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스포츠 못하는 게 없는 한국 여성 탓
돈만 벌어다 주는 걸론 멋진 남편 축 못 껴
성 역할 평등해지면서 가족 서열도 무의미

아버지, 가족 눈치 보는 처량한 신세 전락
좋은 가장 되려 노력하는 모습 애처로워
사극에 열광하며 과거 대리만족 머물러

그렇다고 상석 따지는 쩨쩨한 사람 아냐
어쩌다 아버지 된 사람 어여삐 여겨주길


보통 상석은 출입문을 바라보고 실내가 잘 조망되는 자리다. 우두머리가 출입문을 등지고 앉으면 비호같은 자객의 기습에 목숨을 잃고 그 조직은 궤멸되기 십상이다. 어깨에 손을 댔을 때 사람의 반사신경이 가장 빠른 것도 보이지 않는 곳을 위험으로 인식하는 인류의 오랜 진화의 결과라고 한다. 그래서 상석은 우두머리 차지다.

그런데 식당이나 카페 등지에 가면 여성이나 아이들이 상석을 차지하고 남성은 끄트머리에 앉아 수발을 들고 있는 경우를 종종 본다. 아버지가 상석에 앉아 숟가락을 들어야 밥을 먹을 수 있었던 시대를 경험한 나로서는 적잖이 거북살스럽다. 레이디 앤 베이비가 밥 먹는 자리까지 퍼스트가 되다니, 정말 안전한 세상이 되어 세상이 바뀌었나 보다.
 


탤런트 최수종이 결혼한 이후 아내인 하희라를 위한 그의 퍼포먼스 자랑 때문에 대한민국 남자들은 비교적 후줄근한 스타일로 전락했고, 송중기가 군복 입고 나타난 이후로 돈만 벌어다 주는 걸로는 멋있는 남편, 좋은 아버지 축에도 끼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게다가 호주제는 진작 폐지되었고 남녀간 재산상속 비율도 동등한데다 기존 남성의 역할을 여성이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아빠, 엄마는 별로 구분할 필요 없는 독자세력이나 마찬가지다. 아시다시피 인간은 생존본능에 의해 세력이 큰 쪽에 붙는다. 역도선수 장미란이 헤비급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딸 때부터 이미 힘에서도 남자들은 밀리기 시작했는데 공부면 공부, 피겨면 피겨, 골프면 골프, 도대체 못하는 것이 없는 대한민국 여성의 헤게모니를 나는 오래전부터 체감하고 있었다.
 
무엇인고 하니 결혼 이후 나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소리(무섭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는 집사람의 목소리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으며, 껄껄 웃으며 술 마시다 전화를 받고 돌아서는 친구의 쓸쓸한 뒷모습을 만든 장본인이 누구인지도 그렇고, 오래전 부산역에서 기차표를 잃어버렸다고 선배를 닦달하며 몰아세워 주위를 무안스럽게 하던 어느 여성에게서도…. 아, 생각해보니 헤아릴 수가 없다. 이런 걸 흔히 우리가 즐겨쓰는 대세, 시대의 조류, 문화라고 하는 것인가. 나는 결혼하기 전 헛기침 하나로도 가장의 권위가 넘쳤던 대발이 아빠를 보며(1991년 MBC 홈드라마 사랑이 뭐길래, 이순재 김혜자 최민수 하희라 출연) 나의 미래도 당연히 그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서두에 글을 열었던 상석 운운한다는 자체가 벌써 쩨쩨하고 힘 없는 남자가 됐다는 것이고, 지금의 값에 미래의 변수를 감안하더라도 나의 낙관이 얼마나 헛된 일장춘몽이었는지 활연대오하게 된다. 마초적 성향의 나도 그러할진대 내 주변으로 표본을 좀 넓힌다면 결과는 거의 하인 수준으로 전락하고 마는 이 참혹함(?)을 어찌 처리해야 할까.
 
상석의 문제는 빙산의 일각이다. 거스를 수 없는 것이 시대의 대세고 조류이니 제법 주체적인 남성들은 아버지학교를 찾고 웰빙, 댄디 가장이 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나머지는 에라 모르겠다, 끄트머리에 앉아 고기나 굽는 게 편하지, 이렇게 포기하고 마는 것일 게다. 이 이야기의 가장 큰 논거는 레이디 앤 베이비 옆에서 고기굽는 남자의 표정을 살펴보시라. 그닥 흐뭇한 표정이 있는지 말이다. 내가 볼 때는 웃고 있어도 약간 패배자의 표정이 아닌가 한다.
 
이런 생각도 든다. 별로 배울 것도 자랑할 것도 없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왜 줄기차게 만들어지고 있을까. 바로 대리만족이다. 이리 오너라, 조선의 남자들은 다가가지 않고 불러제낀다. 우두머리의 숨소리 하나에도, 약간의 미간의 찡그림에도 무한한 의미가 담긴다. 무엇보다 여성이 목소리를 높이는 법이 없다. 다소곳하다. 일본 여성들이 아직도 욘사마에 환호하는 것이나 같은 맥락이다(아이러니하게도 요즘 MBC 옥중화라는 드라마엔 문정왕후와 정난정, 이 두 여성이 대세다).
 
요즘 남자들은 애처롭다. 상석의 대접을 받고도 칠거지악의 헌칼을 휘둘렀던 할아버지, 아버지와 달리 상석에서 밀려나고도 돈을 벌어야 하고 명절때 마누라의 눈치를 봐야 하고 군대를 가야 하고 할 건 다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은퇴 후엔 존중의 의미가 쏙 빠진 삼식이 대접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많은 남성들은 이렇게 이야기 한다. 늙으면 마누라 밖에 없다고. 그런데 정작 그 마누라는 남편밖에 없다고 말하지 않으니, 이 삶의 엇박자를 그나마 늙은 사내의 희망으로 본대도, 이제 남자들도 늙으면 마누라(도) 있다 라고 고쳐 생각하는 것이 나중에 덜 서운할 것이다. 박목월 시인의 '가정'이란 시가 있다.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문삼의 코가 납작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을 짜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구문반/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문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나는 처음 이 시를 읽었을 때 가슴이 울렁거렸다. 연민한 삶과 굴욕의 길을 걸을지라도 새끼들을 아랫목에 있게 하는 존재가 바로 나라는 것을 우리는 몰라도 된다. 하지만 십구만 반의 신발이 닳을 때까지 눈과 얼음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 저기 길을 가는 저 남자이고 버스를 기다리는 저 초로의 사내이며 술냄새를 풀풀 풍기며 지하철에서 졸고 있는 저 배 나온 아저씨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아버지는 등 뒤에도 눈이 있는 사람이며 어버이날에 가장 슬픈 사람이며 만들어도 만들어도 금수저를 만들 수 없어 흐뭇한 표정을 절대 짓지 못하는 사람이며 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어설프게도 그냥 아버지가 된 사람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쩨쩨하게 상석을 따지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레이디 앤 베이비여, 그대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상석은 우두머리에게 양보하시길 권유하는 바이다. 김해뉴스






>>소진기/ 경찰대 졸업. 총경. 수필가. <수필세계> 신인상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