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조영, 천추태후, 선덕여왕, 김수로, 근초고왕, 짝패, 무사 백동수, 계백, 평양성, 조선 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 이들의 공통점은? 사극드라마, 그리고 사극영화이다. 여기에 하나 더. 김해 삼계동 '검파람 검도관'의 김준오(37) 관장이 승마와 무술 부분의 교관을 맡아 활약했던 드라마이고 영화이다. 시청자들은 말을 타고 바람을 가르며 달리거나, 달빛이라도 벨 것 같은 검기를 내뿜는 장면을 볼 때마다 배우들에게 감탄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장면들을 만들어내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동작 하나 하나를 가르치고 교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김준오 씨가 그렇다.

경남 하동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난 김 씨는 "형과 누나들은 전부 모범생이었는데, 전 좀 별났어요"라며 자신을 소개한다. 초등학교 때 태권도를 했고 중학교 때는 육상, 배드민턴도 했다. 몸을 움직이는 것을 유달리 좋아하는 조카를 본 외삼촌이 죽도를 권유한 것이 김 씨가 무인의 길을 걷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죽도 사범이었던 외삼촌과 생활하던 시절에는 체육관 바닥을 청소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무협지의 주인공들처럼 말이다.
 
고등학교 때까지 죽도를 잡았던 김 씨는 용인대 동양무예학과에 검도 전공으로 입학했다. 운동하는 학생들이 모인 대학은 선후배간의 예절이나 단체생활의 기강이 엄격했다. 비교적 자유롭게 운동을 하면서 즐겨 온 김 씨는 그 생활이 맞지 않아 군대에 자원입대했다. 해병대 772기. "힘든 과정을 견디는 것이 좋아요. 스스로 제 몸을 혹사시키고 땀 흘리고 싶었는지도 모르지요."
 

몸 동작 좋은 조카 본 외삼촌 죽도 권유하면서 무인의 길
전통무예 '경당' '무예도보통지' 본격 수련 시작하게 된 계기

제대 후 김 씨는 검도와 관련 없는 일도 해보았다. 컴퓨터 관련 업체에서도 일하고 건축 관련 일도 했다. 그러나 한번 잡아보았던 칼은 끝내 그를 다시 붙잡았다. 질긴 인연, 아니 숙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 전통무예의 맥을 이어가는 '경당'과 '무예도보통지'를 접하며 김 씨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본격 수련을 시작했다.
 

진검을 잡았다. 배울 것이 많았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칼집에서 칼을 뽑고 집어넣는 발도술과 납도술부터. '베기'를 수련 할 때는 주위 사람들이 미쳤다고 말할 정도였다. 정말, 미친 듯이, 베기에 빠져들었다. 칼을 휘두르는 것을 아무데서나 할 수는 없는 일. 고향 하동의 대밭에서 수없이 검을 휘둘렀다. 한번 날이 번쩍일 때마다 짚단이 수도 없이 베어졌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단단히 미쳐있었단다. 이 역시 무협지의 한 장면이다. 타고난 숙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리저리 피해보지만, 마침내 검을 쥐고 수없이 수련하는 강호의 무사가 떠올랐다.
 
승마·활쏘기 등 마상무예 연마
동료들이 인터넷 올린 동영상에

KBS '천추태후' 제작팀 연락 이후
각 방송사 드라마 승마교관

김 씨가 다음에 빠져든 것은 말이다. 승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심과 기본 자세를 잡는 것.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고, 기본자세가 되면 안장이 없어도 어떤 말이든 탈 수 있단다. 밀양의 한국무예촌을 7년 여 오가며 말을 타면서 김 씨는 마상무예에 마음을 빼앗겼다. 달리는 말 위에서 과녁을 명중시키는 활쏘기, 적을 쓰러뜨리는 베기, 얼마나 근사한가.
 
김 씨는 마상무예를 위해 다시 활쏘기를 정식으로 배웠다. 대충 흉내내는 건 김 씨 사전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한림면의 활터인 '보화정'에서 145m의 과녁을 향해 열심히 활을 쏘았다. 말을 탄 채 장애물을 통과하거나, 공을 치는 '격구', 달리는 말 위에서 뛰어내리고 올라타는 '마상제' 등 마상무예의 영역은 많다. 김 씨는 마상무예를 지금도 배우고 있다.  
 
무릇 고수가 되려면 강호 각 문파의 비법을 수련해야 하는 법. 김 씨는 검에서 활, 말을 두루 정식으로 익혔다. 한 분야를 정식으로 수련한 뒤 다른 것을 익히는 과정을 되풀이했다. "이제 그만 하산하거라" 말해주는 무림의 절대고수들처럼, 김 씨가 걸어온 무예의 길에는 많은 스승이 있었다.
 
