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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등왕 외로움 달래던 섬 ‘초선도’… “일본 건너간 동생들 잘 살고 있는지”(9)초선대 마애불 (경남 유형문화재 제78호)
  • 수정 2017.05.24 10:54
  • 게재 2017.05.24 09:34
  • 호수 324
  • 12면
  • 조나리 기자(nari@gimhaenews.co.kr)
   
▲ 김해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높이 5.1m의 초선대 마애불에 부처 형상이 새겨져 있다.




선인 만나 바둑·가야금 즐겼다는 전설
인근 칠점산 7개 봉은 공항 만들며 없애

가야시대 작은 절 금산사 뒤 마애불
평평한 바위에 선으로 그림 그린 듯
고려시대 제작, ‘거등왕 초상’ 주장도

사찰 뒤 계단 오르면 ‘부처님 왼발자국’
‘돌섬’ 불리던 초선대 내부에 큰 바위 가득
시 관리 소홀로 지금은 쓰레기, 빈병만





가락국 시조인 김수로왕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인물이지만, 수로왕의 장남이면서 가락국 2대왕인 거등왕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안동의 초선대는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문화 유적이다.
 
안동공단에서 고속도로 쪽으로 큰 도로를 건너면 공장들과 주택들이 있는 마을에 거등왕이 즐겨 찾았다는 초선대가 있다. '선인 혹은 현인을 초청한 언덕'이라고 해서 초선대, 초현대로 불렸다고 한다. 이곳은 과거에는 '초선도'라는 섬이었다고 전해진다. 초선대는 주의 깊게 찾지 않으면 그냥 지나쳐버릴 수도 있는 작은 언덕이다. 언덕을 다 도는 데 10분도 다 걸리지 않을 정도다.
 
초선대의 이정표는 높이 5.1m에 이르는 마애불이다. 진영 봉화산 마애불, 구산동 마애불과 함께 김해의 3대 마애불로 손꼽힌다. 초선대 마애불은 셋 중에서 가장 크다. 마애불은 금선사 안에 있다. 금선사는 가야시대 때부터 있었던 작은 절이라고 한다. 지금은 규모가 많이 커진 편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12평 남짓한 대웅전과 삼성각뿐인 자그마한 절이다. 금선사는 초선대 중에서 마애불만 감싸고 있다.
 
금선사에 들어가서 오른쪽으로 낮은 계단을 올라가면 마애불이 나타난다. 마애불 아래에는 향로와 제단이 놓여 있다. 마애불은 부처의 형상이 입체적으로 드러난 양각 형태가 아니라, 평평한 바위에 선으로 그림을 그린 듯한 모습이다. 선의 두께는 3㎝ 정도다. 마애불은 많이 닳아 과거보다 선명하지 않다고 한다. 세월 탓인지 조금씩 떨어져 나간 곳도 있다.
 
부처의 머리와 몸통 뒤를 비추는 광배도 흐릿하게 남아 있다. 목에는 굵은 주름이 세 줄 있다. 이는 세 가지 깨달음을 뜻한다고 한다. 극락세계로 간다고 해서 불자들이 자주 외는 '나무아미타불'의 '아미타불'이 마애불의 주인공이다.
 

   
▲ 금선사 입구와 오른쪽에 보이는 마애불.

마애불은 고려시대 때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마애불이 거등왕의 초상이었을 것이라는 설도 있다. 초선대를 자주 찾은 거등왕이어서 모습을 새겨놓았다는 이야기다.
 
거등왕은 선인을 만나 바둑을 두고, 가야금을 켜면서 근심을 다스리기 위해 이곳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혼자 남은 외로움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수로왕은 슬하에 왕자 10명과 공주 2명을 뒀다. 이중 둘째, 셋째 왕자는 허왕후의 성을 따라 '허씨'가 된 뒤 공주와 함께 현해탄을 건너 일본으로 갔다고 한다. 두 왕자와 신녀가 구름을 타고 떠났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여기서 신녀는 공주를 뜻한다고 한다. 이때 바다를 건너간 공주가 일본 야마이국 최초의 여왕인 히미코라는 이야기도 있다. 나머지 일곱 왕자는 삼촌인 장유화상을 따라 가 성불했다고 전해진다.
 
