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동화 표제작 그림책으로
고단한 현실에 빛나는 희망 전달

 

<강아지똥>의 저자 권정생이 그려내는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힘없고 약하다. 하지만, 그는 버림받고 짓밟히는 존재, 병들고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존재,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존재들에게 따스한 눈길을 준다. <사과나무밭 달님>에서도 그 따스함이 느껴진다.

이 책은 가장 보잘 것 없는 존재가 가장 귀하다는 권정생의 작품 세계를 아름답고 서정적인 필치로 그린 그림책이다. 책을 읽다 보면 가슴이 아리다. 하지만 책은 전쟁, 가난, 질병과 같은 고단한 현실 속에서도 환하게 빛나는 희망, 기쁨,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1978년 출간된 동화집 <사과나무밭 달님>의 표제작인 '사과나무밭 달님'이 그림책으로 새롭게 나왔다.

필준이 모자는 강가 과수원지기로 가난하게 살고 있다. 필준이 어머니 안강댁은 '얼빠진' 할머니다. 떨어진 단추도 제대로 꿰매지 못하고, 베개를 업고 소꿉놀이를 하는가 하면 '고기가 먹고 싶다, 장 구경을 가고 싶다' 하며 아들을 졸라 댄다. 안강댁의 외아들 필준이는 병든 어머니 때문에 학교도 그만두고 이 집, 저 집에 밥을 얻어먹으러 다녔다. 열두 살 때부터는 머슴살이를 해 왔지만 여태 집 한 칸 마련할 수 없는 신세다.

필준이는 마흔이 다 되도록 장가도 못 가고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지만 병든 어머니를 탓하거나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지 않는다. 작고 허름한 외딴집에서나마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 더없이 행복하다. 필준이의 모습에서, 이런 효자가 또 있을까 싶다. 또한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인간다움과 희망을 이야기한 작가 권정생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버림받고 짓밟히는 존재, 병들고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존재,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존재들에게 눈길을 주는 작가 권정생의 마음까지도.

화가 윤미숙은 글로는 표현되지 않아 안강댁이 미처 말을 하지 못한 이야기를 그림을 통해 들어 준다. 특히 작은 아기를 품에 꼭 안고 있는 안강댁의 표정, 전쟁 통에 아기를 업고서 피란 행렬을 거슬러 가는 안강댁의 모습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화가는 가장 불쌍하고 소외된 사람이야말로 바로 하느님이라 믿은 권정생의 사상을 작품 속에 오롯이 담기 위해 노란색을 상징적으로 사용했다. 이를테면 말갛고 순진한 노란색은 안강댁의 저고리, 사과나무꽃, 달님으로 이어진다. 결국 늙고 병든 안강댁이 희망과 기쁨을 전하는 달님과 같은 의미로 읽히는 대목이다.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동화가 그림책으로 피어나 문학의 감동을 확장한다. 길가에 굴러다니는 강아지 똥도 거름이 되어 꽃을 피운다고 믿는 작가. 그의 생각이 이 동화에서도 또 한 번 드러난다. 
 
부산일보 제공 책(book)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