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하는 많은 일과 물건들이 잊혀져 간다. 그 중 하나가 '수제 인장'이다. 도장을 팔 때도 컴퓨터로 활자체를 선택하고 기계로 파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도장을 찍지 않고 사인으로 대체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사인만으로 통장도 만들고, 신용카드도 발급 받는다. 일일이 도장을 찍는 일에서 벗어난 우리는 정녕 자유로워진 것일까. 혹시 그만큼 쉽게 결정하고 가벼워진 것은 아닐까.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손으로 도장을 판 김치권(58) 씨를 만났다. 동상동 1035번지에 위치한 '보인당'에서 김 씨가 정성들여 글자를 쓰고 조각도로 파낸 한 사람의 증명, 기관과 단체의 증명을 보았다.

▲ 한국·일본·중국의 인장을 찍은 '인본'을 펼쳐놓고 특징을 설명하는 김치권 씨.  박정훈 객원기자 punglyu@hanmail.net

김 씨는 맏형 김수권(74·서울) 씨가 김해 안동에서 도장도 파고 사진도 찍는 가게를 열면서 김해에 정착했다. 집을 짓는 대목수인 부친의 영향을 이어받았는지 형제들이 모두 손재주가 좋았다고 한다. 9남매 중 여덟째로 태어난 김 씨는 형에게서 "도장일 한 번 배워 봐라"는 말을 여러 차례 들었고, 형의 어깨 너머로 '저렇게 파는 거구나' 곁눈질을 했다.
 
맏형 어깨너머로 일하는 법 보다가
유명했던 '백 선생'에게 기술 배워 하루 400개 나무도장 판 적도

▲ 사방 1.5㎝의 도장면에 4개의 글자를 새기는 김치권 씨의 손길이 세심하다.
어느 날 형이 일보러 나간 사이 아가씨 한 명이 도장을 파러 왔다. "지금은 도장 파는 사람이 없고, 나는 한 번도 도장을 파 본 적이 없으니 안 된다"고 했지만 아가씨는 막무가내였다. "한일합섬 그만 두고 퇴직금을 받아가야 하는데 도장이 없으면 큰일난다"는 것이었다. 글자가 이상하게 나와도 괜찮다는 확답을 받고서야 김 씨는 조각도를 잡았다. 완성된 도장을 받아든 아가씨는 만족한 얼굴로 돈을 냈다. 처음 판 도장으로 처음 돈을 벌었던 그 때, 김 씨는 열여섯이었다. 그 후로 지금까지 손으로 도장을 파고 있다.
 
김 씨는 형과, 당시 김해는 물론 전국적으로도 유명했다는 백 선생님(김 씨는 세월이 너무 지나 성함을 기억할 수 없다며 안타까워 했다)과, 여러 인장 전문가들에게서 기술을 배웠다. 사람에 따라 글씨체가 다르니 많이 배워야 했고, 공부도 했다. 해서, 행서, 초서, 예서, 전서, 고인본 등 글씨체는 물론 한자도 익혀야 했다. 김 씨는 국가 인장 자격기능사(1985년 취득)이며, 국가공인 한자 1급 자격증(2004년 취득) 소지자이다. 한자 1급 자격증은 3천500자의 한자를 읽고 쓸 수 있다는 말이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도장을 팠는지 물었다. "그걸 어떻게 다 기억해요. 엄청나게 팠지요." 하루에 400개의 나무도장을 판 적도 있다. 현 삼계동 일원에 있었던 김해육군공병학교에서 600개의 도장을 주문해 온 일이 있었다. 다음날까지 600개를 파 달라는 주문을 받고 일을 시작해 하루 종일 400개를 팠다.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밤을 지새고 아침까지 나머지 200개를 다 파서 보냈다. 그 당시 공병학교에 복무했던 장병들은 모두 김 씨가 판 도장을 자신의 이름 옆에 찍었다. 월급 계산을 앞 둔 건설회사에서 직원들의 도장을 한꺼번에 주문하는 일도 여러 번 있었다.
 
80년대에는 도장 파러 오는 손님들도 많았다. 주문이 밀리기도 하고, 하루 종일 도장을 파고 나면 수저를 잡기도 힘들었다. 그 바빴던 시절이 지금은 추억이 되어 버렸다.
 
김 씨가 예전에 팠던 도장을 일일이 찍어놓은 공책을 펼쳐보였다. 인감으로 쓰이는 개인 도장에서 회사인이나 단체인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그 사이로 업무용 결재란을 구분한 고무인, 회사소개와 가게안내용 고무인도 보였다. "예전에는 고무인도 전부 손으로 팠지요." 회사명, 주소, 전화번호가 선명하게 보이는 고무인들을 넘겨보는 것이 마치 한 세대 전 김해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듯했다. 한자도 한글도 가지런하고 멋스러웠다. "필체 나쁜 사람은 도장 못 팠어요"라는 김 씨는 컴퓨터로 단 몇 분 만에 도장을 파내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인장 이야기를 듣다 보니, 여태까지 기계로 판 뿔도장을 가지고 있던 기자도 손으로 판 인장을 가지고 싶었다. 김 씨는 도장을 어떤 용도로 쓸 건지 물어보고, 글 쓰는 사람이라면 이런 건 어떠냐며 사각형 벽조목을 보여주었다. 글씨체는 전서체로 정했다.
 
