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생활의 방편이 된다는 것. 얼마나 보람찬 인생일까. 이런 삶을 꿈꾸지 않는 사람은 없다.
 
올해 1월,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최고은 작가가 빈곤 속에서 갑상선 항진증과 췌장염을 앓다가 사망했다. 좋아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은 열정 하나로 버텨오던 그녀는 영화산업 종사자들이 좋은 작품이라고 인정한 시나리오를 다섯 개나 썼지만, 하나도 영화로 만들어지지 못했다. 그녀와 같은 길을 걸어가는 선배 후배들이 '5타수 무안타'라고 말했다. 최 작가가 열정이 모자라서 영화로 성공하지 못했던 것일까. 그렇다면 도대체 성공하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열정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발레리나 강수진 씨의 발, 새벽까지 백신프로그램을 만드느라 아내에게 미처 군대에 간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새벽 일찍 입대열차를 탔다는 안철수 씨의 집중력, 중년을 넘어선 나이면서도 "앞으로 내가 어떤 사람으로 자랄지 궁금해요"라는 말로 '무릎팍 도사'의 진행자들을 아연실색케 한 한비야 씨의 열정은 정말 놀랍다.
 
그들의 열정은 많은 사람들을 더 열심히 살게 하는 감동적 계기가 충분히 되고도 남는다. 그러나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새로운 명령'이라는 이 책의 제목처럼, 열정은 본래의 의미를 상실한 채 우리를 압박해 오고 있다.
 
이 책은 사회비평가 한윤형, 칼럼니스트 최태섭, e스포츠 전문 기자 김정근 씨가 공동 집필했다. 세 명의 저자들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하고 있는 스무 명의 젊은이를 인터뷰하고, 그들의 육성을 토대로 '열정노동'이라는 현대 자본주의의 새로운 전략을 밝혀낸다.
 
최근 약국 외 판매로 관심이 집중되는 '박카스'는 광고로도 유명하다. 다리를 다쳐 제대로 설 수도 없으면서 노약자석을 가리켜 "우리 자리가 아니잖아"라고 말하는 청년, "작은 회사에요"라며 첫 출근을 하는 청년에게 "가서 크게 키우면 되지 뭐"라고 답해주는 구멍가게 아저씨, 제비뽑기로 당직에 걸려도 "내가 아니면 우리 회사는 누가 지키냐"고 말하는 여직원, 꼭두새벽까지 일하다 옆 건물 야근자에게 "힘냅시다" 소리치는 신입사원. 박카스 광고에는 열정이 흘러넘친다. 그 광고를 보고 있노라면 '나는 열정이 없는 사람이 아닌가'라는 걱정이 될 정도다.
 
이 책은 한 개인의 열정을 잴 수 있는 척도가 과연 있기는 한 것일까라고 묻는다. 그리고 그 열정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생각하게 한다. 취직을 원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자신의 열정을 증명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비슷비슷한 스펙들을 쌓고 있다. 많은 직장인들이 저임금과 강도 높은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
 
책을 읽어 보면 '열정'이라는 단어가 이 사회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열정의 시대에 우리는 '자발성의 의무', '열정의 제도화', '노동자의 경영자화' 같은 형용 모순이 제도로 정립되고, 심지어 도덕으로 선포되는 광경을 보고 있다. 열정은 어느덧 착취의 언어가 되었다. 이 거친 황소는 체제 안에서 훌륭히 길들여졌다. '원하는 일을 자발적으로 하는 청년'들이 새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체 게바라의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는 이룰 수 없는 꿈을 가지자"는 말은 더 좋은 일자리를 얻을 날까지 충실하게 살라는 격언이 되었다."
 
책을 쓴 세 명의 작가들은 자신들의 열정을 담보로 매순간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내고 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즐겁게 살겠다'는 소박한 꿈을 가진 사람들은 이 책 속에도 있고, 우리 주변에도 있다. 비록 그 열정이 신자유주의와 현대자본주의에 의해 이용당하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의 열정조차 버릴 수는 없다. 그 많은 사람들의 열정이 헛되지 않았으면 하는 진심에서 이 책을 소개한다. 이 글을 쓰면서 기자도 생각한다. '나의 열정은 나의 것인가, 습관적이고 반복적인 타인의 열정인가'를.

▶한윤형 외 지음/웅진지식하우스/263p/1만3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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