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진 시인·동아대 명예교수.

잘난 이들은 왜 잘난 이인고 하니, 자신의 탐욕과 비리를 감추는 데에 아주 특별한 재주를 발휘하기에 잘난 이가 아닌가 합니다. 이기적 탐욕을 이타적인 사랑으로 위장하고, 비리를 저지르다 들키면 편당을 지어 틀어막습니다. 남을 속이는 일에 재빠르고 감쪽같아서 잘난 이가 되는가 봅니다.
 
가을이 지나는 동안 우리는 최고 권력층의 수십 년 묵은 잘난 이 놀음에 연일 아연실색하고 있습니다. 위장된 고백 쇼, 눈물 쇼로 변명에 급급한 지도자 앞에서 쓰린 가슴을 한 번 더 쳐야 했습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며 눈 꼬리를 치뜨더니, 자신이 사죄할 때가 되면 다시 온갖 핑계를 대며 국민들의 마음을 쓰라리게 헤집는 지도자, 그의 뻔뻔한 동지들, 그들은 사랑을 배반으로 갚았고 불의를 정의로 왜곡했습니다. 민중의 땀과 진정을 짓밟고 쌓은 그들만의 화려한 궁전을 무지렁이들은 조금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일견 화려한 삶을 살아온 그 잘난 이들이 몰랐던 것이 있습니다. 대단하진 않아도 소박하게 묵묵히 살아온 무지렁이들의 삶이야말로 떳떳하고 정의로운 삶이라는 사실, 부정하게 잘난 이들보다 부정의 밖에서 사는 무지렁이들의 삶이 훨씬 행복하고 편안한 것이라는 사실, 남 잘 속이고 제 것만 챙기는 잘난 이들이야말로 물고기나 새대가리, 청맹과니들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모르는 것입니다.
 
이슬람의 <수피우화>에는 물 위를 걷거나 하늘을 나는 수행자들의 얘기가 여럿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
 
첫 번째 수행자가 두 번째, 세 번째 수행자에게 자기 자랑을 합니다.
 
"나는 오랜 수행 끝에 물 위로 걸을 수가 있게 되었소."
 
그러자 두 번째 수행자가 은근히 한 술 더 뜨고 나섰습니다.
 
"나는 공중에서 걸을 수 있게 되었다오."
 
옆에서 듣고 있던 세 번째 수행자가 말했습니다.
 
"그런가요? 나는 이제 겨우 땅 위를 걸어 다닐 수 있을 뿐입니다."
 
셋의 대화를 듣고 있던, 존경받는 원로 수피가 첫 번째와 두 번째 수행자에게 말했습니다.
 
"고달픈 수행 끝에 당신들은 이제 물고기와 새의 경지에 이르렀나 보오."
 
그리고 세 번째 수행자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이야말로 인간의 경지에 이른 것 같소."
 
물위를 걷고 공중을 날아다니다니? 설사 그럴 수 있다 해도 그건 쓸데없는 잔재주이며 물고기나 새, 짐승의 경지에 불과한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비인간적인 명분이나 화려한 재주보다는 사람다운 생활, 내세울 것 없고 시비 따지는 일에는 서툴지라도 이웃과 더불어 한 발 한 발 땅을 딛고 살아가는 인간다운 삶이야말로 가치 높은 경지라는 얘기입니다.
 
유별난 재주,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권세를 누리고 재물을 모으는 잘난 이들이 알아야 할 것은 '자제'입니다. 또 스스로 힘을 나눠 쓸 수 있는 무지렁들의 행복이 아닌가 합니다. 평범한 물맛 같은 순리의 아름다움과 힘, 그것은 근대 민주주의 사회의 힘이요, 자유와 평등의 근간이기도 할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르고 연한 것 즉, 물(水)은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것 즉, 쇠와 돌을 마음대로 움직이고, 자신은 일정한 모양도 갖지 않으면서 어떤 틈 없는 곳에라도 스며든다.(<도덕경> 하편 제43장)'
 
새처럼 공중을 날고 물고기처럼 물속을 달리며 명성을 쌓고 부를 축적하는 대신 있는 듯 없는 듯 사람사이에 끼여 살기, 함께 땀 흘리고 서로 도우며 마음 놓고 살기, 높은 누각 위의 위태로운 영화보다는 작고 낮은 땅이지만 안심하고 살아가기, 뽐낼 필요도 잘날 필요도 없고 속이고 변명할 필요도 없는 물과 같이 살기, 방금 텃밭에서 뽑아 있는 듯 없는 듯 깊은 맛을 내는 겨울 생 배추 맛처럼 살기….
 
이런 무지렁이의 삶이야말로 왜곡된 정의를 바로잡고 교언영색의 위선을 무너뜨리는 힘이 되리라 믿는 것입니다. 그 힘이야말로 자유와 정의의 역사를 이끌어갈 수 있는 근본이 된다 할 것입니다. 매일 매일 출세와 축적을 위해 살아가는 이 땅의 모든 잘난 이들이 원래의 사람 사는 맛을 찾고, 사소하고 밍밍하긴 하지만 깊고 깨끗한 겨울 생배추의 깊은 맛을 알게 되기를 한 번 더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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