한국무예촌에서 김 씨가 말을 타고 달리면서 활을 쏠 때, 김 씨도 모르게 동료들이 그 장면을 촬영했다. 유투브 동영상이 인터넷에서 유명세를 탔던가보다. 우연히 동영상을 본 KBS 드라마 '천추태후' 제작팀에서 연락이 왔다. "정말 달리는 말 위에서 활을 쏠 수 있느냐"는 내용이었다. 화면에서 그럴 듯하게 보여지던 많은 장면들이 카메라 촬영기법으로 만들어지는데, 실제로 자유자재로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 일이 인연이 되어 김 씨는 KBS, MBC, SBS 사극드라마의 승마 교관이 되었다. 여러 사극에 출연하며 사람 못지 않게 카메라에 단련된 말 위에서 그의 무예는 빛을 보았다.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배우들을 지켜 본 김 씨에게 말을 가장 잘 타는 배우가 누구냐고 물었다. 송일국 씨를 먼저 꼽는다.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 역할을 한 송 씨는, 활쏘기도 정식으로 배워 자세 자체가 다른 배우들과는 비교가 안 된다고. 또 한 사람은 최수종 씨. 최수종이 누구인가. 태조 왕건이 되어 고려도 건국하고, 대조영을 열연하며 발해도 건국하고, 해상왕 장보고로 활약하면서 한반도의 해상권도 장악했다. 굵직 굵직한 역사 인물을 열연한 그를 일러 '최수종이 한반도의 역사를 쓴다'는 말도 있었다. 사극에 워낙 많이 출연하다 보니 말 타는 자세는 일취월장이란다. '무사 백동수'에서 백동수 역을 맡은 지창욱 씨는 한 번에 휙 말에 올라탄단다. 앞으로 말을 잘 타는 배우가 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무술이 생활이며 직업인 김 씨는 세 아들을 두었다. 화랑(11), 찬(10), 한(6). 이름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아빠를 따라 다니며 아이들도 말을 타거나 검도를 익히고 있다. 둘째 찬이는 이미 8살 때 말에서 떨어져 다친 경험까지 가지고 있다. 사고를 겪고 나면 말 위에 올라타기가 쉽지 않은데 의연하게 극복해 다시 말을 탄다. 세 아이 중에서 아빠를 가장 많이 닮아 무술에서 재능을 보이는 아이는 막내 한이다. 이제 여섯 살이지만, 아빠가 형들에게 설명하는 걸 옆에서 듣고 아빠가 하는 걸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곧잘 따라한다.
 
삼계동에 검도관 열고 후배 양성, 화랑·찬·한 세 아들도 수련 심취

전통무예를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고 말하는 김 씨는 검도관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전통무예단 혼'을 이끌며 장유에서 검도관을 운영하다가 올해 9월 초 삼계동으로 자리를 옮겨 '검파람 검도관'을 열었다. 전통무예는 민족혼이며 문화라는 것이 김 씨의 소신이다. 그래서 검도자세만큼 인성교육에 중점을 준다. 요즘 아이들의 버릇없는 말투부터 교정하고, 즐겁게 운동할 수 있도록 이끌어가고 있다. 생활체육문화가 확산되면서 체육관의 종류도, 수도 많다. 관장이 제대로 알아야 잘 가르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김 씨는 현재도 계속 수련을 멈추지 않고 있다. 드라마의 무술 승마교관, 새로 문을 연 검도관 일로 바쁘지만 그 바쁜 일정조차 그에겐 활력소인 것 같았다.
 
참, 기사 첫머리의 사극들 뒤에 추가할 리스트가 또 있다. 10월 초 방영예정인 SBS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그 드라마의 화면 뒤에도 우리 전통무예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김준오 씨가 있다.


■ Tip '무예도보통지'란

정조가 제작을 명한 실전 훈련 종합무예서

한국문화 콘텐츠로 전통무예의 정신이 세계로 뻗어나갈 날이 오리라 믿는 김준 오씨가 '무예도보통지'를 펼쳐보였다. 조선의 22대왕 정조가 직접 편찬의 방향을 잡은 후 규장각 검서관 이덕무·박제가와 장용영 장교 백동수 등에게 명령하여 작업하게 하였으며 1790년(정조 14)에 간행되었다. 그래서 책의 표지에는 '정조명 무예도보통지'라 인쇄되어 있다. 목판본 4권4책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종합무예서이다. 당시의 무예서들이 전략과 전술 등 이론을 위주로 한 것들인 데 비하여, 24기의 전투기술을 중심으로 한 실전훈련서로서, 당시의 무예와 병기에 관하여 종합적인 조감을 할 수 있는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또한 본문 외 당시의 역사적·사회적 문제를 종합적으로 조감할 수 있는 각종 자료가 모아져 있어 그 진가를 더하고 있다. 각 항목마다 병기와 개별동작 및 전체 움직임에 대해 각기 매우 사실적인 그림과 해설을 붙였다. 언해본도 비슷한 시기에 간행되었는데 개별동작의 해설부분을 번역하여 누구나 그 내용을 암기하고 그림을 보며 전투기술을 익힐 수 있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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