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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루 아래 큰 내가 비껴/ 가을달 봄바람이 태평이로다/ 문득 눈앞에 삼삼한 은어/ 사문 웃음소리 귀에 들리는 듯 <목은 이색 ‘영남루’>(15) 밀양 영남루
  • 수정 2017.08.24 17:23
  • 게재 2017.08.23 09:49
  • 호수 336
  • 14면
  • 이경민 기자(min@gimhaenews.co.kr)
   
▲ 밀양강 다리에서 바라본 영남루가 우아하면서도 웅장한 자태를 과시하고 있다.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조선 3대 누각’
이색·임춘 등 선비들, 시문 통해 절경 극찬

무더위 피해 마루 누운 할머니 “애고 시원타”
누각 아래 대나무 숲에는 ‘정절’ 아랑 전설이

밀양시, 최근 국보 승격 운동 펼쳐 주민 호응


'영남의 산수는 남방에 으뜸이라/ 누각 위에 봄이 오자 우연히 한 번 올랐네/ 근심스레 찌푸린 눈썹은 멀리 외딴 멧부리요/ 마전하여 고루 편 베는 맑고 푸른 물결이라/ 구름은 그림 도리에서 상포로 날아가고/ 시 읊고 붓을 휘둘러 분벽에 남겨두나니/ 다시 오면 내 옛 일을 기억하려고' (임춘의 시 '영남사죽루' 중에서).

밀양 영남루는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조선시대 3대 누각'으로 손꼽힌다. 영남루는 특히 선비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곳이다. 1174년 고려시대 문인 임춘의 '영남사죽루'를 시작으로 수많은 선비들의 시문에 영남루의 절경이 언급돼 있다. 2007년 '밀양시민이 뽑은 밀양 8경'에 영남루의 야경이 으뜸으로 뽑히는 등 지역민들의 자랑거리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김해에서는 부원동에서 출발해 자동차로 50여 분을 달리면 닿을 수 있다.
 

   
▲ 영남루 누각 전경(왼쪽). 밀양시민들이 누각에 올라 더위를 피하고 있다.


영남루 경내는 8월 찜통더위를 피해 시원한 강바람을 찾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한 할머니는 신발을 벗고 누각에 올라 "아이고 시원하다"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편안한 차림으로 누워 잠을 청하는 사람, 앉아서 일행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 음악을 듣는 사람 등 휴식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목조 건물이라 그런지 '80명 정원 제한', '음식물 반입 금지'라는 문구가 적혀 있어 눈길을 끌었다.

영남루는 신라시대 사찰인 영남사의 부속누각에서 유래했다. 고려 공민왕 때이던 1365년 밀양부사 김주가 옛 건물을 철거하고 크게 신축해 영남루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후 임진왜란 등의 전란 때문에 소실·중건을 거듭했고, 1884년 부사 이인재가 중건한 게 지금까지 전해져 온다. 현재의 모습은 정면 5칸, 측면 4칸의 2층 다락형으로 웅장한 기풍을 자랑한다.

이날 관광안내소에서는 문화관광해설사 최해화 씨가 관람객들을 맞았다. 최 씨는 "다른 누각들의 경우 대개 본 누각만 있다. 영남루는 본 누각 양쪽에 두 개의 소루를 거느린다. 좌측 능파각은 마당 쪽으로 들어와 있고 우측 침류각은 강변 쪽으로 물러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침류각은 본루보다 낮은 곳에 위치해 있다. 계단형인 층층각이 이 둘을 연결한다. 공중에서 보면 그 모습이 마치 바람개비와 흡사하다. 이는 태극의 일원상과도 닮아 우주의 원리인 음양의 조화를 나타낸다. 다른 어떤 누각에서도 볼 수 없는 영남루만의 특징"이라고 강조했다.

