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우 김해뉴스 사장(부산일보 이사).

지난 주 <김해뉴스> 사회면에는 경찰이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상대적 약자에게 폭행과 불법행위를 일삼는 이른바 갑질 횡포를 근절하기 위해 오는 12월 9일까지 특별단속에 나섰다'는 기사가 실려 있습니다. 새 경찰청장의 방침에 따른 것입니다. 경찰이 밝힌 단속 대상은 '공공기관 등에서 일어나는 권력형 비리, 납품·입찰 비리, 악덕소비자의 업무 방해 등 모든 갑질 횡포'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해당될 수 있겠습니다. 몸조심 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기실 갑과 을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뒤바뀔 수 있고, 또한 뒤바뀌고 있습니다. 이런 TV 개그 프로도 있었습니다. 옷가게 주인이 짜장면 배달이 늦었다며 배달원을 괴롭히고 모욕했습니다. 한참 뒤 배달원이 이 가게에 옷을 사러 왔습니다. 배달원은 옷가게 주인을 괴롭히고 모욕했습니다.
 
부산의 중견소설가 정태규 님이 페이스북에 소설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도 갑질에 관한 게 있습니다. 주인공인 소년의 엄마는 시장에서 생선 좌판을 열고 있습니다. 군화를 신은 시장 단속반 반장은 좌판을 발로 차 엎어버리고 있습니다. 오래 전, 부산 남구의 한 이면도로에서 비슷한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갓 승진한 동사무소 사무장이 퇴근길에 할머니의 좌판을 발로 걷어차면서 으스댔던 것입니다. 사무장이 보여준 행동의 사회적·심리적 배경과 사무장 부모의 근황을 궁금해 했던 기억이 납니다.
 
김해중학교 1학년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전하다리 앞 집 마당에서 문상객들을 맞았습니다. 엿장수 몇 사람이 와서 밥을 청했습니다. 엿장수들은 밥을 먹고 나서는 삐딱한 자세로 돈을 요구했습니다. 시끄러워지는 게 싫어서 돈을 주는 상주들이 더러 있었던 모양이었습니다. 어린 눈에는 엿장수들이 무서웠고 갑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친구 한 분이 "왕년에 엿장수 안 해 본 놈이 있나" 하면서 눈을 부릅뜨고 엄포를 놓자 슬그머니 자리를 떴습니다. 미상불 엿장수는 엿을 파는 사람이지 무슨 갑이 아니란 사실을 알았습니다.
 
하루는 약품도매업을 하는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무슨 날 오전 6시 10분 어느 코스로 어느 골프장에 부킹을 해 줄 수 있느냐고 물어왔습니다. 거래하는 병원의 의사가 날짜와 시간과 코스를 지정해서 부킹을 해 달라고 '지시'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곤란하다고 하자 친구는 "분 단위까지 지정하는, 뭐 이런 놈이 다 있냐" 하면서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 의사의 주문은 전형적인 갑질 행태였습니다. 병의원과 의사가 마냥 갑인 건 아닙니다. 한번은 의료사고라고 주장하는 유족들이 사이비 시민단체 사람들과 병원에 관을 메고 들어온 적이 있습니다. 병원 측은 관 앞에서 손을 들고 말았습니다. 병원 이미지 때문이었습니다. 누가 진정한 갑이고 누가 진정한 을인지 헷갈리는 장면이었습니다.
 
한 권력기관의 고위간부가 말했습니다. "살아오면서 머리를 숙여 본 적이 거의 없는데 오래 전 초등학생 아이 담임이 상담을 해야 하니 학교로 오라고 하더군요. 안 갈 수가 없더라구요. 이 담임이 그러고 나서는 밤 10시에도 전화를 걸어 와 술 한 잔 사달라고 하질 않나, 자꾸 지분거리는 겁니다. 그런데 아이 때문에 안 나가고는 안 되겠더라구요." 정반대의 사례도 있습니다. 한 권력기관 종사자는 담임이 아이를 부당하게 괴롭힌다는 판단이 서자, "어린아이를 볼모로 잡아두고 갑질을 하는 건 유괴범이나 다름없다"면서 강력하게 대응했습니다. 담임은 집에 찾아가 무릎을 꿇고 빌었습니다. 상황과 성정에 따라 갑과 을이 뒤엉키고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공권력을 통해 갑질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우리 사회의 현재 모습이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우리의 가정, 학교, 직장 들이 보통의 일본사람들처럼 누구에게나 친절하라고 가르치는 일이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하리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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