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 왼손으로 잡으면 야단부터 맞았고
 친구들은 이름 대신 ‘짝배기’라 불러
 오른손용 낫 쓰다 왼손은 연신 상처

 다수가 오른손 쓴다고 똑같이 강요
 그런다고 오른손잡이 될 것도 아닌데

 오른손잡이들이 그냥 생활하 듯
 왼손잡이로 태어났기에 쓰는 것뿐인데
‘이것은 되고 저것은 안 된다’는 식으로
 왜 그렇게도 ‘차별’ 했는지…

 

어렸을 때는 짝배기라는 말을 썼다. 왼손잡이를 낮춰 부르는 말이다.
 
나는 왼손잡이다. 오른손으로 글을 쓰고 오른손으로 젓가락질을 하니까 오른손잡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왼손잡이다. 어릴 때 왼손으로 물건을 잡으면 야단부터 맞았다. 맞으며 오른손 쓰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나는 왼손잡이로 태어났다. 돌을 던지거나 막대기를 휘두르거나 처음부터 왼손이 편했다.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놀 때 먼저 나오는 손도 언제나 왼손이었다. 상대를 안 해주긴 했지만 팔씨름도 왼손이라면 누구라도 이길 것만 같았다. 친구들은 이름 대신 짝배기라고 불렀다. 놀리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름을 두고 짝배기라 부르니 유쾌하진 않았다.
 
왼손과 오른손을 다 쓰니 좋겠다는 사람이 있다. 그렇지 않다. 양손을 쓴다고 양손을 모두 잘 쓰는 양손잡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양손을 모두 능숙하게 쓰는 양손잡이와는 정반대 의미의 반손잡이(지금 그냥 만들어본 말이니 사전엔 없을 것이다)도 있다. 마치 조기 교육으로 능숙한 이중 언어 사용자가 되는 대신 자칫 모국어조차 정확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어중이가 되는 사람이 있듯 말이다. 내가 그렇다. 양손을 모두 능숙하게 구사하는 양손잡이가 된 것이 아니다. 오른손의 젓가락질은 이 나이 되도록 여전히 서투르다. 그렇다고 왼손으로 더 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행히 글씨는 컴퓨터의 세상이라 악필이어도 큰 불편함이 없다.
 


왼손가락엔 흉터가 많다. 말짱한 오른손과 달리 왼손가락은 성한 게 없다. 흉터 위에 또 다시 겹쳐 난 이중의 흉터까지 있다. 왼손잡이와 왼손의 흉터를 쉽게 연결하지 못하는 사람은 왼손잡이가 아니거나 아니면 어린 시절 낫을 사용할 필요가 전혀 없는 도시에서 자란 사람일 것이다.
 
물론 집에서 농사를 지었던 게 아니니 본격적으로 꼴베기를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내 부업을 위해 키우던 토끼를 비롯한 가축들 건사는 열 살이 채 되기 전부터 내 몫이었다. 매일 풀을 베야 했다. 그런데, 왼손잡이를 위한 낫이 당시엔 없었다(혹시 있었다 해도 사주지 않았을 것이다). 왼손잡이가 아니거나 낫을 써본 적이 없는 이를 위해 부연하자면 오른손잡이 낫을 가지고 왼손으로 풀을 벨 수는 없다. 차라리 손으로 잡아 뜯는 편이 빠르다(실제로 낫질이 답답해서 손으로 뜯어 본 적도 있다). 오른손잡이 낫을 들고 풀베기를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오른손잡이가 되어야한다. 그러니까 오른손잡이처럼 낫을 오른손에 들고 풀을 감아 쥔 왼손 왼손가락 가까이로 낫을 밀어 넣어야한다. 어설픈 오른손에 시퍼렇게 날이 선 낫을 들었으니 왼손가락들이 남아났을리 없다.
 
오른손을 강요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오른손을 사용하니 오른손을 쓰라는 것이다. 내가 어느 손을 더 잘 쓰는 지와는 상관이 없다. 왼손을 못 쓰게 하면 당연히 오른손만 쓰는 오른손잡이가 될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문제는 그게 생각만큼 그렇게 쉽지 않다는 거다.
 
