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저물어간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이다 보니 각종 모임도 잦다. 여기에서 빠질 수 없는 게 술이다.
 
한국인이 가장 즐겨 마시는 술은 무엇일까?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2015년 주류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맥주가 출고량·점유율·선호도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소주 출고량은 2.5% 줄어든 반면 수입맥주는 지난 5년간 300% 성장했다고 한다. 맛과 향이 밋밋한 국산 라거 맥주에서 맛과 향이 풍부한 수입 라거와 에일, 밀맥주 등으로 취향이 바뀌고 있는 것으로 보아 맥주에 대한 소비자의 입맛도 다양해졌음을 알 수 있다.
 
맥주는 보리로 만드는 것인가? 한자로 보리 '맥(麥)'을 쓰고 있으니 당연히 보리로 만든 술이라고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난 속이 냉해서 맥주만 먹으면 장이 안 좋다'라든지 '속에 열이 많아서 맥주가 맞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대다수의 맥주는 보리로만 만들어진 게 아니다.
 
전통적인 맥주의 원료는 맥아(싹을 틔운 보리), 홉, 물 등 3가지이다. '맥주의 나라'라 불리는 독일의 경우에는 1487년 알브레트 4세가 제정하고 1516년 빌헬름 4세에 의해 공포된 이른바 '맥주 순수령'에 의해 맥주를 주조할 때는 맥아, 홉, 물로만 만들어야 했다. 이후 새롭게 제정된 독일 맥주법(1993년)으로 인해 효모, 밀맥아 등의 사용이 가능해졌다.
 
그런데, 우리나라 주세법에 있는 맥주의 주조 기준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엿기름(밀엿기름을 포함한다), 홉(홉 성분을 추출한 것을 포함한다) 및 물을 원료로 하여 발효시켜 제성하거나 여과하여 제성한 것. 2)엿기름과 홉, 밀, 쌀, 보리, 옥수수, 수수, 감자, 녹말, 당분, 캐러멜 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것 중 하나 이상의 것과 물을 원료로 하여 발효시켜 제성하거나 여과하여 제성한 것.
 
결국 보리가 아니어도 된다는 말이고 쌀, 보리, 옥수수, 감자, 녹말 등의 전분질을 섞어 엿기름 10%이상이 되기만 하면 '맥주'라고 분류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맥주는 주세법의 영향과 독과점 형태인 맥주산업의 특성으로 인해 예전에는 값비싼 맥아의 함량은 최소로 하고 쌀이나 밀, 옥수수 같은 전분질을 많이 사용해 만들었던 게 사실이다. 최근에는 국내 소비자의 입맛에 부응하기 위해 국내에서도 100% 맥아로 만들었음을 내세워 맥주의 맛을 강조하는 제품도 출시되고 있다.
 
맥주는 무조건 보리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한의학에서는 각종 곡물들의 성질을 분류하여 인체에 적용하고 있다. 보리는 대체로 차가운 성질을 갖고 있으며 위장의 열을 내린다고 한다. 반면 열대작물인 쌀은 따뜻한 성질을 가지며 비위를 데워주는 기능이 있다. 밀은 대장을 따뜻하게 하고 메밀은 대장의 열을 내려준다고 하니 각각의 곡물은 재배되는 지역의 기후와 형태에 따라 각기 다른 성질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위장의 열이 많은 토양, 토음체질은 보리로 만들어진 맥주, 대장이 약한 목양, 목음체질은 밀로 만들어진 맥주, 소화기가 냉한 수양, 수음체질은 막걸리나 정종, 간이 작아 술에 약한 금양, 금음체질은 가벼운 포도주 한 잔이 도움이 된다.
 
지나친 음주는 어떠한 체질이든지 건강에 위험한 것은 당연하다. 다만, 적절한 양의 음주는 우리의 삶에 활력소가 될 수 있고 더욱이 자신의 체질에 맞는 술을 골라 즐길 수 있다면 이것이 건강하고 슬기로운 음주일 것이다. 김해뉴스
 




조병제 한의학·식품영양학 박사
부산 체담한방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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