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상동 '국보급한우국밥'의 가마솥에서 끓고 있는 쇠고기국. 갈비뼈로 국물을 우려내 시원하고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국보(國寶):1.나라의 보배/2.나라에서 지정하여 법률로 보호하는 문화재.'
국어사전에 나오는 국보의 정의다. 파생된 어휘로 '국보적'이라는 단어가 있다. '나라의 보배가 될 만한. 또는 그런 것'이라 정의한다. 김해시 서상동에는 '국보적'에 상응하는, '국보급'이라는 수식어를 단 배짱 좋은 식당이 있다. 그 이름도 거창한 '국보급한우국밥'이다. 간판에만 그렇게 강조했으려니 했는데, 알고보니 사업자등록증에도 국보급한우국밥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한국의 식문화에서 한우라는 재료와 국밥이라는 음식은 충분히 국보급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일개 식당이 국보급이라는 상호를 떡하니 달아 놓은 것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과하다 싶었다.


속는셈 치고 취재를 감행했다. 우선 이 거창한 상호의 내력부터 물었다. 안주인 김영학(52) 씨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장사를 할라꼬 국밥을 끼맀더니 맛이 기가막히데예. 그래서 '야~ 이거 맛이 국보급'이다 라꼬 했지예." 사실 별 기대도 안 했지만, 그 스토리란 것이 싱겁기 그지없다. 보통 이런 경우는 음식에 아주 자신 있거나, 지나치게 천진난만 하거나 둘 중 하나다. 전자라면 다행이지만, 후자라면 취재는 실패다. 시작부터 기대는커녕 걱정이 앞선다.
 
국보급한우국밥(이하 국보급)의 대표 메뉴는 '한우국밥'이다. 쇠고기국물에 고추가루를 풀어 얼큰하게 끓인, 경상도식 쇠고기국이다. 쇠고기국밥을 굳이 한우국밥이라고 표현한 것에서 느껴지듯이 '한우'를 유난히 강조한다. 계산대 위에는 축산물등급판정서와 포장지에 붙어 있던 제품확인서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죄다 한우다.
 

국물요리에 굳이 한우를 강조하는 이유는 올레인산 때문이다. 불포화지방산인 올레인산은 감칠맛을 낸다. 올레인산은 풀보다는 곡물 사료를 먹이고, 사육 기간이 길수록 많이 함유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호주와 미국 등 수입 쇠고기의 올레인산 함량이 25~30% 정도인데 반해, 한우는 48~50% 정도로 높다. 가정에서 모처럼 수입산 대신 한우를 사용해 국을 끓여보면 확실히 맛이 구수하고, '가격이 좀 비싸도 역시 한우야'라고 느끼는 것에는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셈이다.
 
국물요리는 어지간한 전문가가 아니고서야 맛만 봐서는 그 진위를 판별하기가 힘들다. 따라서 만드는 과정을 직접 확인할 필요가 있다. 국보급에서는 오전 8시부터 국을 끓이기 시작한다. 보통 쇠고기국은 소의 가슴살인 양지머리를 사용해 국물을 낸다. 그런데 국보급에서는 뼈와 살을 분리하는 발골 작업을 하고 남은 갈비뼈를 사용한다. 커다란 가마솥에서 끓이는 시간은 2시간30분 정도로 의외로 짧다. 더 오래 끓이면 국물이 탁해지고 뼈비린내가 나기 때문이란다. 국물이 완성되면 뼈는 건져내고 마늘·생강·고추가루·소금 등으로 양념을 하고 사태, 스지(쇠힘줄), 갈비살, 도가니 등을 아낌 없이 쏟아 붓는다. 다음으로 무, 콩나물, 대파를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넣는다. 이 또한 꽤 오래 끓일 줄 알았는데 고기가 익고 채소의 풋내가 가시는 정도에서 멈춘다. 뭔가 대단한 클라이막스를 기대하고 보던 영화가 갑자기 끝나 버리는 듯한 느낌이다.
 
대체 이렇게 간단하게 끓인 쇠고기국이 맛이 나기는 할까? 궁금함을 가눌 수 없어, 주인장의 허락도 구하지 않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마솥에서 국물 한 국자를 떴다. '…'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간 숱하게 많은 쇠고기국을 먹어 왔건만, 쇠고기국이 이렇게 개운한 맛인 줄은 미처 몰랐다. 복매운탕이나 대구탕 못지 않을 정도로 시원하다. 거기다 갈비뼈를 우려낸 국물을 사용한 탓에 특유의 풍미가 있다. 그 정체는 구수함이다. 사태, 스지, 갈비살 등이 씹히기라도 하면 구수함은 배가 된다. 개운하게 시작해 구수하게 마무리되는 쇠고기국이다. 조리 과정을 직접 확인했기에 비법이 뭐냐고 따로 물을 것도 없다. 갈비뼈를 우리는 동안 거품과 기름을 잘 걷어내고, 제때에 정해진 재료를 넣는 것이 전부다. 좋은 재료와 정성이 깃든 국물이라는 흔한 수식어 외에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다.
 
그런 기자가 애처로웠던지 고추가루가 든 통을 스윽 내민다. 고추가루를 한번 먹어 보라는 것이다. '아침 댓바람부터 고추가루라니…' 하면서도 한 줌 털어 넣었다. 칼칼하게 매운듯 하면서도 특유의 고추향이 돌고 개운하게 마무리된다. 슬쩍 단맛도 느껴진다. 경북 청송군에서 생산된 태양초로, 맑은 뼛국물에는 이 정도 고추가루가 아니면 맛이 뭉개져 버린다고 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경상도식 쇠고기국에서 고기만큼이나 중요한 재료가 고추가루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역시 우리 음식은 제 땅에서 난 식재료들끼리 만나야 진가를 발휘한다.
 