언젠가 일본의 한 전통시장에 갔다가 칼 만드는 가게에 들른 적이 있다. 같이 간 아내는 이것저것 구경하느라 가게의 한쪽에 우두커니 서있는 나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진열장 한쪽에는 왼손잡이용 그리고 또 한쪽에는 오른손잡이용이라는 표찰이 붙어 있었다. 그렇게 오른손잡이용과 왼손잡이용이 함께 전시 되고 또 함께 판매되고 있었다. 나는 칼을 살 것도 아니면서 우두커니 서서 왼손용이라고 써 놓은 표찰을 오래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얼마 전 <킹스 스피치>란 영화를 보았다. 영국 왕 조지 6세가 말더듬이를 고쳐 중요한 연설을 훌륭하게 한다는 간단한 줄거린데 왕의 어린 시절 왼손잡이를 강제로 오른손잡이로 만드는 과정의 폭력성이 잠깐 그려진다. 그의 말더듬이를 유발한 원인 중 하나로 오른손잡이 교정이 인용된 것이다. 극본을 쓴 작가가 왼손잡이가 아닐까 하는 궁금증이 살짝 들었다. 공감이 되었다는 말이다.
 
요즘엔 많은 사람들이 왼손의 사용에 저항감을 느끼지 않는다. 세상이 바뀌었다.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었다는 뜻이고 그러니까 처음부터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을 단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이유로 왼손잡이를 반손잡이로 만들어 버렸다는 뜻이다. 생사람을 잡은 것이다. 가끔 텔레비전에 특히 여자 연예인이 나와서 왼손으로 젓가락질을 하는 것을 보면 지금도 나는 여전히 깜짝 놀라곤 한다. 그러다가 아 그렇지 지금은 괜찮지 그래 지금은 괜찮은 세상이지 하며 안도하게 된다.
 
정희진이 쓴 <페미니즘의 도전>은 남자가 읽으면 더 좋은 책이다. 남성과 여성의 관계든, 백인과 유색인의 관계든, 부자와 빈자의 관계든,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관계든, 이성애자와 동성애자의 관계든, 그리고 권력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관계든, 사회적으로 우위에 있는 그룹과 그렇지 못한 소수자 사이에의 차별은 그러니까 그 모든 차별이 발생하는 기제는 다 동일하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교양, 모든 것의 시작>에서 가토 슈이치가 말한 "그래서 모든 차별은 하나다. 따라서 차별에 대해서는 '그것을 반대하느냐, 찬성하느냐' 중에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 이 차별은 반대하지만 저 차별만큼은 찬성한다는 말은 있을 수 없다."를 다시 한 번 정치하게 설명하고 있다.
 
물론 여전히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쪽은 동성애자다. 다른 사람들은 스스로를 반손잡이라 부르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나 역시 동성애자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그냥 왼손잡이로 태어났듯이 그들도 그냥 동성애자로 태어났을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은 한다. 그리고 내가 왜 왼손잡이인지 모르듯 어쩌면 그들도 그들 스스로 왜 동성애자인지 모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성애자들 역시 자신이 왜 이성애자인지 모르고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왼손잡이다. 오른손으로 하면 될 것을 굳이 왼손으로 하는 게 아니다. 오른손잡이들이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오른손으로 젓가락질을 시작하듯 왼손잡이들 또한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왼손으로 젓가락질을 하는 게 편해서 왼손으로 하는 것일 뿐이다. 잘은 모르지만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동성애자들 역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암스테르담의 서교회(Westerkerk)는 17세기 네덜란드 개신교 역사 초기에 세워진 여러 교회들 중 규모가 가장 큰 교회다. 빗살무늬 운하를 산책 삼아 걷다가 우연히 안네 프랑크의 집 근처에 이르렀을 때 바로 그 옆 서교회의 높다란 교회 탑에 게이의 상징인 무지개 색 덮개 천이 벽 가득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때 마침 암스테르담 전역에서 열리고 있는 게이퍼레이드를 축하하기 위한 한 게이 가수의 공연도 교회 마당에서 열리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많은 일반의 사람들이 그들과 함께 어울려 즐겁게 노래하고 춤추고 있었다. 지나가는, 거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나는 불안했다. 지난번 서울에서의 또 다른 모습이 생각나서  두리번두리번 찾아보았지만 잠시 어디로 갔는지 게이퍼레이드를 방해하는 사람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걸어서 숙소로 돌아오는 내내 왼손으로 젓가락을 잡다가 혼이 났던 어린 시절 생각을 했다. 그 때처럼 누가 막 야단칠까 무서워 가슴이 오래 두근거렸다. 김해뉴스






>>윤봉한/시인. 김해 윤봉한치과의원 원장.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붉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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