누각 위에서 내다 본 밀양강(밀양 사람들은 남천강이라고 부른다) 풍경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위를 올려다 봐도, 아래를 내려다 봐도 똑같은 푸른색이었다. '하늘의 파란색이 강에 비친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어 자꾸만 위아래를 번갈아 보았다. 솔솔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은 더위에 지친 가슴을 뻥 뚫리게 했다. 나른한 기분이 들어 사람들 사이에 드러눕고만 싶었다.

영남루 본루에는 당대를 대표하는 유명 문인들이 남긴 현판, 시가 많이 걸려 있다. 최 씨는 "이곳은 조선시대 밀양도호부의 객사 부속 건물이었다. 한양에서 부산 동래를 잇는 영남대로와 밀양강 수로가 지나는 교통의 요충지에 있다 보니 영남 일대를 오가는 관찰사, 일본을 왕래하던 사신들이 자주 찾아왔다. 그들이 많은 글들을 남겼다"고 설명했다. 영남루를 지키는 용문, 귀문 등의 문양도 누각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 단군과 역대 왕조 시조 위패를 모신 천진궁.

누각 맞은편에는 경남 유형문화재 제117호 천진궁이 있다. 천진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지붕 건물이다. 안에는 단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1665년 건립된 이 건물은 원래 역대 왕조 시조의 위패를 모시는 공진관의 부속 건물로 사용했다. 1722년부터 손님들이 머무는 객사의 기능을 함께 담당하게 됐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헌병대가 이곳을 감옥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해마다 음력 3월 15일에는 어천대제를, 음력 10월 3일에는 개천대제를 봉행한다.

관광안내소 옆으로 조그만 길이 나 있다. 그 길을 따라가면 대나무 숲이 멋진 계단길이 보인다. 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우측에 경남 문화재자료 제26호 아랑각이 나타났다. "띠링, 띠링" 곱고 맑은 풍경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아랑각에는 조선 명종(1545~1567) 때 죽음으로 순결을 지켰다는 유명한 아랑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전설의 내용은 이러하다. 아랑(본명 윤동옥)은 당시 밀양부사의 딸이었다. 그는 어느 날 유모를 따라 영남루에 달 구경을 갔다. 관청에서 잔심부름을 하던 통인이 아랑을 겁탈하려 했고 아랑은 이에 항거하다 죽었다. 이후 밀양에 오는 신임 부사마다 부임 첫 날 죽는 일이 발생했다. 그러던 중 이상사라는 사람이 밀양 부사로 왔고 아랑의 원혼에게서 억울한 사연을 듣게 된다. 부사가 그의 원한을 풀어주자 원혼이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의 아랑각은 1965년 밀양시의 보조금에 주민들과 출향인사들이 모은 성금을 더해 중건했다. 아랑의 영정은 1972년 이곳을 찾은 육영수 여사의 의뢰를 받은 김은호 화백이 제작했다. 현판은 조선 후기의 명필 하동주 씨가 썼다. 마침 어르신 관람객들이 아랑각을 찾았다. 그들은 안내 표지판에 적힌 전설을 읽으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 '아랑의 전설'이 깃들어 있는 아랑각.

영남루는 현재 우리나라 보물 제147호다. 1948년 국보로 지정됐다가 1962년 현행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보물 제147호로 변경됐다. 밀양시는 최근 영남루의 국보 승격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염원하는 플래카드가 영남루 경내 곳곳에 걸려 있다.

최해화 씨는 "영남루는 다시 꼭 국보로 지정돼야 한다. 국보는 해당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을 말한다. 영남루는 조선시대 후기의 대표적인 목조 건물이다. 본루 양 옆의 소루, 층층각 등 그만이 갖는 독특한 특징도 갖추고 있다. 건물이 지닌 역사성 또한 깊다. 꼭 국보가 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밀양= 김해뉴스 /이경민 기자 min@


▶밀양 영남루 /경남 밀양시 중앙로 324. 가는 방법 = 김해여객터미널 승차, 밀양시외버스터미널 하차. 밀양역 방면 버스타고 영남루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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