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민정 씨가 자신이 만든 한복의 옷고름을 매며 옷매무새를 매만지고 있다. 사진/박정훈 객원기자 punglyu@hanmail.net

집안에 바느질 솜씨가 뛰어난 어른이 계셨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아버지가 손재주가 많은 분이었다. 그뿐이지만, 주민정(43) 씨는 옷 만드는 일에 욕심이 많았다. 주 씨는 대학에서 의류학과를 전공하고, 일본에서도 의류 디자인을 전공했다. 공부를 마친 뒤 한국에 돌아와서는 성균관대 궁중복식연구소에서 한복을 본격적으로 배웠다. 석주선(1911∼1996. 전통복식학자·민속학자) 선생에게서 한복을 배울 때, "전승공예를 모르고서는 제대로 된 한복을 만들 수 없다"는 가르침을 받았다. 한복과 관련된 것을 모두 배우고 싶어 천염염색과 규방공예 등 전승공예도 배웠다. 추석을 맞아 '줌인김해'는 한복만들기를 널리 알리고 있는 김해복식디자인학원 원장 주민정 씨를 찾았다.


"한복을 제대로 만들고 싶었다"는 주 씨는, 한복을 위해 배움을 멈추지 않았다. 서울, 경주, 양산 등 한복과 관련해 배울 것이 있다면 가리지 않고 발품을 팔았다. 주 씨가 한복과 관련해 가르침을 받은 스승은 한복 관련분야에서는 대한민국 최고의 일인자들이었다. 고 석주선 선생은 한국복식사의 기틀을 세운 복식연구가로 전통의상 수집과 연구에 평생을 바친, 우리나라 전통 한복연구의 일인자이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 11호 침선장 박선영(본명 박광훈) 씨는 개화사상가 박영효 집안의 증손녀 뻘로, 할머니·어머니로부터 양반가의 전통 복식을 익혔고 한평생 바느질하며 산 분이다. 구혜자 씨는 중요무형문화재 제89호 침선장 기능보유자이고, 김혜자 씨는 중요무형문화재 107호 누비장이다. 이 분들 말고도 주 씨에게는 많은 스승이 있었다.
 


주 씨가 가지고 있는 자격증도 여러 종류이다. 교사·디자인 산업기사·양장기능사·패턴사· 봉재사· 한복기능사 자격증이 있다. 민간자격증으로 규방공예, 천연염색 분야까지 따냈다. 쪽 염색은 통도사 서운암 성파스님을 찾아가 배웠다.
 
그러고 보니 '줌인김해'에 주 씨를 소개해 달라고 제보하던 독자들이 '뭔가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귀띔해 주었던 것이 떠올랐다. 뭘 그렇게 많이 배우느냐고 물었더니 "아직도 더 배워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한복을 제대로 만드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고 말한다. "배우는 것도 은근히 중독되는 것 같다"는 주 씨는 명리학도 15년 간 배웠다.
 
주 씨는 90년대 중반 무렵 김해로 이사를 해 한복 강의를 시작했다. 인근 도시의 백화점 문화센터부터 김해여성복지회관, 김해시청 생활개선센터 등에서 배운 것을 다시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도 만났다. 한때는 바느질이 힘들어 한복 만드는 일을 그만둘까 생각도 했지만 사람들이 계속 주 씨를 찾았다.
 
▲ 오방장 두루마기, 돌 전복, 색동저고리를 응용하여 어린이를 위해 만든 망토형 옷. 전통과 현대의 만남이다.

김해지역 국악 예술인들의 옷도 많이 만들었다. 이전에는 대구까지 가서 옷을 맞춰야 했단다. 무형문화재 14호 강산제 심청가 이수자 홍승자 씨(본지 6월 29일자 '줌인김해')와의 인연도 그렇게 이어졌다. 홍 씨의 딸 장지현 양은 주 씨에게 한복을 배우는 제자가 되었다.
 
올해 3월에는 국비지원을 받는 노동부 지정 직업능력개발교육원인 '김해복식디자인학원'을 열었다. 화목동 칠산초등학교 앞에 있는 학원은 한복을 정식으로 배울 수 있는 곳이다. 주 씨는 "정식과정으로 배우는 학원은 김해에서도 유일하지만 부산에도 없다. 자부심을 가지고 배울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기자가 학원을 찾았을 때도 옷감을 펼쳐놓고 패턴을 뜨고 바느질을 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모본단을 제일 좋아한다는 주 씨는 "천연염색을 하면 그 빛깔이 정말 오묘하고 신비롭다"며 한복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복도 유행을 탄다. 유행은 주로 TV의 사극드라마가 이끌어 간다. 배우 하지원 씨가 열연한 KBS 드라마 '황진이'(윤선주 극본)가 성공한 이후부터 한복 저고리의 소매가 일자형으로 좁아졌다. 깃이 넓어지면서 상대적으로 고름이 좁아지고 짧아졌다. 그래서 저고리 소매의 아름다운 선이 사라져 버렸다면서 아쉬워한다.
 
