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이자 독자·삼계동.

따뜻한 봄 햇살이 마루에 가득하다. '가요무대 100선집'을 보면대에 올려놓고 플루트 연주로 한 시간 동안 마음껏 기분 내고 혼자서 잘 놀았다. 시간이 날 때마다 연습을 하였더니, 내가 들어도 좀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목포, 대전, 흑산도, 박달재로 노래의 가사 따라 선율 따라 마음 가는 대로 앉아서 여행을 한 셈이다.

나이 69세 되던 초봄. 건강 검진 결과 암 판정을 받았다. 없이 살던 사람이 살 만하면 죽는다더니, 내가 꼭 그 자리에 서게 된 것이다. 다른 병원에 가 보아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이 이리저리 연결해 서울의 병원이 정해지고, 수술 날짜도 일찌감치 잡혔다. 손녀들과 목욕하는 호사도 쉽지 않을 것 같아 아무 말 않고 함께 목욕탕에 갔다.
 
뒤돌아보면 아지랑이 피어나는 들길 거닐 듯 꿈결 같은 날도 있었다. 30대는 견디기 힘들고 눈물겨운 날들이었다. 지나간 날들은 어제인 듯, 가깝고 잘 견뎌낸 그 때 그 일들은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색깔 예쁜 조약돌이 되어 마음에 남아 있다. 가끔은 그리움도 되고, 어려운 일이 생길 때는 그때도 살았는데 이런 일 쯤이야, 하고 헤쳐 나가는 힘이 되기도 한다.
 
수술이 끝나고 닷새째 되는 날부터 아침에는 치료를 받고 낮에는 창경궁에서 걷고 오후에 또 치료를 받았다. 병원에서 운영하는 쉼터의 집에서는 '분홍리본' 회원들이 반찬, 일용품을 제공해 주었다. 음식 솜씨 좋은 아우들 덕분에 우리들의 밥상머리는 따뜻했다.
 
걸어서 수표교도 끝까지 갔다 와 보고, 서울의 숲, 인사동, 경복궁 등 여러 곳을 다녀 보았다. 혜화동 대학로에서 연극도 보고 영화관에도 다녔다. 반 년이 지나 집에 오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하모니카를 배우고 싶다고 했더니 플루트를 권하며 사 주었다. 홈플러스 문화센터에서 배우기 시작했다. 멜로디만 있는 음표 익히기와 가사 없는 곡이 어려워 내가 좋아하는 가요로 바꾸어 연습했다. 평소 먹는 그대로 가리지 않고 먹고 산에도 다니고 많이 걷고 친구들과 어울려 먼 나라 여행도 했다.
 
6개월에 한 번씩 여행하는 기분으로 병원에 다녔다. 꽃 피는 봄, 소낙비 내리는 여름, 눈 내리는 겨울. 나는 차창에 기대어 나를 위로했다. 이만하면 괜찮다고, 걸을 수 있고 볼 수 있느니 다행이라고…. 애써준 아이들이 고마웠다.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이만하면 말 것을, 하며 크게 소리 내어 운 일도 있었다.
 
다섯 번째의 여름이 가고 건강한 몸으로 병원을 졸업했다. 다음 주에는 김해시노인통합지원센터에 플루트 연주 봉사를 하러 간다. 첫 곡으로 어머니가 즐겨 부르던 노래 '봄날은 간다'를 연주할 참이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옛사랑이 그리운 사람. 조금은 외로운 사람. 마음이 울적한 사람. 말 못할 사연 가슴에 품고 사는 우리들끼리 손뼉치고 노래 부르다 보면 조금은 속이 시원해지고 즐거워지지 않을까? 저녁노을처럼 내 옆의 사람들과 즐거움을 나누는 일을 함께하고 싶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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