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지 않는 조영남 대작 논란에
 국민-미술평론가 서로 견해 엇갈려
 현대미술 평가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

 19세기 인상파 둘러싸고 전문가들도 이견
‘삶의 진실’-‘천박한 돈벌이’ 격렬 대립

 대중 관심 끄는 예술 정보는 ‘작품 가격’
 전문가 이야기는 ‘부질없는 소리’ 치부
 본질적 가치 봐야 진짜·가짜 알 수 있어

우디 앨런이 만들고 출연한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라는 영화를 보면 호감을 얻기 위해 상대 여성(줄리아 로버츠)이 좋아하는 화가를 미리 알아내 공부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녀가 좋아하는 화가는 누구였을까? 조금 낯선 틴토레토(1519~1594)다. 미술사에서는 중요한 인물이다. <서양 미술사>를 쓴 곰브리치의 도움을 받아 조금 더 알아보면 이렇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티치아노 등이 활약하던 1520년대 이탈리아 미술 애호가들은 미술이 절정에 이르렀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지금보다 더 잘 그린 그림이란 게 존재 할 수 없을 만큼 미술적 표현의 기법이 완벽해진 것이다. 해피한가? 아니다. 앞서서 다 이루어 놓았다면 이제 젊은 후배의 재능은 어디에 써먹을 건가? 그때 새로운 길을 연 인물이 틴토레토다. 그의 새로운 길은 거칠게 표현하면 도상을 비튼 것이다. 비틀린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 새로운 감동을 불러온 것이다. 틴토레토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화가가 엘 그레코다. 우리에게 익숙한 엘 그레코의 그림을 생각하면 틴토레토가 새롭게 만든 길을 쉽게 미루어 짐작 할 수 있다. 아무튼 틴토레토를 좋아하는 젊은 여성이라니 영화적 설정이긴 하지만 우리나라라면 아마 다른 화가를 대본에 넣지 않았을까 싶다. 인상파이거나 인상파 이후의 화가를 우리나라 사람들은 좋아한다. 앞서 언급한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티치아노 등을 빼고 나서 하는 말이다.
 

▲ 마르셀 뒤샹의 작품 '샘'과 이지산의 추상화를 합성했다. 이 작품은 뒤샹의 것인가, 이지산의 것인가. 진짜인가, 가짜인가. 창작인가, 모방인가. 일러스트=이지산
가수 조영남 씨의 그림 대작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여론 조사를 했더니 70% 이상의 국민이 조 씨의 사기라고 응답했다고 한다. 반면에 몇몇 미술평론가들은 이러한 논란이 현대미술에 관한 이해의 부족에서 비롯된 오해라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대중은 대중대로 전문가들은 전문가대로 답답하다. 하지만 70%라는 숫자는 조영남 씨가 사기죄로 법적인 처벌을 받을지 여부와는 관계없이 미술평론가의 전문적 지식이 현대미술을 바라보는 대중의 생각을 여간해선 바꾸어 놓기 힘들 거라는 전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수치다. '여론 조사와 평론가 두 견해의 거리만큼 현대미술이 대중으로부터 멀어져 있는 것 같다'는 댓글이 그중에 빛났다.
 
예과 시절 교양필수로 미학 강의를 들었다. 어수선했다. 이른바 이과생들을 상대로 하는 수업의 첫 강의를 맡은 교수도 어리둥절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중에 용감한 학생 하나가 손을 들었다. 그리고 질문했다. "교수님 우린 치과대학 학생인데 미술 수업을 왜 들어야합니까?" 이제 막 학위를 받은 초보 강사(첫눈에 보기에 그랬다)를 놀려 먹으려는 의도도 약간 들어있는 짓궂은 질문이었다. "학생은 강의실을 잘못 들어온 모양인데, 미술 시간이 아닙니다. 미학이에요." "미학이 미술 아닙니까? 그게 그거지요."
 
웃지 마시라. 30여 년 전 이야기다. 어디서 미학이란 단어를 들어나 봤겠는가. (이야기가 어긋나지만 고등학교 때 서둘러 이과와 문과를 나누어 버리는 우리나라의 교육 제도는 정말 문제다!)
 
"미학이란 말뜻 정의는 좀 있다 이야기하기로 하고 나도 여러분들이 왜 미학 강의를 단체로 수강하는지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혹시 치과의사는 미적 감각이 중요하니까 철학 대신 미학을 하자 이렇게 된 거라면 잘못입니다. 잘못 생각하는 겁니다. 미학은 그게 아닙니다."느낌이 맞았다. 초보였다. 조금 흥분했다. "물론 좋은 점도 있습니다. 우선은 가짜 예술과 진짜를 구별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앞으로의 세상은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기 점점 더 힘들어질 겁니다. 그만큼 구별하는 능력이 필요하고 중요해지겠지요."
 
