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경흠 신라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김해는 한 나라의 수도였다. 김해가 가락국의 수도였음은 '구지가'라는 고대가요가 고등학교 교재에 실려 있으며, 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김수로왕의 신화와 함께 반드시 언급되어야 하는 곳이기에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계기가 아니라면 평소에 김해는 넓은 평야와 낙동강을 낀 지역으로만 여겨질 뿐, 서울이나 경주 및 공주와 부여처럼 한 나라의 수도로 인식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이는 이른 시기에 가락국이 신라에 복속되면서 김해가 수도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려 잊혔기 때문이다. 또 가야문화 복원 조성 사업도 지지부진해 볼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김해를 찾는 손님들에게 안내해 줄 김해의 명소는 어디인지 한 번 물어보자.
 
나말여초(羅末麗初), 땅의 기운을 제대로 보호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의 사찰 기능에 대한 설명, 즉 '비보사찰설(裨補寺刹說)'을 통해 전 국토의 지기(地氣)를 보호하려는 도선의 풍수사상 덕분에 송도는 고려의 수도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한양은 무학의 풍수지리설과 정도전의 유학적 논쟁 이후 조선의 수도로 결정됐다. 김해는 그것처럼 김수로왕의 큰 노력과 판단에 의해 수도로 결정됐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는 김수로왕이 수도를 정하고, 궁궐을 조성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개국한 다음해 봄 정월에 왕이 말하기를 ‘내가 수도를 정할 것이다’라고 하고 바로 임시로 지은 대궐 남쪽 신답평(新畓坪·새로 논을 조성한 곳으로 새 동네)으로 나아가서 사방의 산악을 바라보면서 ‘이 땅이 여뀌 잎만하게 좁고 작지만 빼어나서 16아라한(阿羅漢·성인의 경지에 이른 16명의 불제자)이 머물 만한 곳이다. 더구나 하나로부터 셋이 생기고 셋에서 일곱이 생기는 원리가 있으니 일곱 분의 성인(七聖·<장자>에 나오는 일곱 성인)이 머물 만한 데가 바로 여기에 합당하다. 강토를 개척하면 나중에 참으로 좋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주위 1500보 되는 외성에 궁궐 전각과 일반 관사들이며 무기고와 곡식창고의 자리를 잡았다. 일을 마치고 대궐로 돌아와서 국내의 장정 일꾼들과 장인들을 두루 징발하여 그달 20일부터 견고한 성터를 다지기 시작하여 3월 10일에 이르러 일을 마쳤다. 궁궐과 관사는 농한기를 타서 지었는데, 이해 10월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다음 해 2월에 낙성하고 좋은 날을 받아 왕이 새 대궐로 들어가 모든 정사를 처리하고 일체 사무에 힘썼다”
 
김수로왕이 정한 가락국의 수도 김해는 좁기는 하지만, 불교의 16아라한과 도교의 7성 등 동양의 모든 세계를 아우를 수 있는 인물들이 머물 수 있는, 우주 운행의 핵심으로서 신성한 땅이다. 나정, 알영정, 선도산이 신라 건국의 신성 지역이듯 구지봉은 바로 이러한 가락국 건국과 수도 김해의 신성성을 담보하는 곳이다. 그런데 이후 박씨 왕권의 상징 나정과 알영정이 김씨 왕권의 신성성을 간직한 시림(또는 계림)에 밀려나 존재감이 떨어지듯 김해의 구지봉 역시 경주에 밀리고 말았다.
 
조선조 후기 김해에서 20여 년을 살았던 낙하생 문인 이학규는 초현대를 설명하면서 ‘세상에 전하기를 왕도(王都)에서는 위어(葦魚·웅어)가 난다고 하는데, 지금 김해 및 경주에서 이 고기가 난다’고 하였다. <영남악부>에서는 당시 김해 사람들이 진례를 ‘경성내(京城內)’라고 한다고 소개하였다. 이 내용에서 이학규가 김해에 있었던 당시의 김해 사람들은 웅어가 특별히 왕도에서 난다고 알고 있었고, 김해와 경주를 동등한 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구나 진례를 경성내라고 했다는 데에서 김해를 경성, 즉 도성으로 생각하여 그렇게 불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해 사람들은 가락국 시대부터 17세기까지 1700년 이상을 자신들의 고장을 수도로 생각하고 그렇게 불러왔던 것이다
 
신라, 백제, 고구려의 삼국이 아니라 가야를 포함한 사국 시대로 고대국가를 설정하는 등 가야에 대한 관심이 커져가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6가야의 맹주였던 가락국의 수도 김해는 새롭게 단장될 필요가 있다.
 
더욱이 김해공항이 장차 확장돼 국제공항으로서의 위용을 갖추게 되면 서울의 고궁들이 외국인들의 관심을 끌듯 가락국 옛 수도의 모습도 관광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발견되었던 수많은 고고학적 유적, 유물들과 문헌으로 조명된 사실들을 바탕으로, 서울·경주 등 옛 수도들이 그러하듯, 아름다운 옛 가락국 수도의 모습을 제대로 재현해야 할 때가 되었다. 현재 김해가야테마파크가 조성되어 있긴 하지만 신성한 역사의 현장과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어 상징성이 떨어진다.
 
새로운 도시 건설과 공단의 조성이 김해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수도의 재조성은 김해가 신성한 곳임을 자랑할 수 있는 바탕이 됨과 동시에 미래 김해 관광 산업의 핵심이 될 것이라는 믿음도 가져야 한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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