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경제를 정치·사회적 환경 아래에서 자라는 연약한 식물에 비유한다. 요즘처럼 세계경제가 경제논리보다는 정치적 영향을 받은 적도 드문 것 같다. 그렇다고 경제가 정치에 일방적으로 종속되는 것은 결코 아니고,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하겠다.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는 일찍이 국제분업의 원리를 적용해 자유무역을 주창했다. 한 나라가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는 제품을 수출하고, 생산비가 많이 드는 제품을 다른 나라로부터 수입해서 소비하면 두 나라 모두 경제적으로 이득이 된다는 '비교우위론'이다.
 
18세기에 미국과 독일은 경쟁력이 약한 자국의 산업을 일정기간 보호할 필요가 있다면서 자유무역을 주창하는 영국에 맞서 보호무역을 강조했다. 이를 '구보호무역주의'라고 한다. 수입상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보호무역은 자유무역에 맞서 나름대로의 논리적 타당성을 가지게 됐다. 1970년대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사양산업의 비교열위를 인정하지 않고 관세가 아닌 비관세장벽을 활용하는 '신보호무역주의'를 들고 나왔다. 하지만 선진국들은 신보호무역주의라고 칭하기 보다는 공정무역이라는 용어로 포장하고 자신들을 옹호했다. 비관세장벽은 눈에 보이는 관세가 아닌 까다로운 통관절차, 인증, 위생, 안전, 덤핑, 공정경쟁, 긴급수입제한 등을 문제 삼기 때문에 외견상으로는 보다 신사적이다.
 
최근 글로벌 신보호무역주의는 남중국해, 사드 등 정치, 복합적 요인과 결합하여 자유로운 상품, 사람, 기술 등의 이동을 강조하며 지구촌은 하나라고 외치던 세계화를 무색케 하고 있다. 비관세 장벽의 수단도 교묘해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스텔스 전투기를 닮았다하여 '스텔스(stealth)보호무역'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최근 중국에서는 한국의 사드배치를 문제 삼아 포스코 전기강판에 37.3%의 반덤핑관세를 부과했다. 뿐만 아니라 칭다오시는 칭다오 국제맥주축제에 우리 대표단의 참가를 불허했고 한류 배우의 중국 내 방송출연에 제한을 가하려고 하자 국내 관련 주식이 폭락하기도 하였다. 중국이 위생 등을 문제 삼아 한국산 제품의 통관을 거부한 건수는 최근 과거 보다 세배 이상 급증했다.
 
보호무역주의는 자국 내 애국주의와 맞물려 미국에서는 이쑤시개 하나라도 '메이드 인 USA'를 호소하고 프랑스는 100% 프랑스산을 강조하는 '신메이드 인 프랑스' 붐을 이끌고 있다. 독일은 로봇기술로 아디다스공장을 중국에서 불러들이고 일본은 국가전력특구를 만드는 한편 무제한 돈을 풀면서 해외 제조업체를 되돌아오게 한다.
 
한미동맹을 외치면서도 미국은 선거를 앞두고 철강업자들의 표를 의식해 한국산 철강, 금속제품에 19건의 무더기 무역제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국제무역위원회(ITC)가 한미FTA가 없었다면 미국의 무역적자는 더 늘었을 것이라는 보고서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트럼프와 힐러리 후보는 한미FTA 재협상을 벼르고 있다.
 
영국 경제정책연구센터는 지난 15개월간 전 세계교역량의 증가세는 둔화되는 정도를 넘어 아예 정체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세계 각국들의 보호무역주의와 자국통화의 평가절하 때문이라고 하였다. 19개월째 연속 수출 감소를 기록하고 있고 수출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소규모 개방 한국 경제가 헤쳐 나갈 길은 결코 녹록지 않다. 2008년 미국발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세계 각국의 보호무역조치 4,000여건 중 1,000여건이 한국을 표적으로 하고 있다. 정부가 비관세장벽에 대비해 발표한 것은 부처별 과장급 비관세장벽 담당관을 지정하고 기업에 대한 컨설팅과 상대국 정부와의 실무 협의 등을 지원한다는 것이 고작이다.
 
겉으로는 어떠한 보호주의도 배격한다는 G20 공동성명도 속내는 모두 다르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이웃나라를 거지로 만들 수도 있다는 인근궁핍화정책이 세계 제2차대전으로 이어졌다는 학습효과를 세계가 잊고 있지는 않는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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