이쯤에서 누군가 내게 돌발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 능력이 생겼냐고. 그러니까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는 능력이 미학 공부를 하면 진짜로 생기냐고. 글쎄 그때 배운 것은 이미 다 잊었다. 말하지 않았는가. 30년도 전의 일이라고. 미리 양해를 구하지만 지금 나의 생각과 말은 당시의 미학 강의와 전혀 관계없다. 그리고 미학이 무슨 위폐 감별법을 가르치는 학문도 아니지 않는가. 어쩌면 그때 그 젊은 교수는 세게 그냥 한번 폼나게 질러본 것인지도 모른다. 조금 흥분해서. 물론 나름 효과는 있었다. 지금까지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가짜냐 진짜냐를 떠나서 현대 미술은 어렵다. 언제 어디서부터 어려워졌는가 하고 묻는다면 답은 여러 갈래다. 어차피 정답이 없으니 1917년 마르셀 뒤샹의 기성품 남성용 소변기 전시부터라고 편하게 답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그보다는 몇 십 년 전으로 더 거슬러 올라가 뒤샹의 고향인 프랑스에서 일어난 일군의 인상파 그룹에서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미간을 찌푸려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원래 예술은 어려운 거야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특히 인상파 그림을 좋아하고 또 처음부터 그다지 어렵게 않게 받아들인다는 사실이다. 시간의 효과(시간이 흐르면 뭐든 익숙해진다) 때문만은 아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접촉 시기와 관련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 서양 미술이 소개된 것은 일본을 통해서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이 유럽에 도착했을 때 세상은 이미 인상파가 완전히 점령하고 난 다음이었다. 서양 미술의 긴 흐름 속에서 어느 순간 새롭게 나타난 인상파를 이질적으로 보았던 서구인과 달리 일본과 우리에겐 서양 미술 시작점에 처음부터 인상파가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인상파 미술은 손쉽게 이해될 수 있는 화풍은 아니었다. 19세기 중엽 새로운 젊은이들은 미술에 있어 이미 알고 있는 것 혹은 이미 고정된 세계가 어떻게 보여져야하는지에 관해서 보다는 자신이 실제로 본 일상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그들이 원한 것은 그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삶의 진실이었다. 그게 그들이 생각한 진짜 예술이었다. 선배 아카데미 화가들의 작품을 진짜가 아닌 가짜로 여겼다는 뜻이다.  영국의 테이트 갤러리 관장을 지낸 윌 곰퍼츠는 <발칙한 현대미술사>에서 당시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 그리는 행위가 마치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결혼식 비디오 촬영으로 돈을 버는 격으로 사회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행위로 비쳤다는 비유를 들었다. 천박하다는 의미이다. 서로 상대를 가짜로 몰아붙이며 격렬한 비난을 주고받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안다는 전문가들도 그랬는데 하물며 일반 대중들의 수용은 오죽했겠는가.
 
예과 시절 미학 수업에서 무엇을 배웠는지는 기억에 없다. 하지만 첫날 들었던 가짜와 진짜 이야기는 잊지 않고 있다. 매일 매일 새롭게 상기 되었다고나 할까. 지난 30년간 현대 미술이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기 점점 더 힘들어지는 상황으로 변해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며칠 전 뉴스 하나가 올라왔다. 이런 제목이다. <김환기의 '무제 3-V-71 #203'이 홍콩 경매에서 45억 6천만원에 팔리다> 대중에게 노출되는 미술 관련 정보는 대개 이런 식이다. 돈이 먼저다. 문화 뉴스가 아니라 차라리 경제 뉴스다. 이번 조영남 씨의 대작 논란에도 돈이 가진 민감성의 문제가 한몫을 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 미술평론가들이 나와서 이런저런 이야길 해봐도 초점이 맞지 않는 부질없는 소리가 되고 마는 것이다. 가짜와 구별되는 진짜를 보기 위해서는 우선 그 가치를 세상의 돈과 분리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만의 시각으로(미안하지만 노력이 필요하다) 그 본질의 가치를 보는 게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는 첫 단계라고 생각한다. 물론 조영남 씨 대작 사건에서 불거진 씨의 윤리적 혹은 도덕성 문제와는 별개로 말이다.
 
아참! 이건 딴 이야긴데 오랜만에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를 다시 보다가 우디 앨런도 어쩌면 영화판에선 틴토레토 같은 인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무슨 말인지 궁금하신 분은 일단 찾아보시라. 영화도 재미있고 <서양미술사>도 재미있다. 김해뉴스





>>윤봉한/시인. 김해 윤봉한치과의원 원장.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붉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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