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시장·고갈비 골목·하마정
역사와 추억 담은 르포 산문집
특유의 맛깔스러운 글솜씨로
상인·지역 문인의 인생 풀어내



천생 '이야기꾼'으로 꼽히며 부산 문단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는 이상섭 소설가가 소설집 <챔피언> 이후 3년 여 만에 독자를 찾아왔다. 부산 곳곳을 직접 누비고 쓴 이른바 '이상섭 르포 산문집'이란 부제가 붙은 <을숙도, 갈대숲을 거닐다>이다.
 
이 작가는 지난 2010년 출간한 <굳세어라 국제시장>(도요)에서 부산일보에서 연재한 국제시장 1·2세대 상인 12명의 목소리에 7명의 삶을 보태고 부산 원도심 100년을 담은 사진 자료를 더해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생생하게 그려낸 바 있다. 이번 책은 당시 풀어냈던 국제시장의 범위를 좀 더 확대하는 동시에 오롯이 작가의 시선으로 부산의 광활한 시공을 훑어 내려간 2탄 격이다.
 
책은 크게 2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에선 자갈치와 국제시장, 다대포, 하마정, 화지공원, 을숙도 등 공간을 중심으로 이어진다. 자갈치와 국제시장 등은 누구에게나 널리 알려진 익숙한 장소지만 공간을 채우는 이야기는 낯설고도 새롭다. 이 작가의 폭넓은 식견과 맛깔스러운 글솜씨 덕분이다.
 
예컨대 '근대와 현대가 뒤엉킨 퓨전공간' 자갈치는 순식간에 조선 속 일본 땅으로 전락한 '한 권의 슬픈 역사책'으로 재탄생된다. 외국인에게도 이름난 국제시장은 또 어떠한가. 국제시장의 기원 격인 부평시장을 시작으로 깡통시장, 신창상가, 광복 중앙로, 중구로 지하쇼핑센터, 문구 거리, 만물의 거리, 조명의 거리, 창선동 먹자골목, 젊음의 거리, 고갈비 골목 등을 거닐며 시장에 얽힌 역사와 추억을 봇물처럼 쏟아낸다. 국제시장은 이 작가의 손끝을 거치며 '근현대사의 생생한 현장'이자 '노천 박물관'으로 거듭난다.
 
관광지로서 다소 덜 알려진 곳은 직접 방문하고 싶게끔 만든다. 부산사람에게도 다소 낯선 화지공원이 대표적이다. 화지공원의 배롱나무는 '후손의 지극정성이 만들어낸 걸작이며, 한권의 푸른 역사서'로 우리 곁을 찾는다.
 
'어머니의 품 속' 같은 을숙도를 두고 엄원태 시인의 시 '이월'과 요산 김정한 선생의 단편소설 '모래톱 이야기' 등을 떠올리던 이 작가는 '새들에게 기막힌 이상향'이 되는 갈대숲이 '처참하게 살해'된 현장이자 '전 국민의 희망이자 저항의 상징인 공간'으로 풀어내기도 한다. 탐방로 소개와 함께 '낙동강 하구에 철새를 부르고 을숙도를 살리는 일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부산문학을 살리는 길'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선 소설가로서 소명의식이 돋보인다.
 
2부는 사람이 중심이 된다. 국제시장 1세대 상인인 김진상 할아버지, 무려 51년간 칼을 잡아 온 동래일신초밥 김재웅 대표의 삶이 깊은 여운을 주며 펼쳐진다. 책 말미엔 '백자처럼 은은한 소설적 무늬'를 지니며 향파와 요산의 계보를 잇는 소설가로 꼽히는 소설가 조갑상과 '정통 서정의 적자로 자임하며 시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밤하늘을 혼자만의 보법으로 걷는 달'과 같은 시인 최영철의 인생 여정도 담겼다. 지역에 깊이 뿌리내린 이들 문인들의 행보도 수차례 다시 읽게 만든다. 부산의 공간과 사람의 삶에 담긴 이 작가의 애정어린 시선은 겨울의 추위를 잊을 만큼 뜨겁고도 웅숭깊다. 김해뉴스

부산일보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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