃으며 형의 말을 거들었다.
 
이글거리는 숯불을 들고 박 사장이 다시 식탁을 찾았다. "가게 이름처럼 참숯만 사용합니다." 숯불 위에 석쇠가 놓이고 손바닥만한 크기의 선홍색 돼지 뒷통살이 숯불 위에서 지글거리기 시작했다.
 
▲ 참숯뒷통' 전경.
"매일 축산물 도매시장 가서 고기를 구해 와 직접 손질을 합니다. 뒷고기는 혀와 코, 볼살이 주축인데, 뒷통살은 돼지의 관자놀이 부분에 있는 것입니다. 삼겹살이나 목살과 달리 고기가 연하고 쫄깃한 게 특징입니다."
 
노릇노릇 익은 뒷통살을 한재 미나리에 싸서 먹어 보았다. 미나리의 향과 더불어 뒷통살의 쫄깃함이 마치 두툼한 소고기 육회를 연상시켰다. '참숯뒷통'은 자신만의 소스를 사용한다고 했다. 석쇠에 올려 한번 끓여서 잡내를 없앤 멸치 육젓소스는 이 집만의 비법이었다. 돼지고기와 새우젓의 궁합이 좋은 줄은 알았지만 멸치육젓과 돼지고기의 궁합도 환상적이었다.
 
주문한 고기가 입 속으로 거의 사라질 무렵 두 형제가 이구동성으로 옛날 도시락을 먹어보라며 주문을 했다. 노란 양은도시락이 된장찌개와 함께 나왔다. 된장찌개의 구수함이 진했다. 도시락 덮개를 열자 계란프라이, 소시지, 멸치볶음, 김치볶음, 어묵볶음이 밥 위에 덮여 있었다. 갑자기 동생 김범철 한의사가 도시락을 들고 마구 흔들었다.
 
"이렇게 하면 아주 자연스럽게 잘 섞입니다."
 
세 사람은 동시에 도시락을 들고 아이처럼 흔들었다. 그렇게 흔들어 비빈 도시락은 정말 별미였다.
 
"좋은 음식, 즐거운 음식은 몸이 먼저 압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잘 먹는 음식이 보약입니다." "정성들여 차린 밥상이 동의보감입니다. 이런 집이 많이 생기면 한의원은 찾을 사람이 없어 문을 닫는다니까요."  두 한의사의 말재간이 난형난제요 호형호제였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한의원으로 향하는 두 형제의 등에는 어린 시절 집으로 향하던 두 소년의 가방 속에서 달그락거리던 해맑은 웃음이 매달려 있었다.

▶참숯뒷통/해반천로144번길 25-14(수리공원 옆). 전화055-312-0772/ 100g 기준/ 뒷통살 7,000원/ 생삼겹살 7,000원/ 뽈살 7,000원/ 등겹살 7,000원/ 돼지껍데기 6,000원/ 고기먹은 후 된장찌개 2,000원/ 옛날도시락 3,000원/ 해물짬뽕라면 4,000원/ 누룽지 5,000원

김해뉴스 /조증윤 기자 zopd@gimhaenews.co.kr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