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 오스트리아 미술관 '벨베데레 궁'. 넓은 바로크풍 정원을 가운데 두고 오스트리아 미술관인 상궁과 중세와 바로크 미술관인 하궁이 마주보고 있다.
체코 프라하에서 옛 보헤미아 지방을 거쳐 나오는 빈 행, 기차를 탔다. 번역 일을 하고 있다는 옆자리의 일본인 아주시 씨는 린츠에서 먼저 내렸다. 맑은 하늘에 후둑후둑 비가 떨어지는 종착지 빈의 서역은 생각했던 것보다는 붐비지 않았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서의 제시처럼 기차 안에서 운명적 여자를 만나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빈에 도착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래 전부터 빈 혹은 비엔나란 단어를 입 밖으로 밀어낼 때마다 설레던 느낌은 내게 여전히 남아 있었다.
 
영화 속에서 제시와 셀린느는 기차역을 나와 무엇을 할까 망설이다 우연히 만난 두 남자에게 관광할 만한 곳이 없는지 물어 본다. 셀린느는 지나가는 말투로 "볼만한 미술관이나 전시회는 없어요?"라고 덧붙이는데, 그때 빈의 시민인 남자로부터 "요즘 전시회 볼 거 없어요"라는 시큰둥한 대답을 듣는다. 영화상 별 중요한 대사는 아니었지만 웬일인지 귀에 붙었다. '요즘 전시회 볼 거 없어요'란 말이.
 
빈을 예술의 도시로 부른들 누가 나무라겠는가. 하지만 빈을 배경으로 서양미술사에 이름을 남긴 화가는 몇 되지 않는다. 손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음악가들이 빈에서 활동했던 것에 비하면 빈의 화가는 손으로 꼽고 남을 만큼 초라하다. 빈은 많은 미술관과 박물관을 가지고 있는 도시다. 하지만 빈의 미술관 창고를 채운 미술품들의 대부분은 한때 유럽의 맹주였던 합스부르크 왕가 시절 막강한 경제력으로 사들인 것들이다. 방대한 수집이 서양미술사를 기술할 때 빈이 소유하고 있는 미술품을 빠뜨리고 넘어갈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그뿐이다. 그것은 오스트리아의 창조가 아니다. 오스트리아의 수집품에 불과한 것들이다.
 
▲ '키스'. 클림트의 에로티시즘은 이 작품에 이르러 신화적 영원성을 얻었다는 평이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빈에 일군의 화가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프랑스에서 시작된 새로운 미술이란 이름의 아르 누보의 영향 아래 종합적이며 장식적인 미술과 상징주의와 표현주의로 이해되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그림들을 생각하는 화가들이었다.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와 코코슈카(1886~1980) 그리고 에곤 쉴레(1890~1918). 빈의 미술을 비로소 서양미술사의 한 페이지에 데뷔시킨 인물들이었다.
 
1897년 클림트를 주축으로 한 일군의 화가들이 '빈 분리파'를 결성하고 이듬해 전시회를 갖는다. 분리파란 말 그대로 기성화단과의 이별을 결연히 다짐하는 의미의 용어다. 그 이전 1892년 자연주의와 인상주의를 받아들인 '뮌헨 분리파'가 있었으며, 후기 인상주의에 호의적이었던 '베를린 분리파'는 1898년에 결성되었다. 당시 빈은 예술에 대한 검열이 극심했다. 클림트가 그린 빈 분리파 포스터조차 테세우스의 성기를 가린 포도나무 잎으로도 모자라 다시 나무줄기로 가려야 했다. 빈 분리파들은 자신들 모임의 이름처럼 과거의 관습으로부터 분리를 시도했다. 검열을 무시했고 자신들이 보고 느낀 것을 솔직하고 대담하게 그리기 시작했다. 대단한 스캔들이었다. 스캔들 뒤에 빈 분리파에게 돌아온 것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 보인 예술가들에게 보내는 뜨거운 환대가 아니었다. 쓰레기처럼 퇴폐적이며 신을 모욕한다는 사회적 비난과 조롱이었다. 수용과 긍정이 아니라 분리와 부정을 택한 자들이 마땅히 짊어져야 할 피할 수 없는 십자가였다.
 
