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해훈 시인·동아대 홍보팀장.

설이 지나고 음력으로 새해가 시작됐지만 참으로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현실이다. 말 그대로 이 풍진 세상이다. 혼돈스럽지 않은 때가 있었을까마는 그 정도가 심해지는 듯하다. 요즘 젊은 청춘들의 의식에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명제보다는 취업, 즉 먹고 사는 문제가 더 절박하다. 산다는 건 저 논둑의 들풀 하나에서 삶의 진리를 깨달을 수도 있어야 한다.
 
일부이긴 하겠지만 최근 들어 엄마들이 아이에게 "착하게 살지 말고, 최순실처럼 살아야 한다"고 교육시킨다는 이야기를 간간이 듣는다. 말간 마음들을 찢는 소리이다. 단편 <이 풍진 세상을> 쓰신 소설가 이문구 선생이 지하에서 지금의 세상을 두고 뭐라 표현하실지 궁금하기까지 하다.
 
시인 두보가 미리 알았을까? 그는 '한바탕 풍진이 일어나니(一自風塵起). 인생살이 어려움을 오히려 슬퍼하노라(猶嗟行路難)'라고 했다. 풍진이란 '이 세상이 바람으로 흩날리는 듯한 어지러운 세상'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풍진을 벗어나 산으로 들어가 은둔하는 문사들이 많았다.
 
1689년 기사환국 당시 죽은 김수항의 형으로 모든 관직을 버리고 세상을 피해 화악산 골짜기로 들어가 은둔한 김수증이라든지, 이현일의 문인으로 당쟁을 겪은 선조들과는 달리 일찍이 과거를 단념하고 고향 안동에서 학문에만 전념한 권구 등이 있다.
 
김해 지역의 경우를 보겠다. 정조의 사랑을 받았던 이학규(1770∼1835)가 김해에서 궁핍하고 비참한 유배생활을 했지만 현실을 직시하고 처지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수많은 시문을 남길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을 귀인과 대조하여 '곤궁하고 미천한' 사람이라고 말하며, 보리밥과 막걸리나마 풍족하게 먹고 마실 수 있다면 그것이 행복이라 자조했다.
 
이학규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김해 유배생활 중 쓴 다음의 편지에서 알 수 있다. "… 진실로 의로움을 해치는 일이거나 염치를 잃는 일이 아니라면 대체로 모두 하려고 작정하여 대담하게 해본다. 하지만 밤중에 늘 잠을 이루지 못하고 마음과 입이 서로 말을 주고받고 하다가 그만 나도 모르게 스스로 부끄러움에 통곡 탄식하기를 마지않는다."(<일사유사> 권3, 이학규조)
 
그러면서 사대부 출신인 그는 김해 지역 백성들을 하대하지 않았고, 또한 이들이 제문이나 만시 등을 써달라고 하면 거절하지 않고 정성껏 써 주었다. 한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잃지 않았던 것이다.
 
선비들이 읽는 <근사록> 역시 사람의 마음 수양과 자기완성의 문제를 많은 부분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옛 사람들은 도(道)란 사람들이 일어나 잠자고, 보고 듣고, 먹고 마시고, 말하고 행동하는 일상과 떨어질 수 없으며, 만약 사람의 일상적인 일과 떨어져 있게 된다면 참된 도가 아니라고 했다. 즉 인간 완성의 길도 역시 이 일상에 있다는 것이다.
 
<중용>에 보면 공자가 자기 반성적 표현을 하는 구절을 볼 수 있다. 요약하자면 군자의 도가 네 가지인데 그는 그 중에 한 가지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했다. 자식으로서 부모 섬김이 그렇고, 신하로서 군주 섬김이 그렇고, 아우로서 형 섬김이 그렇고, 친구로서 내가 먼저 베풀지 못함이 그렇다는 내용이다. 그는 덧붙여 일상의 덕을 실천하는 데 있어 말을 삼가고 실천에 부족함이 있으면 힘써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이것이 진정한 사람의 도리라고 했다.
 
이처럼 공자의 예에서 보듯 인간의 성숙이나 그 성장의 과정이 자신과 타자와의 관계를 맺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의 모든 행동거지, 그리고 자신과 타자와의 올바른 관계 형성과 자신의 역할에 대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풍진 세상에서 어떤 삶이 가장 좋을까의 문제는 사람마다 해석이 다를 것이다. 그렇지만 삶의 바탕과 지향점은 분명할수록 좋지 않겠는가. 아들 둘 키우는 아버지인 필자의 잔소리인 듯 싶다.
 
'얕은 물은 잔돌만 만나도 소란스럽지만 큰물은 깊어 소리가 없다'는 문구, 되새겨볼 말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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