컴퓨터로 도장 만드는 시대이지만
손때 묻은 조각도로 만들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작품' 고집

김 씨는 사포로 먼저 글자를 새길 면을 다듬었다. 몇 번 씩 면을 들여다보면서. 다음에는 붉은 먹을 물에 약간 풀어 새김면에 칠했다. 글자를 새길 면을 분할하고 '박현주인(朴賢珠印)'을 샤프펜슬의 가는 심으로 거꾸로 썼다. 새겨야 할 글씨가 초서나 해서체라면 세필붓으로 쓴다. 조각도를 들어 테두리부터 파기 시작했다. 국가 인장 자격시험에서는 0.5㎜ 깊이 규정이라며, 실력이 없는 사람이 깊이 파면 무너진다고 일러준다. 사방 1.5㎝의 작은 면 안에 4개의 글자를 파는 동안 5개의 조각도가 쓰였다. 도장 새김면과, 조각도를 움직이는 섬세한 손길을 전등불빛이 비추었다. 아주 얇고 가벼운, 먼지처럼 보이는 벽조목의 작은 조각들이 불빛 아래서 톡톡 튀어나와 작업대 위로 내려앉았다. 칫솔로 훑어내고 다시 파고, 수없이 되풀이했다.
 
"크게 다친 적은 없지만, 손가락 여기저기 작은 상처들이 있어요. 정신을 집중해야 해요." 작업에 열중하는 김 씨는 그 눈길만으로도 글자를 새길 수 있을 것 같았다.
 
▲ 수많은 도장을 파온 손때가 묻은 조각도(위)와 손으로 직접 팠던 고무인 도장을 찍은 견본.
작업을 하는 사이 김 씨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여름에는 습기가 많아 나무가 뻑뻑해서 작업하기 힘들어요. 겨울에는 반대로 건조해서 나무가 버석거리죠. 예쁜 글씨체 인장을 가지고 싶으면 상아 수제 인장이 좋아요." 인장의 재료가 계절 따라 받는 영향에 대한 이야기. "성경에도 인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인장의 역사는 오래되었습니다." 성경 창세기에 나온 아브라함의 인장 이야기. "일본의 인장은 아주 섬세한 미적 감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국은 무게 있고 강한 느낌이죠, 한국은 섬세하면서도 무게 있는 느낌입니다." 나라별 인장의 특성이다. 김 씨의 이야기는 동서고금의 다양한 주제로 오가며 듣는 사람을 빠져들게 했다. 한참 이야기하다가 "작업 끝나기를 기다리는 손님들이 지루해 할 것 같아 제가 읽었던 책 내용이나 아는 이야기를 들려드리죠. 함께 토론하기도 하구요"라고 말한다. 김 씨의 독서력은 동서양에 고루 걸쳐 있어 기다리는 시간이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김 씨는 홈페이지도 직접 만들었다. '보인당'이라는 옥호는 사용하지 못했다. 이미 등록된 한 인장업체가 있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는 '행인당'이라는 이름의 홈페이지가 운영 중이다. 서울의 유명 작명가를 비롯해 전국의 네티즌이 가끔 수작업 인장을 주문해 온다. 한글 도메인 'www.인장수조각.kr'도 등록했다. 그 모든 걸 직접 했다. 그의 작업실 한 켠에는 매킨토시 컴퓨터가 자리 잡고 있다. 수작업으로 도장을 파는 일부터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일과 매킨토시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까지, 김 씨는 활자를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는가를 보여주는 산 증인이다.
 
그의 손끝에서 도장이 탄생했다. 깨끗하게 마무리되었는지 살펴보고, 찍어보고, 조각도로 다시 다듬는 과정을 되풀이하는 동안 기자는 빨리 도장이 가지고 싶어 손을 몇 번이고 내밀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한 사람의 신용과 증명이 새겨진 수제 인장이다.
 


■ Tip 인장의 기원

원시농경사회에서부터 사용

인장은 BC 5000년대 후반 메소포타미아의 원시농경사회에서 발명된 것이 그 시초라 한다. 돌·점토·조개껍데기·뼈·금속 등의 재료에 그림이나 문자 등을 새겨 천 또는 점토 등에 찍었다. 찍는 목적은 소유물을 표시하는 외에 주술적인 면도 있었다. 우리는 신라시대에 국왕이 바뀔 때 국새를 손수 전한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이 있어 그 이전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에는 인부랑(印符郞)이라는 벼슬이 있어 나라의 인장을 맡아보았다는 기록이 있고, 개인들도 인장을 소지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에 사용하던 청자로 만든 도제인장과 청동인장 등이 전해진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인장제도는 더욱 정비되어 1392년부터 '상서원'을 두어 새보(璽寶)와 부패(符牌) 등을 관장하게 하였다.
 현대의 인장은 국새를 비롯하여 대통령의 직인, 국무총리 및 각 부처 장관의 직인, 각 관청인 등의 관인·공인 이외에 각 단체·회사 등의 공인, 개인의 사인 등이 있다. 사인에는 실인·인인·막도장 등이 있으며, 실인은 인감을 신고 등록하고 필요에 따라 인감증명서를 요구하여 사용하는 것으로 법률상의 효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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