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진 시인·동아대 명예교수.

부산, 창원 등 인접 대도시의 인구를 빨아들이며 몇 년 전에 50만을 돌파한 김해시의 인구가 몇 년 후엔 60만 명을 돌파할 거라 합니다. 인근 대도시에서 김해로 옮겨온 이들 중에는 시골마을을 선호하는 이도 많습니다. 이른바 귀촌인들, 그런데 그중에는 멋진 전원주택을 지어놓고는 마을 원주민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문 닫아걸고 사는 이도 많습니다. 이들이 사서 감옥생활(?)을 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문제의 많은 부분이 그들 자신에게 있지 않은가 합니다. 그 핵심이 도시 생활에서 가져온 헛소리들. 업무상, 사업상 오래 버릇된 헛소리 때문입니다. 주민들을 만나기만 하면 온갖 헛소리로 입지를 세우려들고 제 멋에 과장하고 왜곡하니 대화가 어디 오래 가겠습니까? 원주민들이 금세 그 속을 꿰뚫어 본다는 데에 문제의 씨가 있는 것입니다.
 
헛소리, 쓸데없거나 속이 빈 소리, 또는 정신을 잃고 중얼거리는 말이란 정도가 사전적인 의미입니다. 근년에 번역 출판된 런던대학 스티븐 로 교수의 <왜 똑똑한 사람들이 헛소리를 믿게 될까>에 의하면, 곤란할 때 딴전 부리기, 자신의 잘못이나 경험을  논리적으로 위장해서 부풀리기, 심오한 듯 분장하기, 온갖 얘기를 주워다 늘어놓기, 남을 세뇌시키기 등등이 헛소리의 레퍼토리이자 속셈이라 합니다.
 
헛소리라도 건성의 친교적 인사 정도야 그러려니 치더라도, 남을 속이는 왜곡과 과장은 그를 믿기는커녕 인간관계를 단절시키는 얼음벽이 됩니다. 필요할 때마다 헛약속, 헛웃음, 헛자랑, 헛소신의 폭죽을 늘어놓다가간 제풀에 쪼잔하게 따지거나 잔꾀를 부리기도 하는 헛소리. 정의와 진실을 무력화 시키고, 소통과 합의의 길을 막고, 자유와 창의가 발붙이지 못하게 합니다.
 
다섯 가지 좀 벌레란 뜻을 가진 <오두(五竇)>란 저술이 있습니다. 기원전 3세기 경, 한비자(韓非子)의 것인데, 훗날 진시황이 읽고 "이 사람과 어울릴 수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며 감탄한 글이랍니다. 나라를 좀먹는 다섯 벌레란 학자, 논객, 협사, 측근, 상공인. 요즘 상황들에 연관지어 보자면 전문가랍시고 성장경제, 민주경제, 안보논리 따위 현란한 말로 국민의 눈을 가리는 학자, 간사한 말재주로 명리를 채우는 논객, 엉터리 무기 개발이며 군납품 사기나 치는 고위 군경들, 권력에 아부하면서 제 좋은 짓만 챙기는 최측근들, 온갖 술수를 동원해서 생산자, 노동자의 수익을 가로채는 상공인 등, 아니 나쁜 좀벌레들입니다. 동남권 신공항 취소 해프닝도 켜켜이 쌓인 헛소리, 각종 공약(空約)들이 만든 결과입니다. 우리 각자의 마음속의 좀벌레도 그에 한몫하지 않았던가 반성합니다.
 
촌사람들도 물들 수밖에 없는 헛소리 판, 그 때문에 시골 인심도 많이 상했습니다. 더러워서 피하고 살자니 헛소리에 너나없이 물드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하여 헛소리는 교묘한 사기꾼들을 양산하기에 이릅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사기범죄 액수가 같은 해 국방비 예산 37조 원에 버금간다고 추정됩니다. 예측이라도 되는 액수가 그렇지, 더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사기 손해액을 합치면 우리나라 전체 예산의 절반 아니, 국민총소득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지 않을까, 참으로 속상하는 의문조차 가능하게 됩니다.
 
이기심에 뿌리를 둔 헛소리는 자신을 병들게 할 뿐 아니라 위선의 씨를 퍼뜨려 사회를 상하게 합니다. 정치권력, 경제권력, 언론권력, 문화권력, 온갖 권력이 왜곡을 일삼으며 참소리의 기를 죽입니다. 해서, 참 논리는 세상을 밝히는 빛을 잃고 법은 더 챙기기 위한 자들의 변명으로 전락합니다. 흉악범죄와 자살자는 늘어나고 사람과 더불어 살기보다 재물과 권력 가지기에 목을 매달고 살게 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란 공정한 민주사회를 내세우되 만사를 독점하려 하고, 진실을 내세우되 일시적이고 개인적인 명리를 챙기는, 헛소리들과의 싸움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봄이면 작은 풀싹이 돋고 물고기가 몸을 떨며 첫 헤엄을 치고 나오는, 지상의 아름답고 순수한 삶을 보면, 이념이니 학술이니 하는 것들도 어설픈 헛소리에 지나지 않아 보이지 않습니까? 집에서고 사무실에서고 바로 곁에 사람을 두고도 절해고도에 사는 듯한 상호 배타성! 깊고 두꺼운 얼음벽을 깨고, 조금씩 조금씩 헛것의 삶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요?
 
귀촌을 한다면 새 집을 짓고 밭을 사 일구기 전에 헛논리, 헛소신, 헛소리 같은 것들을 떨어내고 원래의 마음밭부터 일굴 일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면 고립의 얼음벽이 사라질 것입니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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