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故 구태철 씨.

‘자봉 대부’ 구태철 씨 별세
생명의전화 등 23년 봉사활동
갑작스러운 비보 지인들 눈물


23년 동안 경남생명의전화에서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는 봉사활동에 전념해 '자원봉사자의 대부'로 불렸던 구태철(사진) 씨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55세.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생전에 그의 따뜻한 마음과 섬김을 기억했던 사람들이 장례식장을 찾아 마지막 가는 길을 눈물로 배웅했다.
 
구 씨는 지난 24일 새벽기도에 참석하기 위해 부인 신경숙 씨와 함께 울산 언양으로 가던 도중 고속도로에 떨어져 있던 장애물을 피하려다 자동차 전복사고를 당했다. 그는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도로에 흩어진 장애물 등이 다른 자동차에 피해를 입힐까 봐 치우던 도중 달려오던 차량에 치어 그 자리에서 숨졌다.
 
구 씨는 경남생명의전화(당시 김해생명의전화)가 처음 생겼던 1993년 생명의전화 자원봉사자 1기 회장을 맡아 23년의 자원봉사자 인생을 시작했다. 총 봉사시간이 1만 시간을 넘을 정도로 봉사는 떼놓을 수 없는 그의 인생의 한 부분이었다. 경남생명의전화 이진규 이사장은 "구 회장은 남들이 어려워하는 궂은 일을 불평 없이 도맡아 했다. 24시간 운영되는 생명의전화 일정 중에서도 가장 힘든 밤 10시~오전까지의 시간을 맡았다. 비가 와 사무실에 물이 샐 때 혼자 묵묵히 사무실을 수리했던 모습이 떠오른다"고 회상했다.
 

▲ 25일 시민장례식장에서 故 구태철 씨 장례예배가 열리고 있다.

함께 봉사를 다녔던 자원봉사자 신순재(50) 씨는 "부부가 함께 봉사를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특히 구 회장은 일을 가리지 않고 언제나 묵묵하게 해줘서 너무 고마웠다"고 말했다. 그는 "구 회장이 '봉사를 통해 내 삶이 바뀌었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마음과 삶에서 우러나온다는 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경남생명의전화 하선주 소장은 "생명의전화가 힘들었던 시기의 그의 모습들이 생생하다. 밤늦게 먹을거리를 사서 사무실을 방문하던 모습, 차 없는 직원들을 자신의 차로 퇴근시켜 주던 기억이 아직 뚜렷하다. 직원들과 함께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2년부터 시작한 독거노인 생신 행사가 103회 동안 진행될 때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을 정도로 봉사에 열정적으로 헌신했다"고 말했다.
 
무더운 날씨에 갑작스러운 비가 내리던 지난 25일 시민장례식장에는 고 구태철 씨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지인들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오후 8시에는 경남생명의전화 상담자원봉사자 3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장례 예배가 열렸다. 김해생명의교회 김철홍 목사는 "구 회장은 이 땅에서 편안한 삶을 살지도, 부유하지도 않았다. 건강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기적인 세상에서 이타적인 삶을 살고, 자신을 챙기기보다 남을 배려하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았다"고 말했다.
 
생명의전화 김병식 원장이 구 씨와의 추억이 담긴 조사를 읽자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커졌다. 예배가 끝나자 부둥켜 안고 펑펑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었다. 하 소장은 "생명의전화는 '구태철'이라는 이름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었다. 그런 봉사자를 잃었다니 빛을 잃은 것 같은 기분이다. 구 회장이 없다는 사실이 두렵다"며 눈물을 흘렸다.
 
구 씨의 동생인 구해숙(54) 씨는 "오빠는 어릴 때부터 베푸는 것을 좋아했다. 젊은 시절부터 돈이 없어 난방을 못하는 집을 보면 주머니를 털어 기름을 채워줬다. 자신의 카센터에는 변변한 간판 하나 달지 못하면서도 기부를 하고 봉사를 했다. 오빠에게 '자신의 삶부터 챙기라'며 답답해 한 적이 많았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장례를 치르는 것을 보니 오빠가 참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구 씨는 26일 김해추모의공원에 묻혔다. 

김해뉴스 /조나리 기자 nari@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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