클림트를 만나러 가기 위해 벨베데레 궁으로 향한다. 반나절 쉬지 않고 자연사 박물관과 그 근처 미술사 미술관을 연거푸 구경한 뒤라 지친다. 빈의 자연사 박물관은 대단하다. 소장품의 양에서나 질에서 워싱턴과 런던의 자연사 박물관에 비할 바 아니다. 아마 과거 합스부르크 왕가의 부지런한 수집의 취향 덕분이지 싶다. 아무튼. 링 거리를 따라 벨베데레 궁을 향해 걸어간다. 링 거리는 19세기 중반, 늘어나는 도시 인구로 인해 중세 이래의 성벽을 허물고 새롭게 만든 도로다. 당시 이 거리를 중심으로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섰고, 건축 붐이 일어나 빈의 모습을 오늘의 모습으로 만들었다. 그러기에 링 거리는 근대 도시 빈의 상징물이다. 피곤하니 자꾸 단 게 댕긴다. 이럴 땐 생크림과 설탕이 듬뿍 들어가 달달한 비엔나 커피 한잔이 딱인데, 비엔나엔 아쉽게도 비엔나 커피가 없다. 비엔나에 없기는 비엔나 소시지도 마찬가지다. 비너라고 독일어로 부르는 오스트리아 빈의 소시지가 비엔나 소시지의 원형일거라는 참 사소한 지식(?)까지 접하고 나면 일본인들의 놀라운 창의성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물론 서에서 동으로 오기만 한 것은 아니다. 클림트 그림의 장식 일부도 일본 그림이 그 원형이다. 믿거나 말거나 19세기 후반 유럽에서 '일본풍'이란 단어는 '새롭다'라는 말과 같은 의미였다.
 
링 거리에 있는 미술사 미술관이 처음부터 전시를 위해 세운 건물이라면 벨베데레 궁은 18세기에 여름 별궁으로 지어진 곳이다. 완만한 경사를 가진 넓은 바로크풍 정원을 가운데 두고 상궁과 하궁이 마주 보고 서 있다. 아래쪽에 있는 하궁은 중세와 바로크 미술관. 상궁은 오스트리아 미술관이란 별칭으로 근현대 미술품이 소장되어 있다.
 
▲ 클림트의 작품 '유디트1'. 1901년 작. 구약성서 속 아름다운 미망인 유디트의 모습과는 달리 '퇴폐적 숭고미'라는 형용모순의 수식어가 딱 어울리는 작품이다.
오스트리아 미술관의 지배자는 클림트다. 살아서 그러했듯, 죽어서도 그가 아끼던 후배 코코슈카와 에곤 쉴레와 함께 미술관에 전시되어 영원의 시간을 지키고 있다. 이제 클림트의 그림에 야유를 보내는 관람객은 없다. 오히려 전 세계에서 그의 작품을 보러 일부는 일부러 빈을 찾아 온다.
 
'유티트1'은 1901년 그려졌다. 구약성서 속 유디트는 아름다운 미망인으로 이스라엘을 침략한 앗시리아 장군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하여 그의 목을 베고 나라를 구한 영웅이다. 드라마틱한 이야기로 인해 이미 오래 전부터 그림의 소재가 되어 왔다. 그런데 고전적 그림에서의 유디트의 모습과는 달리 클림트의 유디트는 그 어떤 애국적 의지나 결연하고 단호한 기상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클림트 그림 속 유티트의 표정은 성적 황홀경에 빠져 있는 달뜬 여인의 모습이다. 그림의 상단으로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황금색이 화면을 장식하고, 장군의 잘려진 목은 오른쪽 하단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 마치 섹스 속에 숨어있는 죽음의 징조처럼 보인다. '퇴폐적 숭고미'란 형용모순의 수식어가 딱 어울리는 그림이다.
 
