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정치권이 문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내 기억으로는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되는 국민교육 헌장이 1968년 반포되면서가 아닌가 생각된다. 군부 독재정권이란 선입견을 씻어내고 문화 정부로서의 이미지를 대내·외적으로 알리려는 문화정책이 시작된 것이다. 이때부터 정치와 문화의 밀월관계는 본격화 된다. 서울 대학로 한가운데 문예회관 건물이 들어서고, 미신이라고 굿당에서 쫓겨났던 무당들이 인간문화재가 되어 정부로부터 생계보조금을 지원 받기 시작했다. KBS가 주도한 국풍(國風)은 관주도 문화의 극치를 이룬 대형 이벤트였다.
 
재야 정치세력 또한 문화의 운동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했다. 김지하 임진택 채희완 등이 주도한 마당극 운동은 '관 주도 민족 중흥문화의 역사적 사명'과 전혀 다른 입장에서 전개된 '또 하나의 민족문화의 역사적 사명'이었다.
 
그 이후 문화예술계는 거세게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 휘말렸다.
 
서정주 김춘수 등 당대 최고의 시인들이 군부 독재정권의 하수인이란 오명을 뒤집어 쓰고 불운한 말년을 지내야 했다. 상대적으로 김지하 이호철 등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소속 시인 작가들은 옥중 체험을 겪어야 했다. 문화예술계는 갈수록 정치적 당파성을 강요당하기 시작했다. '이편이냐 저편이냐'에 따라 예술인의 운명이 엇갈렸다. 그 와중에 아무런 정치적 성향이 없는 천상병 같은 시인이 무고한 옥살이와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문화예술도 분명 정치성이 있다. 본인의 신념과 태도에 따라 어떤 특정한 정치적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 그 자체에 대한 혐오와 거부 반응을 드러내는 문화예술가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이형기 시인은 "나는 1인 1당의 당수다"고 말했다. 시인은 당이 없다. 자신의 시가 바로 정치고 문학이다, 라는 무정부적 상상력을 떳떳하게 밝힌 셈이다. 그들은 현실 정치적 상황에 대해 별스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이편 저편에 속하는 것을 불편해 한다. 가능한 불편부당한 경계인의 입장에서 자신의 관점을 드러내려 한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상황은 이들을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는다. 어떻게든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해 주기를 은근히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정치적 선택을 하게 되면서 좋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서정주의 탁월한 한국적 서정성은 관제 보수 서정성으로 문학적 훼손을 당하고, 김춘수의 무의미시론 또한 몰역사적 언어유희로 매도당한 것이다.
 
예술가에 대한 정치적 훼손은 현실적인 부분까지 미친다.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이창동 감독은 MB 정권이 들어서면서 납득 못할 푸대접을 받았다. 베니스 영화제 감독상까지 받은 세계적 감독의 시나리오를 수준 이하의 작품이라며 지원 대상에서 탈락시킨 것이다. 정부의 영상예술 지원 대상에서 탈락한 이창동 감독의 시나리오 '시'는 이듬해 칸느 영화제 각본상을 받고 말았다.
 
내가 "받고 말았다" 라고 표현한 이유는 뭘까? 바로 정치적 가해행위에 대한 '멋진 복수'였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 명성의 칸느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준 각본을 수준 이하라고 떨어뜨린 심사위원은 도대체 어떤 위인인가? 정말 작품성을 읽어내지 못하는 바보인가, 아니면 정치 권력의 하수인인가?
 
이제 한국의 정치권은 문화예술계 사람들을 좀 그대로 내버려 두라고 말하고 싶다. 불편하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은 가장 구체적이고 분명한 예술적 업적으로 당대 역사현실에 기여하게 되어 있다. 그 점에서 문화예술인들의 정치성은 바로 문화예술 그 자체다.
 
고 이형기 시인의 "나는 1인 1당의 당수다"는 말이 새삼스런 느낌으로 떠오르는 요즈음이다.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