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우 김해뉴스 사장(부산일보 이사).

tvN의 새 드라마 '굿 와이프'에는 음모에 휘말려 감옥에 간 베테랑 검사가 있습니다. 하루는 후배 검사가 '나는 당신 편'이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면서 어떤 대답을 유도합니다. 2분이 좀 지난 뒤 베테랑 검사는 후배 검사의 윗옷 안주머니를 뒤져 휴대폰을 빼앗습니다. '녹음 중'입니다. 베테랑 검사는 패 죽일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정반대의 대답을 녹음합니다.
 
<김해뉴스> 창간 직후의 일입니다. 지인이 어떤 사람과 점심을 같이 하자고 했습니다. 한 마당발 후배에게 그 사람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후배는 "사우나에서 옷을 벗고 만나라"라고 조언했습니다. 무조건 녹음을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만나보니 그런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그는 은밀한 제안 같은 걸 해왔습니다. 말을 빙빙 돌려서 했더니 어색한 표정으로 일어섰습니다. 저는 거침없이 말하고 행동하는 스타일이었는데, 그날만큼은 진심이나 진정성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사람 좋은 시늉만 했습니다. 얼마 뒤, 한 사람이 신문사로 찾아왔습니다. 억울한 사정을 늘어놓더니 아이패드를 꺼내 녹음한 대화들을 들려주었습니다. 녹음 건수가 50개는 족히 넘었습니다. 뜨악해 하고 있는데, 본인은 무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건성으로 대화에 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녹음·녹화 기능을 갖춘 휴대폰이 등장하면서 이런 일은 아무렇지도 않게 되어버렸습니다. 이 때문에 휴대폰을 엎어놓거나 휴대폰이 안 보이면 일단 의심부터 하고 보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녹음을 한다 싶으면 일부러 역정보를 흘리는 경우도 있다 들었습니다.
 
기자들의 취재 환경에도 적잖은 변화가 왔습니다. 취재를 할 때 녹음 여부를 묻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녹음을 한다면 있는 그대로 말하기 힘들다"는 취재원도 있습니다. 기실 기자들은 녹음을 하고 싶어합니다.100% 정확하게 받아적기가 힘들다 싶으면 동의하에 녹음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몰래 녹음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소송에 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취재원은 나중에 문제가 되었을 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우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당연히 녹취록은 결정적인 자료가 됩니다. 녹음이 힘들 때는 인터뷰 한 날의 기온, 구름의 모습, 기분, 풍경 따위 소소한 것들을 수첩에 메모하기도 합니다. 이 정도만 해도 재판에서 유리해지지만, 녹음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기자들은 이래저래 녹음과 녹화의 필요성 혹은 유혹을 느끼고 있습니다. 문제는 동의없는 녹음 등이 성행하는 바람에 점점 진심과 진실을 알기 힘들게 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사방 도처에 널려 있는 녹화 기구도 우리를 찜찜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CCTV나 블랙박스는 이제 어디에나 있습니다. 개인이 특정 공간에 고정카메라를 설치해 두고 휴대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확대했다 축소했다 하면서 점검을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단추처럼 생긴 초소형 카메라도 등장했습니다. 페이스북을 하거나 특정 앱을 깔았을 경우 다른 사람의  위치 정보도 알 수 있습니다. 범죄 예방이나 범행 현장을 적발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려려니 하겠습니다만, 사생활이 고스란히 드러나기도 한다는 점에서 섬뜩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서는 당이 '빅 브라더'란 이름의 '텔레스크린'을 통해 시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습니다만, 지금의 우리는 시민이 시민을 감시하는 정말 무서운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미국 월가에서는 이미 직원의 이메일 등을 감시하는 게 일상화되었다고 합니다. 개인은 감시망에 걸려들지 않기 위해 정체성을 숨기고 스스로를 통제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여름 휴가철입니다. 노랫말처럼 '신문 잡지도 없고 전화 한 통 걸려오지 않는 아주 한적한 곳'에서 녹음·녹화 걱정없이 편안하게 힐링하시기 바랍니다. 꾸벅.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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