같은 방. 문구류나 팬시 제품에 사용될 정도로 너무나 유명한 '키스'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꽃들이 만발한 정원에서 무릎을 꿇은 남녀가 한 몸이 되려는 듯 온몸을 밀착하고, 제목부터 노골적인데도 불구하고 '키스'는 클림트의 다른 그림과 달리 오히려 성적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다. 어쩌면 이런 중성적이고 부드러운 느낌이 관람객을 편하게 만들고 있는지 모르겠다. 살아생전 여자를 가리지 않는 분방한 클림트였지만 유일한 예외로 정신적 동반자 관계를 유지했던 에밀리 플뢰게가 '키스'의 모델이었을 거란 말이 그래서 설득력 있어 보인다. 아무튼. 클림트의 에로티시즘은 '키스'에 이르러 순간적인 정사를 초월한 신화적 영원성을 획득했다는 평이다.
 
영화 속에서 하룻밤을 빈에서 함께 보낸 제시와 셀린느는 다음날 아침 기차역에서 이별한다. 구차스럽게 연락처 따윈 주고받지 말자 한 그들이었지만 막상 이별의 순간이 다가오자 여느 연인들처럼 안절부절 못한다. 마침내 기차는 떠나려 하고 두 사람은 급하게 6개월 뒤 지금 이 시간 이 장소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다. 사랑엔 새로운 것이 없다. 과연, 그들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상투적인 궁금증을 뒤로하고 영화는 잔인하게 엔딩 크레딧을 올려버린다. 그렇다. 사랑엔 새로운 것이 없다. 하지만 사랑은 늘 새롭다. 영화도 그렇고, 그림도 그렇다. 관능적인 클림트의 그림을 보며 마치 퇴폐가 지나쳐 세상마저 더러워질 것처럼 호들갑을 떨던 사람들은 이제 없다. 기성의 권위로부터 힘겨운 분리를 두려워하지 않는 많은 클림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Tip. 관능적 여인의 육체를 작품으로 많이 남긴 화가 ──────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

오스트리아 화가. 빈 교외의 바움가르텐에서 태어난 그는 당시 유행했던 아르누보와 상징주의의 영향을 받아 황금빛의 화려한 화면과 풍부한 장식성을 추구했다. 관능적인 여인의 육체를 주제로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대표작으로는 <키스> <유티트1><아데르 브로흐바우어의 초상>등이 있다.


*오스트리아 미술관
벨데베레 상궁의 미술관 별칭. 19세기, 20세기 회화와 조각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은 2층에 클림트의 전시실과 코코슈카와 에곤쉴레등 오스트리아 화가의 전시실과 그리고 프랑스 인상파 작품이 전시 되어있다. 완만한 경사를 가진 낮은 언덕에 지어진 벨베데르 궁은 아름다운 예술품뿐만 아니라 빈 시내를 조망할 수 있어 미술관 관람 후 궁의 정원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 미술관 내에는 카페와 레스토랑이 있으며 기념품과 미술관련 책자를 파는 상점도 함께 있다.
·주소 3 Prinz Eugen strasse 27
·전화 798 4337
·개관시간 10:00-17:00(월요일 휴관)
·가는 길 트램 D Schloss Belvedere 하차
·http://www.belvedere.at/jart/prj3/belvedere/main.jart?rel=en
 
▶빈의 미술관과 박물관
**미술사 미술관(Kunsthistorisches museum)=합스부르크 왕가에 의해 대대로 수집되었던 전세계 미술품이 소장된 미술관으로 세계적 미술관의 하나로 손 꼽힌다.
**알베르티나 그래픽 아트 미술관(Graphische Sammlung Albertina)=대략 6만여 점의 드로잉과 1백만여 점의 인쇄물이 전시돼 있어 그래픽 아트 컬렉션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곳중의 하나다.
**자연사 박물관(Naturhistorisches Museum)=어린 자녀와 함께 간다면 하루 만으로는 부족한, 놀라운 박물관이다.






윤봉한 김해 윤봉한치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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