▲ 주민정 씨가 옷감 위에 패턴을 놓고 마름질 준비를 하고 있다.

사극 드라마의 한복들 중 주 씨가 가장 주목해 본 것은 최근에 종영한 MBC 드라마 '짝패'(김운경 극본)이다. "그 드라마에서 한지혜 씨가 입고 나왔던 한복들이 전통 한복 복식에 있었던 옷들을 재현한 것이다"는 주 씨는 "전통복식이 아니라 현대적 디자인으로 만든 것이라 오해하는 분들이 있다"고 설명해 준다. 사극에서 남성출연자들이 입고 있는 소매가 없는 옷이 조선시대 관복과 군복에 입은 소매 없는 옷인 '답호'이다. 배색을 맞추어 입었을 때 세련되고 강인한 느낌을 주던 답호는 우리 선조들의 미적 감각이었던 것이다.
 
학원 한 쪽에 한복을 기본으로 한 망토 형태의 옷들이 눈에 띄었다. 오방장 두루마기, 돌전복, 색동저고리를 응용한 것으로 어린이들을 위한 옷이다. 한복을 제대로 입기 힘든 나이의 아기들도 저 옷 하나를 걸치면 명절빔이 되겠다 하는 생각에, 어린 조카가 있다면 당장 입혀보고 싶을 정도였다.
 
주 씨는 "양장에 한복의 선만 하나 둘러도 한복의 멋을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복이 세계에 많이 알려지긴 했지만, 그 멋스러운 한복의 미를 양장에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차이나칼라라는 말만 들어도 중국 전통의상이 바로 연상되죠. 전 세계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한복용어가 필요해요."
 
세계 패션무대에서 선보이는 의상 중 중국의 '차이나 칼라'와 '기모노 슬리브'는 흔히 볼 수 있다. 중국과 일본의 전통의상의 형태가 현대 세계 패션에 미치는 영향이다. '기모노 슬리브'는 일본의 기모노 소매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데서 유래된 것으로, 소매에 붙임선이 없고 몸판에서 연결시켜 재단한 소매를 말한다. 일명 '가오리 소매'이다. 언제부터인가 일본이 우리의 쪽빛 용어도 빼앗아 가버렸다. "쪽빛을 정말 좋아하는데, 일본이 그 쪽빛을 '니혼 블루'라고 부르며 세계적으로 알리고 있다"며 주 씨는 못내 아쉬워한다.
 
▲ 골무, 자, 가위…. 규방칠우는 예나 지금이나 옷 짓는데는 꼭 필요하다.

한복을 입었던 시대에 태어나 가족의 옷을 직접 만들어야 했던 옛 여인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이야기 끝에 주 씨는 "손누비에 비하면 그냥 한복을 짓는 건 쉬운 편이에요. 손누비는 정말 공이 많이 들어갑니다"라고 설명한다. 주 씨는 올해 '대한민국 황실공예전'에서 손누비 작품으로 입선에 올랐다. 색동천 옷에 0.5㎝ 간격으로 촘촘하게 누빔질을 5개월 간 했다. 바쁜 중에 두 개의 작품을 내었는데 장려상을 받은 또 하나의 작품은 '자적단령'이다. 단령은 깃을 넓게 만든 포로, 조선시대 관복 중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의복이다.
 
어디에서는 양장보다는 한복에 먼저 눈길이 간다는 주 씨는 자신이 만든 옷을 매만지며 고름을 매었다. 고름에는 긴 고름과 짧은 고름이 있다. 긴 고름으로 고를 만들어 짧은 고름으로 만든 원 안으로 넣고 알맞게 잡아당긴다. 고의 모양을 단정하게 정리하고 두 가닥의 고름을 합쳐 모양을 가다듬자 두 가닥의 고름이 거의 같은 길이가 되었다. 주 씨의 손길이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지은 추석빔 한 벌 선물 받은 기분을 들게 한다. 마지막까지 단아한 매무새를 만드는 마음을 가지게 하는 것이 우리 한복의 아름다움이다.
 


Tip>>노동부 인정 직업능력교육개발원 '김해복식디자인학원'
노동부 인정 직업능력교육개발원인 김해복식디자인학원에서는 전액 국비 지원으로 한복을 만드는 과정을 배울 수 있다. 20명 정원의 수강생으로 한정되어 있지만, 강의는 계속 되니 관심 있는 독자들은 학원에 문의·상담하면 된다. 현재도 수시로 문의전화가 오고 한복을 배우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다. 주민정 원장은 추석 후 17일, 24일에 무료강좌를 개최한다. 20명 선착순으로 접수를 받았는데, 이미 절반 너머 접수되어 수업시간을 조정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김해복식디자인학원/김해시 화목동 1066-9. 전화 055)324-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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