거등왕은 동생들을 다 떠나 보낸 뒤 외로움에 시달리다 초선대에서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일본으로 건너간 두 왕자와 공주를 그렸을지도 모른다. 조선시대 지리책인 <신동국여지승람>에는 거등왕이 초선대에서 칠점산의 '참시선인'을 만났다고 한다. 선인이 누군지 알려진 바는 없다.
 
조선시대에 그린 '김해부내지도'의 우측 아래에는 초선대 옆에 봉우리 일곱 개가 우뚝 솟은 칠점산이 보인다. '김해부내지도'보다 앞선 1750년대의 '해동지도'를 보면 칠점산은 봉우리가 7개인 섬이었다고 한다. 바다로 둘러싸인 초선도에서 거등왕이 배로 신하들을 보내 참시선인을 모셔오라고 했을 모습이 그려진다.
 
칠점도 또는 칠점산은 현재 김해국제공항 자리라고 한다. 이영주 문화관광해설사는 "7개 봉우리 중에서 서너 개는 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 당시 비행기 활주로를 만들기 위해, 나머지 봉우리는 광복 이후 김해공항을 만들기 위해 없앴다"고 설명했다.
 

   
▲ 거등왕 혹은 부처의 것이라고 전해지는 대형 발자국.

초선대를 더 자세히 보기 위해 금선사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난 돌길을 따라 올라간다. 마애불 바로 옆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돌계단을 몇 발짝 오르면 금선사에서 올려 보던 마애불에서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뜻밖의 '족적'을 볼 수 있다. 마애불 바로 앞에 가로 50㎝, 세로 1m 정도로 움푹 패인 발자국 모양이다. 이를 보고 '부처의 발자국'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부 불교 신자들은 부처의 발자국이 있는 곳을 처음 설법이 전해진 곳으로 보기도 한다. 금선사 주지인 주일스님은 "마애불 앞에 왼발 발자국이 남아 있다. 흥부암에 오른발 발자국이 있다"고 설명했다.
 
발자국 옆에는 13㎡ 남짓한 크기로 윗면이 평평한 바위가 있다. 거등왕과 참시선인이 바둑을 두거나 가야금을 켰던 곳이라고 한다. 이영주 문화관광해설사는 "참시선인은 항상 가야금을 갖고 다녔다고 한다. 두 사람이 편하게 앉을 수 있는 바위 위에서 가야금 연주를 하고 바둑을 뒀다고 한다. 이전에는 바둑판으로 쓰인 바위도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찾아볼 수가 없다"고 말했다.
 
마애불을 지나 길을 따라 걸으면 바위와 나무로 쌓인 작은 숲이 나온다. 100보 이내에서 다 돌아볼 수 있을 만큼 작은 초선대지만 팽나무, 회나무, 버드나무 등으로 우거진 모습이다. 숲에 들어가면 공장과 주택가에서 한참 벗어난 느낌을 준다.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큰 바위들이 이 곳에만 쌓여 있다. 왜 이곳을 '돌섬'이라고 불렀는지 이해할 만하다.
 
주일스님은 "초선대에 있는 회나무가 약재로도 쓰인다고 해서 30~40년 전에는 몰래 회나무를 잘라 간 사람들도 있었다. 1980년대만 해도 초선대는 지금보다 더 높았다. 비가 오면서 흙이 많이 쓸려 내려가 지금은 낮아졌다. 동네 사람들과 함께 쏟아진 흙을 대야에 담아 다시 쌓았던 기억도 생생하다"고 설명했다.
 
김해시는 10여 년 전 초선대에서 공원 사업을 벌여 의자, 2~3평 규모의 정자를 세웠다. 그러나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지금은 쓰레기와 빈 술병만 곳곳에 뒹굴고 있다. 바다가 있던 곳에는 공장이, 왕과 신선이 머물던 곳에는 쓰레기만 남은 것이다. 세월이 무심한 것인지, 사람이 무심한 것인지 모를 일이다.
 
김해뉴스 /조나리 기자 nari@gimhaenews.co.kr


▶초선대 마애불 /경상남도 김해시 김해대로2580번길 21(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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