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원영 대성동박물관 학예연구사.

전 피겨스케이트 선수 김연아가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 신은 스케이트화가 문화재로 등록된다는 얘기가 있다. 당연히 논란이 많다.
 
예전에는 적어도 일제강점기 이전 그러니까 조선시대 이전의 것을 문화재로 인식했는데, 근래에는 범위를 확대해서 대개 제작된 지 50년 이상 된 것 중 가치가 있는 것을 문화재로 보고 있다. 일반인들은 문화재를 박물관이나 유적지에 가야 볼 수 있는 것으로 인식하기 쉬운데, 실생활에서 접하기 쉽지 않고 지금은 쓰지 않는 물건이라는 관념이 생겨서일 것이다. 그러던 것이 어느새 현대의 생존한 인물 그것도 불과 서른도 안 된 나이의 인물이 사용하던 10년도 안 된 외국산 물건을 문화재로 인식하는 시대가 되었다.
 
10여 년 전 유행한 우스갯소리로, 쌍둥이도 세대 차이를 느낀다고 하였다. 그만큼 세상이 빠르게 변화한다는 한탄 어린 말이겠지만.
 
어릴 때 흔히 보던 요강이 떠오른다. 요강은 야간에 방에 넣어두고 용변을 보는 실내용 변기로서 겨울철에 특히 요긴하게 쓰였다. 옛날에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었고 혼수품 중의 하나였다. 삼국시대에는 토기를 사용했는데, 조선시대에는 대개 놋쇠나 사기 등으로 만들었다. 일제강점기 이후에는 우리가 흔히 보아 온 사기요강으로 대체되었다.
 
옛날에는 변소와 처갓집은 멀수록 좋다고 했다. 화장실은 냄새 나고 불결한 공간이므로 생활공간에서 멀리 두는 것이 좋고, 남존여비의 사회에서 처갓집은 멀어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 주거공간이 단독주택에서 아파트로 바뀌고 변기 또한 위생적이고 청결한 수세식으로 교체되면서 집안에 화장실이 있는 것은 당연하고 심지어 2, 3개씩 두기도 한다. 요강이 필요 없게 된 것이다.
 
그리고 대가족이 핵가족이 되고 부부간 맞벌이가 대세가 되고 남녀평등을 넘어 여성상위시대가 되면서 애를 돌볼 외갓집은 가까울수록 좋다는 시대가 되었다. 이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맞게 변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 되어야 하는 '문화재'에 대한 인식도 바뀌고 있는 걸까.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나 축구선수 박지성의 업적은 김연아보다 못한가? 스포츠스타만 중요한가? 한류스타 싸이의 말춤은 그럼 무형문화재가 되어야 하는가? 교과서에 실릴만큼 유명하고 오래전 작고한 이중섭이나 박수근, 김환기 이런 대화백의 그림도 문화재로 지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바 없는데? 문화재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보존하고 기념할 방법은 과연 없을까?
 
후대에까지 물려줄 보존가치가 있는 어떤 것을 굳이 들자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오히려 '요강'이 '스케이트화'보다 문화재의 본질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어릴 때 추운 겨울밤에 참다 참다가 뛰어간 화장실에서 시린 엉덩이를 까는 것보다 머리맡에 놓인 요강에 오줌을 눈 것이 더 좋았다는 추억은 우리 세대 누구에게나 남아 있지 않은가?
 
세계에 한국 스포츠의 위대함을 알린 위대한 선수가 신었고 당대의 최첨단 기술이 녹아 있어 충분히 후대에까지 보존할 가치가 큰 외국산 스케이트화. 집집마다 상비하는 물건 중에서도 하찮아서 주거문화가 바뀌면서 가장 먼저 버리기 쉬웠던 요강. 사실 둘 다 아직 문화재가 되기에는 부족함이 너무 많지만 뒤에 대통령이 된 어떤 분이 어릴 적 오밤중에 앉아서 청운의 꿈을 꾸었던 요강이 아직 남아 있다면 그 요강을 문화재로 지정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 본다.
 
수로왕이 구지봉에 탄강하고 가야를 건국한지 어언 1975년. '2000년 세계도시 가야왕도 김해'를 준비하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10년도 안 된 그 어떤 것도 분명 기념이 될 만하고 보존 가치가 충분한 것이지만 같은 급으로 놓기에는 거부감이 먼저 든다. 게다가 대상 인물의 나이도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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