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시골 초등학교 동기생 모임에서 있었던 일이다. 같은 마을에 사는 비슷한 조건의 친구들 사이에 국민연금 수령액이 서로 달라 화젯거리가 됐다. 정부는 1995년 우루과이라운드 타결 이후 소득 보전 차원에서 일정액을 지원하면서 농민들에게 국민연금 가입을 적극 권장했다. 당시 일부 농민들은 십수 년 후에 연금을 받을 수 있을지를 반신반의하다 가입을 미뤘다. 뒤늦게 가입한 농민은 초기 가입자보다 수 만원 적은 연금액을 수령하게 됐다.
 
갑자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읽은 흥미로운 일화가 떠올랐다. 옛날 시골의 농부가 부인과 상의한 후 더 좋은 말과 바꾸기로 하고 키우던 말을 시장으로 데리고 갔다. 시장으로 가던 도중 살찐 암소에게 마음을 빼앗겨 말을 암소와 맞바꾸었다. 귀가 여린 농부는 다시 황금알을 낳는다는 거위로 교환했고, 마지막에는 천하의 명약이 된다는 썩은 사과 한 자루를 받았다.
 
날이 저물어 주막에서 만난 한 부자가 "집에 가면 부인이 불같이 화를 내면서 당신을 당장 쫓아낼 거요"라고 말했다. 농부는 "아내는 내 말을 믿고 틀림없이 잘했다고 할 것이오"라고 장담했다. 어이없어 하던 부자는 내기를 하자고 했다. 자신이 지면 금은보화를 몽땅 농부에게 주고, 농부가 지면 부자의 몸종이 되기로 했다. 두 사람은 이튿날 농부의 부인에게 갔다. 부인은 남편이 가져온 썩은 사과를 보고는 "식초를 만들기 위해 썩은 사과가 필요했는데 잘 됐네요"라며 웃었다. 이렇게 해서 농부는 큰 부자가 됐다고 한다. 한낱 우스갯소리에 불과하지만 사람 사이에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이야기다.

경제 주체 사이의 불신은 사회적·거래적 비용을 증가시키기 마련이다. 예컨대 편의점 주인이 부업학생을 믿지 못하면 감시카메라 설치비를 부담해야 한다. 정부가 기업을 신뢰하지 못하면 규제를 위해 공무원 수를 늘려야 한다. 기업은 규제를 극복하기 위한 제반 비용을 투입해야 한다.

민간이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면 엄청난 비용이 낭비될 뿐만 아니라 정부 정책의 실효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단위 면적당 사용 후 핵연료 보관량' 세계 1위인 한국은 1986년 방사성 폐기장 건설을 9차례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2005년 경주에 임시저장소인 중저준위 방폐장를 겨우 만들었다. 경주 방폐장 건설에 앞서 부지선정위원회의 조사보고서는 비공개됐다. 겨우 몇 쪽짜리 요약본만 발표했는데 지하 암반이 대체로 양호하다고 대충 얼버무리는 내용이었다. 방폐장이 들어서고 4년 후 공개된 정식 보고서에는 평균 암반 상태가 불량 또는 매우 불량으로 돼 있었다. 심지어 활성단층까지 추정된다고 했지만 이를 무시하고 은폐했던 정황이 드러났다.
 
정부의 투명하지 못한 정책을 불신하는 국민들이 앞으로 자신의 주거지에 대한 방폐장 건설 시도에 어떻게 대응할지는 명약관화하다. 올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정부의 신뢰도는 35개국 중 29위였다. 사법시스템 신뢰도는 34개국 중 33위로 최하위권이었다. 대한상공회의소 보고서를 보면 현재 우리나라의 사회신뢰도는 26.6%에 그쳤다. 만약 사회신뢰도가 북유럽 국가들의 평균인 69.6% 수준으로 향상된다면 경제성장률은 1.5%포인트 더 오를 수 있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최근 국가 전체를 블랙홀에 빠뜨린 '최순실 게이트'는 가장 높은 신뢰도를 유지해야 할 국정 최고책임자와 국민 사이의 마지막 신뢰의 보루를 무너뜨린 사건이다. 허탈과 참담함을 느끼게 한다.
 
20개월 만에 지난 8월 반짝 반등했던 수출은 다시 뒷걸음질쳤다. 조선·해운업 위기, 자동차산업 파업, 삼성전자의 리콜사태 등 경제는 암울한 위기에 몰렸다. 비합리적 샤머니즘이 한국 사회를 지배한다는 외신들의 지적이 터져나오면서 그나마 양호했던 국가 신인도마저 추락할까 두렵다.
 
이제 남은 과제는 투명성과 공정성을 바탕으로 한 정부와 국민 사이의 진솔한 소통을 통해 붕괴된 신뢰를 회복하고 다시 일어서는 대한민국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일이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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