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천루’ 통해 자본주의 모순 지적
경제대국 중국 ‘도시화’ 매우 우려


초고층 건물을 짓는 국가는 불황에 빠진다는 가설 '마천루의 저주'라는 게 있다. 호황기에 건물을 짓기 시작하지만, 완공될 즈음엔 경기 과열로 부동산 거품이 빠지면서 경제 위기를 겪는다는 논리다. 꽤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실제 1970년대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가 완공된 뒤 오일쇼크로 미국 경제는 신음했다. 1997년 말레이시아에 당시 세계 최고층이던 페트로나스 트윈타워가 들어서자 아시아에 외환위기가 찾아왔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부르즈 칼리파를 짓던 도중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터지면서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 경제는 위기를 맞았다. 자본주의 도시화의 상징인 마천루가 역설적으로 자본주의의 모순을 잘 드러내는 셈이다.
 
지리학자이자 마르크스 이론가인 데이비드 하비는 자본주의 도시화의 문제점을 꾸준히 연구해 온 세계적인 석학이다. 지난 40여 년간 그가 쓴 논문의 핵심 내용을 묶은 <데이비드 하비의 세계를 보는 눈>에는 자본의 과잉축적으로 진행되는 도시화를 다룬 문제 의식이 담겨 있다.
 
하비가 특히 주목하는 건 일약 경제대국으로 떠오른 중국의 도시화 과정이다. 미국 지질조사소 보고에 따르면 중국은 2011년부터 3년간 시멘트 66억t을 소비했다. 20세기 들어 100년 동안 미국이 사용했던 45억t보다도 훨씬 많다. 중국은 지난 한 해 동안 100층 이상 건물만 85개를 지었다. 이는 2, 3위인 미국과 한국의 10배를 뛰어넘는 숫자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 700만 명이 일자리를 잃은 미국과 달리 중국의 실업자는 300만 명에 불과했다. 공산당의 주도로 고층건물을 비롯해 도로, 항만, 공항 등 막대한 도시 인프라 건설에 나서 수많은 일자리를 만든 덕분이다.
 
문제는 건설·건축 붐이 금융자본에게서 빌린 막대한 빚으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중국의 국가 부채는 배로 늘었다. 근래에는 입주자를 구하지 못해 수십 층짜리 신축 건물을 폭파해 버리는 웃지 못할 광경까지 벌어지고 있다. 중국의 현상은 '자본주의의 도시화는 잉여가치 창출을 위한 과정일 뿐만 아니라 창출된 잉여가치를 재흡수하는 장이 된다'는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도시화 과정에서 자본가에게만 수혜가 집중되고, 위험과 피해는 일반 서민들이 떠안는다는 점이다. 2008년 미국에서 부동산 거품이 꺼진 뒤 도시민 수백만 명이 집을 압류당해 거리로 내몰린 사이 사모펀드와 헤지펀드는 주택들을 사들여 막대한 임대 수익을 내고 있다는 게 단적인 사례다.
 
멀리 갈 것 없이 부산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민간자본을 끌어다 다리·도로·경전철을 놓은 뒤 시민들에겐 비싼 요금을 받게 한다. 민간자본이 그래도 최소 수익을 확보하지 못하면 막대한 시민 세금으로 민간업체의 손해를 보전해 준다. 최근 들어 아파트 값은 전국에서 가장 큰 폭으로 뛰었고, 30층 이상 고층 건물이 가장 많은 도시가 됐다. 하비의 눈으로 보면 우려할 만한 상황이다.
 
하비는 서문에서 '잉여자본과 잉여노동을 위해 점점 더 많은 콘크리트를 퍼부어야 한다면 최소한 지금의 체제에 의문을 가질 때가 됐다'고 말한다. 콘크리트가 일으킨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1억 3000만 명이 사는 도시를 건설하겠다는 중국의 계획은 더 이상 '미래의 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우리나라를 방문한 하비는 "과연 도시화는 사람의 필요 때문이었는지, 자본의 필요 때문이었는지 질문해야 한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 장기적으로 경제 성장을 억제하고, 반자본주의적 도시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서울 잠실에 123층에 555m인 국내 최고층 건물 롯데월드타워가 개장했다. 이에 질세라 현대자동차는 서울 삼성동 신사옥을 당초 계획보다 16m 더 높여 559m로 짓겠다고 나섰다. 마천루의 저주 따위는 없다는 자신감일까. 아니면 한 치 앞만 보면 된다는 만용일까.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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