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정국 김해문화의전당 사장.

김해로 직장을 옮긴 뒤 좋은 점은 출·퇴근시간에 만원지하철을 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다. 걸어서 10분이면 출근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기분 좋은 일이다. 또 하나 좋은 점은 과천의 양재천변에서 하던 조깅을 김해 해반천변에서도 계속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같은 천변이라도 이곳 해반천변을 뛸 때는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해반천변 옆길에는 가야의 기마무사 조형물들이 줄지어 있다. 말을 타고 창을 든 철기마병이 보병부대를 이끌고 전장으로 출격하는 모습이다. 인근 대성동고분군에서 바로 뛰쳐나온 듯 생생한 가야의 장군과 병사의 표정에서 전쟁의 비장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여기에서 조금 남쪽으로 가면 가야시대 선착장 유적이 나타난다. 배의 선수(船首) 모양 조형물이 설치된 곳이다. 당시에는 김해평야 일대가 바다였음을 알려주는 유적이다.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이 인도에서 바다를 건너온 허황옥을 맞았다면 아마 이 선착장이 아니었을까. 올해 10월 허황후신행길 축제가 이 부근 봉황동유적에서 열리는 것도 이 같은 추정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얼마 전 가야사 복원을 지시한 이후 국가적으로 가야사에 관한 많은 정책과 사업이 논의되고 있다. 특히, 가야사의 중심도시 김해에선 '김해 가야역사문화도시 지정·육성'과 '가야사 2단계 조성사업'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 사업들의 요체는 김해가 어떤 역사문화도시로 발전해야 하고 또 어떤 방법으로 이걸 실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해답은 김해보다 앞서 역사문화도시 사업을 수행한 도시들의 사례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천년의 역사와 미래가 공존하는 세계적인 역사문화도시'를 표방한 경주 역사문화도시(2006~2035년), '세계와 소통하는 가장 한국적인 도시'를 내세운 전주 전통문화도시(2007~2026년), '역사 재현과 문화 창조'를 내건 공주·부여 역사문화도시(2009~2030년)가 앞선 사례들이다. 이 중에서 현재까지 가장 성공적으로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곳으로 전주를 꼽는 전문가들이 많다.

전주는 전통문화도시 사업으로 '전주한옥마을 문화적 경관조성' 등 1단계 핵심기반 조성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 연간 1000만 명이 방문하는 우리나라 대표 문화관광명소로 떠올랐다. 전통문화와 예향의 도시로 알려진 도시브랜드를 국내·외에 홍보하는 데도 성공했다.

그럼, 그 성공요인은 무엇일까. 학계의 연구성과를 종합해 보면, 정체성-경제성-주민참여-스토리텔링 4가지로 분석된다.

우선 전주가 내세운 목표 '세계와 소통하는 가장 한국적인 도시'는 전통문화가 비교적 잘 보존된 도시의 정체성을 잘 살린 것이고, 이 도시가 잘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한식, 한옥, 한지, 판소리 등 전통문화자원을 산업화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하면서 경제적 성과도 거두고 있다.

전주는 사업 기본계획 수립단계부터 주민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홍보와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면서 주민 참여를 유도해 왔다. 그 결과, 현재 대부분의 주민이나 시민단체가 스스로를 사업주체로 인식하고, 참여를 통해 지역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자료조사·아카이브사업'을 통해 잊혀져가는 역사문화자원 9개 분야 150여 건을 발굴하고, 이를 반영한 웹지도를 만들어 더욱 스토링텔링이 풍부한 관광지로 가꿔나가고 있다.

이러한 성공요인을 김해에 적용해 보면 어떤 방안이 도출될까. 우선 역사문화도시로서 김해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심각하게 물어야 한다. 여기에는 김해의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다문화성-국제성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또 김해가 잘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이걸 어떻게 문화산업화해서 경제적 성과까지 거둘 수 있을지 연구해야 한다. 김해 전역에 널려 있는 많은 설화와 전설을 수집하고 아카이브로 만드는 스토리텔링사업을 병행해 사람 사는 이야기가 깃든 역사문화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일들은 주민과 민간전문가와 공무원이 다 함께 참여하는 거버넌스(민관협력기구)가 주도해야 한다.

아침 조깅길에서 만나는 해반천변의 유적과 설화가 살아 꿈틀거리는 지속가능한 '가야 역사문화도시'가 조성되길 기대해 본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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