국보급에서 쇠고기국 만큼이나 힘주어 강조하는 또 하나의 메뉴가 곰탕이다. 소개에 앞서 우선 용어 정리부터 해보자. 흔히들 설렁탕은 뼈를 중심으로 끓인 것으로, 곰탕은 살코기나 내장을 중심으로 끓인 것으로 분류한다. 하지만 맛칼럼니스트 황교익 선생은 "실제로는 곰탕과 설렁탕은 구별하기 어렵다. 곰탕이든 설렁탕이든 국물을 내는 부위가 다양하여 넣고 빼고 하는 조합이 실로 복잡하기 때문이다. 또 여러 내장 부위와 쇠머리 등은 누린내가 있어 곰탕이든 설렁탕이든 넣지 않는 것이 최근 일반적인 조리법이다. 따라서 곰탕이든 설렁탕이든 '쇠뼈에 몇 가지 고기를 더하여 끓인 탕'이라 보는 것이 맞다"고 강조한다.
 
이 주장을 지역적인 관점에서 보면 더욱 명확해 진다. '쇠뼈와 고기를 고은 국물'이라는 의미로 곰국 혹은 곰탕이 일반적으로 사용되었을 뿐 설렁탕이 대중화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그래서 곰탕은 지역음식, 설렁탕은 서울음식이라는 관념이 강하다. 부산에서 2대째 40년 넘게 곰탕집을 운영하고 있는 주인장 역시 메뉴판에 설렁탕이 등장한 것은 1980년 이후의 일로 기억하고 있다. 심지어는 이런 경우도 더러 있다. 설렁탕과 곰탕이 나란히 있는 식당에서 둘의 차이가 뭐냐고 물으면 '설렁탕은 국수사리를 넣은 것, 곰탕은 국수사리를 넣지 않은 것'으로 구분할 정도다. 따라서 용어에 집착하기보다는 '쇠뼈와 고기를 고은 국물'이라는 본질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야 곰탕이라는 음식이 바로 보인다.
 
그런데 한가지 함정이 있다. 인간에게는 과거를 미화하고 아름다운 추억만 기억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를 '무드셀라증후군'이라고 한다. 음식을 대함에 있어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바로 '어머니가 해주시던 맛'에 대한 기억이다. 누구에게나 어머니의 음식은 소중한 기억이다. 하지만 그 기억 속에는 맛뿐만 아니라, 그 음식을 먹을 당시의 상황과 자식을 위하는 어머니의 사랑이 함께 녹아 있기 마련이다. 이러니 현재의 맛과 과거의 맛은 항상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설렁탕이나 곰탕에서 무드셀라증후군이 발휘되면 '뽀얀 빛깔과 진한 국물맛'이라는 환상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어머니가 끓여 주셨던 곰탕에서 '뽀얀'과 '진한'은 공존하기 어려운 요소다. 쇠뼈를 어지간히 고아서는 흰색에 가까운 뽀얀 국물을 내기도 어렵거니와 너무 오래 끓이면 뼈누린내가 강하게 난다. 헌데 신통방통하게도 식당에서는 '뽀얀'과 '진한'이 공존한다. 고객의 환상을 채워주려는 헌신적인 노력(!) 덕분이다. 프리마나 곡물가루 등이 엑스트라로 동원되기도 하고, 최근에는 돼지뼈가 당당히 조연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환상을 걷어낸 곰탕에서는 불투명한 유백색의 빛깔과 은근하면서도 구수한 국물맛이 남는다. 사골·갈비뼈·우족을 별다른 비법 없이 정성껏 끓여 낸 국보급의 곰탕에서는 그런 빛깔과 맛이 난다. 처음에는 조금 심심한 듯 싶다가도 먹으면 먹을수록 감칠맛이 돌면서 화장기 없는 과거의 추억이 맨 얼굴을 드러낸다. 이 느낌 하나 만으로도 국보급의 곰탕은 충분히 이름값을 한다.
 
흔히들 국밥집다운 모습을 상상할 때, 입구에 큼지막한 가마솥을 내걸고 하루 종일 펄펄 끓는 국물과 국물이 뿜어내는 수증기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국보급에서는 그런 퍼포먼스가 없다. 완성된 국은 재빨리 식혀, 곰탕은 급속 냉동을 하고 쇠고기국은 육수용 냉장고에서 차갑게 보관한다. 계속해서 끓이면 국물맛이 탁해지고 재료가 물러지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손님이 주문할 때마다 작은 냄비를 사용해 데워서 낸다. 개운한 맛을 유지하기 위한 나름의 방식인 셈이다.
 
국밥은 농경사회에서 보다 많은 사람이 고기맛을 나누기 위해 고안된 선한 음식이고, 오로지 재료와 정성으로 빚는 정직한 음식이다. 따라서 별다른 비법이나 요령이 있을 턱이 없다. 그래서 좋은 국밥집일수록 원칙은 있으나 비법은 없다. '국보급'이라는 거창한 상호에는 질 좋은 재료를 사용해 정직한 국물을 우려낸다는 자부심이 담겨 있다. 국보급까지는 몰라도 적어도 우리 지역을 대표하기에는 충분한 한우국밥임에는 틀림 없을 듯 싶다.

▶메뉴 : 한우국밥 7천원, 곰탕 8천원, 수육 2만5천원, 한우만두 6천원 (곰탕은 택배 가능)
▶위치 : 경남 김해시 서상동 157-2번지
▶연락처 : 055)311-1191





박상현 객원기자
사진촬영 = 박정훈 객원사진기자 pungly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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