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차례나 퓰리처상을 수상한 토머스 리드먼의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가 수년 전 국내에서도 베스트셀러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세계화의 명암을 그린 이 책은 '글로벌라이제이션' 즉 세계화의 상징으로 최신, 최첨단의 상징물을 암시하는 도요타자동차의 렉서스를 꼽았다. 렉서스는 세계경제 체제를 글로벌화시키며, 초국가적으로 동질화·표준화를 요구하는 기술과 시장의 힘을 상징한다.
 
반면 개별 국민국가 주권의 정체성으로는 남유럽산 상록수 올리브나무를 대응시켰다. 아테나 여신이 자라게 한 평화의 상징 올리브나무는 밤에도 세상을 밝혀 주고 상처를 낫게 하며, 진한 맛과 원기를 주는 귀중한 올리브유를 제공한다.
 
역사적으로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는 서로 갈등을 일으킨다. 때로는 어느 한쪽이 이기기도 하고 서로 균형을 잡기도 했다.  가끔 올리브나무가 거대한 렉서스와의 한 판 승부에서 이기기도 한다. 1992년과 1994년 노르웨이가 두 차례 EU(유럽연합)가입 국민투표를 실시한 결과 부결됐다. EU에 가입하면 국가 정체성을 잃고 어업자율권을 침해당할지도 모른다면서 독특한 민족적 뿌리가 뽑힐 것을 염려했던 것이다. 하지만, 노르웨이는 유럽경제지역(EEA)에 가입하고 EU분담금 90%를 부담하는 방법으로 유럽 단일시장에 접근하는 절묘한 길을 선택했다.
 
올리브나무가 거대한 렉서스를 이기는 경우 혹독한 대가를 치르기도 한다. 바로 지난달 24일 영국이 국민투표에서 51.9%의 찬성으로 EU 탈퇴를 결정한 것이다. 바로 브렉시트다. 브렉시트는 영국(Britain)과 탈퇴(exit)의 합성어다. 영국이 28개 가입국을 가진 EU로부터 탈퇴한다는 신조어다. 전통적으로 자유주의적인 영국은 자국법안의 65%를 EU가 정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또 동유럽 난민의 자유로운 이동 보장 의무, 바나나 판매에까지 시시콜콜 간섭을 하는 규제 덩어리 EU에 대해서도 불평을 터뜨려왔다.
 
브렉시트 결정 직후 영국 신용등급은 두 단계 추락했고, 전 세계는 불확실성의 혼돈 상태에 빠졌다. 전 세계 증시에서는 하루만에 약 3000조 원이 증발했다. 영국 파운드화는 폭락했다. 일본 엔화와 미국 달러화는 초강세를 보였다. 신고립주의, 글로벌 환율전쟁, 보호무역주의, 유럽 극우정당의 약진, EU 탈퇴 도미도현상 등도 우려된다. 
 
미국의 <뉴욕타임스> 신문은 브렉시트를 '반세계화와 고립주의의 도래'라고 봤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신문은 '양극화가 불을 댕긴 현대판 농민봉기'에 비유했다. 14세기 영국 농민들은 극심한 빈부격차에 불만을 품고 곡괭이를 들고 일어섰지만, 이번에는 대중이 표로 응징했다는 것이다.
 
반면 관료적이고 과도한 규제 공동체인 EU를 벗어나려는 영국의 노력은 반세계화와 고립주의 회귀가 아니라 반규제와 자유의 선택이라고 해석하는 시각도 없지 않다. 브렉시트 지지자들은 보호주의를 주창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선 공화당 후보와 연관짓는 데 대해 불쾌하게 생각한다.
 
브렉시트가 영국만의 조용한 탈퇴로 끝나 찻잔 속의 태풍이 될지, EU 가입국의 도미노 탈퇴로 이어질지, 더 나아가 트럼프의 대선 승리로 미국의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북미자유무역협정 폐기, 한미 FTA 협정 수정 요구 등에 이르기까지 보호주의로 확산될지는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브렉시트에 숨은 한 가지 중요한 키워드는 일자리였다. 브렉시트에 찬성한 영국인들은 이민자 유입으로 일자리를 뺏기고 임금이 떨어졌다고 주장한다. 반대 측은 외국자본 이탈과 해외시장 축소로 일자리 200만 개가 줄어들지 모른다고 염려했다. 영국 젊은이들은 부모 세대가 자신들의 미래를 빼앗아 갔다고 항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영국에서는 브렉시트를 후회(regret)하는 리그렉시트(Regrexit)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브렉시트를 지켜보면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21세기 지구촌의 질서는 어떠한 유형이 되든 간에 렉서스나 올리브나무의 일방적 통행이 아니라 상생적 조화가 돼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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